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만추는 없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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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친구를 사귀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응당 누군가와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람과 친해지는데 참 많은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는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당신이 대화할 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당신은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지 아니면 “음,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할지 그것도 아니면 “네, 좋아해요. 그쪽은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라고 답할지 혹은 아예 무반응을 보일지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광신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 선택이 자신의 선택인지 아니면 타인의 선택인지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대화할 때마다 대화상대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갈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한다. 앞선 예시처럼 말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반드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한 반에 30~40명 되는 친구들과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고,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같이 하고 심지어 쉬는 시간과 다른 수업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함께 보내야 했다. 한 무리당 3~4명만 친해도 10개의 무리가 만들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무리에 들지 못하면 눈에 확 띠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매일 내가 관계를 이어나갈지, 그렇지 않을지 선택한다. 학창시절에 친했던 친구들 역시 성인이 되고 내가 계속 연락해야만 인연이 유지되기에 새로운 관계뿐 아니라 이미 완성했다고 생각한 관계에서도 나는 선택한다.
친구를 강제로 사귀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놓이고서야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항상 밝고 잘 웃는 사람인데다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 나는 내가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걸 좋아하고, 사실 남의 고충을 듣고 위로해주는 것보다 재밌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챙겨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챙겨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해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가 누군가를 챙겨주기 위해서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식은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잔뜩 모아놓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이불 안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놓고 취하는 휴식이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가족과 어딘가로 여행가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의 휴식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휴식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에 누군가와 지속해서 연락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와 연락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해주는 일이 고맙다.
어떤 사람은 “노력으로 지속하는 관계는 너무 슬프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생각도 이해한다. 친구, 연인, 가족 관계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보다 사랑과 우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게 훨씬 아름다우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한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내가 노력하는 일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관계라고 해도 어떤 노력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강제적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
요즘 참 많은 사람이 손절이라는 말을 참 쉽게 쓰는 것 같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는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많이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다 잘라내기만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타협해보는 경험을 잃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즐거움도 잃고, 나와 다른 생각을 배우는 경험도 잃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끊고 싶을 때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한번 말해보는 것이 어떨까. 어쩌면 절대 돌아가기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혹은 아주 높은 확률로 본인만 참고 있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관계를 쉽게 만들고 또 그만큼 끊기도 쉬운 세상에서 자신의 옆에 남아있는 관계에 감사하고 그 관계를 이어온 노력을 잊지 않는 하루를 보내보자. 누군가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그 관계는 자신의 노력과 상대방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기에 그 결실인 관계를 손절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연락을 끊는 방식으로 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중 내가 선택한 나와 다른 사람끼리 매 순간 친해지기를 결정하며 이루어 온 관계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세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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