[Review] 노란 물결이 빛나는 삶 -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도서]

글 입력 2022.10.04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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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보았던 외국 드라마가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방대한 에피소드가 쌓여갔지만, 딱 한 하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살면서 문득문득 생각나곤 했다.

 

드라마 ‘닥터 후’에 반 고흐가 나오는 회차 속 마지막 장면이다. 닥터 후는 전화 부스를 통해 시간을 넘나들며 외계의 적과 싸우는 SF 물이다. 반 고흐의 그림 속 괴물을 발견해 그 시절로 뛰어든 주인공들은 반 고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곤 마지막 장면, 평생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반 고흐를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끈다. 그의 그림이 가득한 반 고흐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눈물이 맺힌 채 주위를 둘러보는 반 고흐의 얼굴, 드라마에서나마 사람들의 뒤늦은 사랑을 그에게 전해줄 수 있어 따뜻하고 슬픈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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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생각해도 짠하고 가슴 아린 반 고흐의 삶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는 여러 반 고흐 전시를 기획하고 책을 출간해온 저자 마틴 베일리가 전하는 편지다.

 

반 고흐는 동생과 가족들에게, 동료 작가들에게 예술과 삶이 담긴 짤막한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기로 유명한 프로방스에 머무르며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마을의 풍경,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편지에는 그곳에서 타올랐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가난과 고통이 부분 부분 배어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삶의 이야기


 

책의 초입엔 반 고흐의 삶이 짧은 페이지 속 요약되어 있다. 누군가의 삶을 담을 때면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기준 삼고, 시기별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크게 구분 지어 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짧게 소개된 반 고흐의 인생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의 삶에는 크고 굵은 변화가 너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과 지인의 소개로 화랑 직원과 교사로, 서점 보조원으로 여러 번 일을 구할 수 있었지만,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걸 견디지 못했던 그는 매번 떠나야만 했다. 종교에 심취하여 교회에서 자신의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믿었던 그이지만, 교회에서도, 오지의 설교사로 떠나서도 변화무쌍하고 독특한 반 고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디에도 안착하고, 적응하지 못해 떠나고 마는 건 반 고흐의 선택이었지만, 타고난 기질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데에 안타까움과 짠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고통의 모습에 보는 사람도 마음이 아파지는 일대기였다.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영역


 

반 고흐는 편지를 통해 그의 삶을 직접 들려준다. 책은 프로방스 시기를 크게 세 파트로 구분 지었다. 프로방스 지역으로 내려와 처음 머물렀던 아를,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무르던 시기, 프로방스를 떠나 죽기 직전 머물렀던 오베르에서의 70일이다.

 

3년 동안 200통이 훌쩍 넘는 무수한 편지를 남겼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구보다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던 반 고흐.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생활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편지.

 

그 편지들 속에 반 고흐가 말하고, 그리고 싶었던 세상이 담겨 있었다.


 

천혜의 웅장한 자연환경 속에서 작업하니 의욕이 솟아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조금의 노력조차 너무나 버거워. 기력이 없어서 못 그리겠어…… 살고, 일하고 싶다면, 분별 있게 행동하고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시원한 물, 신선한 공기, 영양가 있고 단순한 음식, 질 좋은 옷, 질 좋은 침대…

 

- 1888년 5월 4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불안과 좌절 속에 살았던 반 고흐의 마음이 전해지는 편지였다. 의욕과 열정이 불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힘과 체력은 별개의 것이다. 스스로도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 아프다.

 

 

나는 이 평야의 풍경을 보려고 몽마주르에 쉰 번이나 올라갔는데, 바보 같니? ‘화가가 아닌 사람과 함께’(밀리에를 말하는 것 같다.) 올라간 적도 있다. 그때 내가 “봐, 내게는 여기가 바다만큼 끝없이 넓어 보이고, 아름다워”라고 말하자, 그 친구가(그는 바다를 안다) “내가 보기에는 바다’보다’ 훨씬 멋져. 끝없이 펼쳐져 있는 데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이잖아”라고 대답했단다.

 

- 1888년 7월 13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자연의 다양한 모습에 쉽게 마음을 빼앗겼던 고흐를 상상해 본다. 끝없는 고통 속에 살면서도 바람과 갈대와 빛에 압도되곤 했던 그의 시간을 그려본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곳,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잘 알던 반 고흐의 모습을 찾기도, 처음 보는 그의 마음을 발견하기도 했던 책이었다. 쓸쓸하고 슬픈 마음이 들지만, 그의 삶 곳곳엔 간절한 사랑과 소망이 있었다. 그 소중한 마음들을 들여다보면 그의 그림, 강렬한 빛깔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드라마 닥터 후의 장면처럼 그에게도 이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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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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