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만추는 없다 [사람]

매 순간 친분을 선택하는 걸 쉽게 잊은 사회
글 입력 2022.08.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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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친구를 사귀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응당 누군가와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람과 친해지는데 참 많은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는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당신이 대화할 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당신은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지 아니면 “음,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할지 그것도 아니면 “네, 좋아해요. 그쪽은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라고 답할지 혹은 아예 무반응을 보일지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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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광신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 선택이 자신의 선택인지 아니면 타인의 선택인지가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대화할 때마다 대화상대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갈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한다. 앞선 예시처럼 말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반드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한 반에 30~40명 되는 친구들과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고,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같이 하고 심지어 쉬는 시간과 다른 수업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함께 보내야 했다. 한 무리당 3~4명만 친해도 10개의 무리가 만들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무리에 들지 못하면 눈에 확 띠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매일 내가 관계를 이어나갈지, 그렇지 않을지 선택한다. 학창시절에 친했던 친구들 역시 성인이 되고 내가 계속 연락해야만 인연이 유지되기에 새로운 관계뿐 아니라 이미 완성했다고 생각한 관계에서도 나는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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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강제로 사귀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놓이고서야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항상 밝고 잘 웃는 사람인데다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 나는 내가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걸 좋아하고, 사실 남의 고충을 듣고 위로해주는 것보다 재밌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챙겨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챙겨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해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가 누군가를 챙겨주기 위해서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식은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잔뜩 모아놓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이불 안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놓고 취하는 휴식이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가족과 어딘가로 여행가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의 휴식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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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사람이기에 누군가와 지속해서 연락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와 연락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해주는 일이 고맙다.

 

어떤 사람은 “노력으로 지속하는 관계는 너무 슬프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생각도 이해한다. 친구, 연인, 가족 관계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보다 사랑과 우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게 훨씬 아름다우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한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내가 노력하는 일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관계라고 해도 어떤 노력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강제적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


요즘 참 많은 사람이 손절이라는 말을 참 쉽게 쓰는 것 같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는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많이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다 잘라내기만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타협해보는 경험을 잃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즐거움도 잃고, 나와 다른 생각을 배우는 경험도 잃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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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관계를 끊고 싶을 때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한번 말해보는 것이 어떨까. 어쩌면 절대 돌아가기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혹은 아주 높은 확률로 본인만 참고 있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관계를 쉽게 만들고 또 그만큼 끊기도 쉬운 세상에서 자신의 옆에 남아있는 관계에 감사하고 그 관계를 이어온 노력을 잊지 않는 하루를 보내보자. 누군가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그 관계는 자신의 노력과 상대방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기에 그 결실인 관계를 손절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연락을 끊는 방식으로 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 중 내가 선택한 나와 다른 사람끼리 매 순간 친해지기를 결정하며 이루어 온 관계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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