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더 넓고 느슨한 '우리'를 만나다 -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展

글 입력 2022.09.0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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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우리가사랑으로111.jpg

 

 

검푸른 배경 위에 다양한 언어로 된 수많은 주소와 이름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공간에 들어선 사람은 우주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양새가 된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우주는 포도뮤지엄 기획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테마공간4’에서 만나볼 수 있는 ‘주소 터널’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생년과 본국 주소가 둥둥 떠다니는 전시 공간에 서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지 실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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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터널, 2022, 투명 LED 패널, 거울, 무빙이미지, 가변크기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라는 주제를 미디어아트, 설치, 조각, 회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낸 전시다. 각각의 작품에서 여러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작품 사이를 이동할 때 통과하게 되는 테마공간도 전시 포인트이다. 포도뮤지엄이 직접 기획한 테마공간은 각 작가의 작품과 작품을 유연하게 잇고, 작품만으로는 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좀 더 쉽게 접근하게끔 돕는다.

 

 

 

이동하는 사람들, 지금 여기의 디아스포라



[대표]이동하는 사람들,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루프_B.jpg
이동하는 사람들,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루프

 

 

미술관에 들어서면 ‘테마공간1’의 ‘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반긴다.

 

하얗고 커다란 장막 너머에서 그림자로만 인식되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걸어간다. 시작과 끝이 없이 걷고 또 걷는 모습은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들의 주제를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 한국에 사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과 작업했다지만 관람객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차이를 지우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움직임만 남는다.

 

그것도 떠나는 것인지 도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표]이배경, 머물 수 없는 공간, 2022, 6채널 3D 애니메이션, 컬러, 사운드, 15분, 루프_B.jpg
이배경, <머물 수 없는 공간>, 2022, 6채널 3D 애니메이션, 컬러, 사운드, 15분, 루프

 

 

이어지는 이배경의 ‘머물 수 없는 공간’과 리나 칼라트의 ‘짜여진 연대기’는 '이동'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오늘날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머물 수 없는 공간’은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하얀 육면체들이 출렁이는 영상이 재생된다. 가운데 서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가 떠나거나 찾아오는 걸 ‘원주민’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데 익숙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기분을 경험한다.

 

‘짜여진 연대기’는 이주 노동의 측면에서 재편된 세계지도를 보는 듯하다. 전깃줄로 이어진 세계 각국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나라는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앞선 작품이 이동의 의미와 양상을 거시적으로 보여줬다면, 강동주의 ‘빗물 드로잉’,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 그리고 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리잔의 ‘주소’는 보다 가까이서 이동이 만들어내는 삶의 변화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대표]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리잔, 주소, 2008, 개인 오브제 및 소지품, 각 50x50x50cm (140)_A.jpg
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리잔, <주소>, 2008, 개인 오브제 및 소지품, 각 50x50x50cm (140)

 

 

특히 ‘주소’는 이동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삶을 전시 공간에 옮겨 놓는다.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한 정육면체의 구조물인 전시물은 가까이 가서 보면 하나하나 다른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로 세로 높이 50cm인 정육면체 크기는 필리핀에서 외국으로 우편을 보낼 때 세금이 면제되는 크기라고 한다.

 

각종 생필품과 장난감, 옷가지 등 모두 제각각인 생활감 가득한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에 깃들어 있을 누군가의 삶을,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고르고 고르며 넣었을 누군가의 마음을 그려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이방인이 된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 이주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디아스포라는 대부분 우리나라 바깥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 난민 등이다.

 

이런 가정은 자연스레 우리를 원주민으로만 인식하게 하고,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어떻게 융화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때 잊기 쉬운 것은 한국인 역시 역사 속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동시대 디아스포라만이 아니라 과거 활발하게 일어났던 이주의 역사도 언급하며 우리 모두 디아스포라에 포함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표]디파처보드, 2022, 스플릿 플랩 디스플레이 보드, 154x254cm_A.jpg
디파처보드, 2022, 스플릿 플랩 디스플레이 보드, 154x254cm

 

 

‘테마공간2’에서 만나는 ‘디파쳐보드’에서는 우리가 배운 역사 속 이주를 경험한 사람들을 포함해 다양한 시공간 속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 한국전쟁 때의 피란민들, 1960~70년대 파독 간호사 등 떠나는 시대도 이유도 조금씩 다르지만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디파쳐보드에 연도와 함께 표시된다.


맥락 없이 디파쳐보드에 표기되고 다시 사라지는 독백에서는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 없이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이들의 막막함과,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을 고단함이 느껴진다. 1960년대 누군가의 한숨과 2022년 누군가의 한숨은 국적은 다를지라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대표]정연두, 사진 신부, 2022, 사탕수수, 목재, 폴리카보네이트, LED 조명, PVC 튜브 관수 시스템,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65x325x1200cm, 28분_A.jpg
정연두, <사진 신부>, 2022, 사탕수수, 목재, 폴리카보네이트, LED 조명, PVC 튜브 관수 시스템,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65x325x1200cm, 28분

 

 

정연두의 ‘사진 신부’는 단순히 과거의 디아스포라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재로 가져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겹쳐 보기를 시도한다.

 

작가는 설탕 공예로 100여 년 전 남편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고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하와이로 이주했던 조선의 어린 여성들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또한 제주에서 사탕수수를 키우며 사탕수수가 자라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그곳에서 사진 신부와 비슷한 나이대의 제주도 여고생들과 워크숍 및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 요즘 하는 고민, 가족 관계, 이상형… 그 옛날 사진 신부들도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쑥스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답하는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은 전시장 내에 온실처럼 만들어진 구조물 안에서 재생된다.

 

미술관보다 높은 온도로 설정된 온실에는 실제로 사탕수수가 심겨 있고, 사탕수수의 향이 난다. 거기서 낯선 땅, 험난한 노동과 마주했을 이들의 삶을 상상하다 보면, 결혼하기 위해 우리나라로 이주해 오는 오늘날 외국인 신부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과거와 현재가 국경을 가로질러 만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대표]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2022, 뮤직 애니메이션, 흑백, 사운드, 3분 40초_B.jpg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2022, 뮤직 애니메이션, 흑백, 사운드, 3분 40초

 

 

서두에서 언급한 ‘주소 터널’을 지나면 ‘테마공간5’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과 동명의 작품이자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만나볼 수 있다. 나이트오프의 음악과 최수진 작가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작품을 의자에 앉아 감상하면 앞서 봐 왔던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삶이 스쳐 지나간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속에서 흰색으로 그려진 이들은 검은색으로 그려진 사람을 낯설어하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 것은 검은색과 흰색은 서로의 존재가 없다면 세상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표]요코 오노, 채색의 바다(난민 보트), 1960_2022, 보트, 수성 페인트, 작가 요청문, 가변 크기_C.jpg
요코 오노, <채색의 바다(난민 보트)>, 1960/2022, 보트, 수성 페인트, 작가 요청문, 가변 크기1960/2022, boat, water-based paint, artist's instruction piece,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이어지는 요코 오노의 ‘채색의 바다’는 이미 많은 사람이 써넣은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본 감상의 여운을 이 공간에서 풀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같이 행복하자는 말부터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는 말까지. 이 말들이 모이면 힘을 가지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

 


[대표]우고 론디노네,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 1999_2022, 컬러 포일, 330x28cm (9).jpg
우고 론디노네,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 1999/2022, 컬러 포일, 330x28cm (9)

 

 

‘채색의 바다’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던 행복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2층으로 올라가면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햇볕이 비추면 무지개가 생기는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는 미술관 바깥에서 보이는 작품 ‘롱 라스트 해피’와 같은 결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 옆에는 피곤하고 무료한 표정의 27명의 광대 인형들로 구성된 작품, ‘고독한 단어들’이 있다.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대표]우고 론디노네, 롱 라스트 해피, 2020, 네온, 아크릴 유리, 반투명 포일, 알루미늄, 313x15x768cm_A.jpg
우고 론디노네, <롱 라스트 해피>, 2020, 네온, 아크릴 유리, 반투명 포일, 알루미늄, 313x15x768cm

 

 

나와 다른 존재는 호기심 이전에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사람들은 두려운 것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혐오하기까지 한다. 끊임없이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것을 구분 짓고, 계속해서 다수에 속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구분 짓기’에는 내가 속한 다수자 집단인 ‘우리’를 더욱 단단히 하겠다는 욕망이 숨어 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이는 오히려 ‘우리’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서로 내 편인지 아닌지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는 사회에서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고 론디노네의 광대들처럼 모여 있으면서도 고립된 것처럼 외로워진다.

 

모든 곳, 모든 순간에 다수자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소수자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 더 느슨하고 넓은 범위의 '우리'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좋은 예술은 그 일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든다.

 

그러니 일상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마주해야 하는 어떤 순간에 이 전시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좀 더 다정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가사처럼 “다르기엔 너무 같은” 우리들이므로.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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