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9.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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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맑은 아침, 하라주쿠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나간다. 그다지 예쁜 여자는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p. 21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등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소설가이며 그가 쓴 글들은 나의 학창 시절을 책임 지던 일본 소설의 대표선이었다. 최근에는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드라이브 마이 카'의 영화화에 이어 아카데미 국제 장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 떠올리자면, 이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단편에 인용된 문장 덕분이었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 문장을 읽자마자 문득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독특한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 강한 설렘을 느꼈다. '4월 어느 맑은 아침'에 만나게 된 '100퍼센트의 여자'는 모두 추상적인 지표일 뿐인데 내게도 지나온 시간처럼 느껴진다. 짧은 단편집에 두 번째로 수록된 글. 여덟 페이지 남짓한 짧은 글에 오래도록 공감하며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선호하는 타입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와 길에서 스쳐 지나갔어”라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미인이었어?”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그게 기억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p. 22

 

 

'나'는 길에서 우연히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난다. 50퍼센트도 아니고, 80퍼센트도 아닌 100퍼센트의 만족도를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는 외향적 매력을 꼽으며 물었지만 '나'가 만난 여자는 달랐다. 나이는 서른쯤으로 예상했고 뒤통수에는 잠을 매달고 다니는, 어쩌면 미인이라고 칭할 법한 기준의 여성은 아닌 것이다. 하라주쿠 뒷길에서 그저 스쳐 지나간 여성에 대하여 100퍼센트의 점수를 주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리는 이성에 대한 호감을 인지하기에 앞서 이상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주로 외향적 이상형과 내향적 이상형을 생각하게 되는데, 전자는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나는 주로 외향에서 느끼는 호감 신호를 따르는 편이었다.


상대방을 알아가기에 다소 시간이 필요한 지표들(성격, 가치관, 성향 차이, 유머 코드, 대화는 막힘없이 흘러가는지...)은 나중으로 미뤄두기 일쑤였다. 주로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사례가 이에 해당되는데, 그 경계가 뚜렷한 나로선 조금 낯선 영역의 사랑임이 분명했다. 사랑으로 발전 가능한 유효기간이 이미 끝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외향적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그녀에게 운명의 경위를 설명하고 싶다는 '나'의 상상을 엿보며, 그의 사랑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습득해온 경험들이 녹아들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100퍼센트의 연애와 75퍼센트, 80퍼센트의 연애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p. 26

 


100퍼센트의 연애란 서로를 고독하게 두지 않는다는 해석으로 읽혔다. 그런 의미에서 운명의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사람과 했던 75퍼센트의 연애, 80퍼센트의 연애는 애정과 고독이 함께 하는 연애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언제까지나' 계속함으로써 충만해진다고 말한다.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영화 <중경삼림> 금성무의 대사처럼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 년 후로 정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 고독과 함께 버려두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100퍼센트의 안정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랑은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이 없다면 발전할 수 없다. '나'는 그녀는 미인과 거리가 먼 인간으로 설명했지만 오롯이 '나'에게 완벽한 매력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력을 바탕으로 서로 간의 신뢰를 느껴야만이 100퍼센트의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닭살 돋게도 영혼과 영혼이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말이다.


 

 

time waits for no one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뒷길에서 스쳐 지나가게 된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해명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p. 23

 

 

소설에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첫눈에 반하게 되는 설정도 아니며 '나'의 운명론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신뢰를 쌓기도 전에 100퍼센트를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앞서 그의 과거로부터 투영된 사랑을 이야기했다.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아주 오래 전 첫만남을 가졌고 재회한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두 사람이 헤어진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운명이었다. 이로써 첫눈에 반한 그녀에게 운명을 직감하게 된 '나'의 운명론이 완성된다. 우리는 이미 100퍼센트의 사랑을 했고 긴 고독을 견뎌낸 끝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외적인 이상형에 관계 없이 완벽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 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p. 28

 

 

그러나 운명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와 운명처럼 재회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14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75퍼센트의 연애와 여러 고독을 맛보았다. 이전의 두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은 여전히 100퍼센트의 연인이었지만 100퍼센트의 연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00퍼센트라는 수치에는 운명 같은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타이밍'이 필요했다. 우리는 평생동안 100퍼센트의 연인을 찾아 헤매지만 나의 완벽한 연인은 지극히 평범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보라.jpg




[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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