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뮤지컬 '적벽'을 보고와서

글 입력 2022.09.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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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소리꾼 이자람이 쓴 에세이집 <오늘도 자람>을 읽고 판소리에 흥미가 생겼다.

 

그러나 판소리 공연을 따로 보러가지 않아 20년 넘게 아직 판소리 공연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2017년도의 첫 공연 이후 5년째 진행되고 있는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와 현대무용, 뮤지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여 궁금해져 관람을 하고 왔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공부했던 '적벽가'를 실제의 무대로 만나볼 수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또한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니만큼 판소리 합창과 부채로 만든 안무, 역동적인 무대의 구성 등의 풍성한 요소들로 낯설게 느껴졌던 판소리가 한층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뮤지컬 <적벽>을 보며 아쉬웠던 점 한 가지와 좋았던 점 여러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가사스크린의 위치



뮤지컬 <적벽>을 시작하고 개인적으로 처음 초반부는 가사스크린의 위치 때문에 아쉬웠다. 포문을 열며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 상황을 판소리로 구연해주는데, '적벽가'의 옛 어휘를 그대로 살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가사 스크린을 참조해야했다. 하지만 가사 스크린이 너무 무대에서 먼, 옆 쪽에 위치하고 있어 무대와 가사를 동시에 즐기기 어려웠다.

 

1층과 2층의 무대를 넓게 사용하고, 소리를 하고, 역동적인 군무를 하는 공연을 한 순간도 놓치기 싫었다. 하지만 소리꾼이 일러주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자 가사를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휙휙 돌릴 수 밖에 없어 조금은 불편했다.

 

260여석의 정동극장에서 시작해 2022년에는 500여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에서 무대를 펼치는 <적벽>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삼 형제가 도원결의하며 부채로 원을 만들거나, 부채가 모두 함께 움직이는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관객이 이러한 다이나믹한 무대에 집중하면서도 가사를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도록, 공연장이 달라지며 바뀌는 가사 스크린의 위치도 더 세심하게 조정되면 좋을 것 같다.

 

 

2022 적벽 (7).jpg


 

 

2. 젠더리스 공연



흥미롭고 좋았던 점은 조자룡과 장비, 주유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옛 작품이나 무협지의 경우에 항상 남성만 등장인물인 경우가 많은데,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성별의 한계를 두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번의 '장비' 역할은 4연에 모두 출연하며 '정욱'과 '도창'을 연기했던 소리꾼 정지혜가 맡아 괄괄하고 익살스러운 장비의 모습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작품을 보러 가기 전에는 '장비' 역을 여자 분이 맡았다고 하여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아이코닉하게 있는 남성 캐릭터를 여성이 표현하는 작품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기대감과 걱정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성별은 아무 상관이 없는 요소임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괄괄한, 듬직한, 우직한, 호쾌한' 등의 형용사는 '남성스러움'이 아니라 그저 남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묘사를 위한 형용사'일 뿐인데 그렇지 않게 사용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자룡(김하연)이 장판교에서 아두를 구하는 장면은 앞선 수식어를 모두 붙이고도 남을만큼 멋졌다. 조자룡의 충성스럽고 든든하고 우직한 모습은 그녀의 몸과 소리와 몸짓으로 멀리 앉은 관객에까지 쩌렁쩌렁하게 전해졌다.

 

성별이 달라진다고 극이 어색해지거나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작품과 역할을 표현하는 데에는 성별이 제한요소가 되지는 못하며, 충분히 여성이든 남성이든 원하는 형용사를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적벽>을 보며 알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문을 넓혀줄 수 있는 젠더리스 작품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2022 적벽 (5).jpg


 

 

3. 부리나케 달아나고는 군사점고를 하는 조조


 

맥을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임새처럼 시기적절하게 들어가는 부채의 소리, 군무, 다양한 무대의 구성... 뮤지컬 <적벽>에서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조자룡의 장면과 조조(추현종)의 장면이었다.

 

위엄이 있다가도 굉장히 찌질해지고, 익살스럽다가도 얄미울만큼 간사해지는 조조의 모습을 널뛰기하듯 보여주었다. 만담꾼처럼 줄줄이 나오는 맛깔진 대사와 연기가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과 군사점고 장면은 특히 판소리만의 재치와 해학이 흘러넘친 장면이었다. 소리와 몸을 잘 쓰는 연기자들이 정말 재미있게 장면을 만들어내어 특히 많은 관객들이 즐거워했다. 군사점고장면에서는 깜짝 출연하는 인물도 있는데 유쾌한 등장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22 적벽 (4).jpg


 

 

4. 부채



흰색 부채, 붉은색 부채,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부채 세 종류가 등장한다. 이렇게 부채의 색깔이 구분되어 있어 극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시점을 알 수 있었고, 누구의 편인지 헷갈리지 않고 잘 구분할 수 있었다.

 

뮤지컬 <적벽>에서 부채는 아주 중요하다. 부채가 창과 방패가 되고, 바람이 되고, 불이 되기도 하며, 군무를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적벽대전 때 흰 부채가 모여 바람을 휙 부치자 모여있던 붉은 부채 무리가 뒤집어지면서 확 움직이는 모습이 가사와 잘 맞아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게다가 부채를 접는 소리는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시의 적절하게 들어가면서 극의 리듬감을 자아낸다.

 

부채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과 표현을 감상하며 <적벽>을 즐겨보길 바란다.

 

 

 

5. 박진감과 잔잔함, 다양한 분위기



네모난 조명 안에 옹기종기 모인 군사들이 거문고를 잔잔히 뜯으며 설움을 토해내는 장면이 짧게 들어가 있었다. 박진감있게 휘몰아치는 대전투 장면과 익살스러운 군사점고 장면, 그 이후에 등장하는 군사설움 대목은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집중하게 했다.

 

이 뿐 아니라 관우가 조조에게 관용을 베푸고 그 후 고민하며 추는 독무 장면도 멋졌다. 소리를 하지 않고 오로지 무용으로만 이루어진 장면이었는데, 몸짓만으로도 관우의 고뇌와 마음이 충분히 전해져서 인물에게 이입해볼 수 있었다.

 

이처럼 화려하고 몰아치는 듯한 웅장한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군사들과 고뇌하는 관우 등 인물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장면을 준 것이 좋았다. 박진감과 잔잔함이 함께 있는 작품이었다.

 

 

 

마무리하며


 

<적벽>은 마치 소리꾼이 이야기를 해주면 바로 옆에서 장면을 재현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독무, 판소리,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적벽가'를 재미있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극을 만들었다는 인상이 들었다.

 

앞으로도 <적벽>이 더욱 좋은 극으로 발전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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