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한 진실 너머를 올려다보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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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룩 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종말까지 단 6개월. 당신은 이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가? 만약 이를 막을 수 있다면 지금 생활 방식을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가?
지구의 종말이나 일부 지역의 재난을 담은 영화는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기억하는 그들의 대략적인 모양은 이렇다. 명백한 종말의 징후를 발견하거나 마주하고, 단합된 마음으로 어떻게든 저항과 생존을 이어가는 모습. 불과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현대 중 현대’라고 할 수 있는 2020년 이후의 모습은 어떨까. 종말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뜬구름 잡는 궤변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기가 떠나간 지금 말이다. 대부분은 인간이 종말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명확한 시기를 알 수 있을 때 우린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당연히 몇 년 전 재난 영화처럼 의기투합하여 종말을 막게 될까?
<돈 룩 업>은 그 막연하고 낙관적인 전망에 강한 물음표를 던지는 블랙코미디 종말 영화다. 영화는 2020년 이후 종말은 종말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정보 바다, 모든 언어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발화되는 정치의 세계, 돈이 가장 큰 가치가 되는 극심한 자본주의, 학벌에 따라 달라지는 발화의 무게, 모든 것이 콘텐츠화되는 콘텐츠의 세계, 자극과 재미만을 좇는 미디어, 그것들이 얽혀 만든 무수한 변화의 갈래. 이것이 종말을 둘러싼 겹겹의 옷가지다.
글자로만 보면 온갖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현대 사회의 특성은 의식하지도 못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다. 지구를 파괴할 혜성을 발견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으로 인해 신뢰받지 못하는 케이트와 랜들, 그 사실을 정치·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미국 대통령과 세계 1위 기업의 경영주, 혜성 발견의 진위를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가십을 만들어내는 SNS. 기어이 혜성을 직시하라는 ‘Look Up’ 파와 그 말을 믿지 말라는 ‘Don’t Look Up’ 파가 나뉜 모습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려 불편한 진실을 가능한 한 가볍게 제시하고, 우리의 모습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끔 만든다. 영화 속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현실에서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기 힘들다. 현실보다도 더 사실적인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 모습을 직시하니 비관적인 전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감히 판단하건대, 인간이라는 종은 종말을 막는 브레이크를 당길 수 없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기후 변화의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쉽게 제지할 수 없는 이유는 이를 가속하는 산업이 인간의 생존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에너지, 식품, 의류, 가전 등 기초적인 생존의 요소들마저도 자연을 착취하는 틀을 유지하고 있고, 그것에 종사하는 인원 역시 대규모다. 그것들을 급격히 변화시켜야 함에도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거대한 규모의 현실에 걸맞은 상상력과 실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이다. 그런 인간은 결국 종말의 레버를 당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애초에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긴 할까. 어떤 것도 확실히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예상되는 결과가 비관적이라고 하여 매 순간의 과정까지 비관적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종착점까지 삶은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의 엔딩은 불확실성 속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유일한 결말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종말의 순간까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랜들은 종말을 막을 수 있다는 낙관 아래 자신에게 주어진 복권 같은 나날 속에서 소중한 이들의 손을 놓아버린다. 그러나 종말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안정된 결과 앞에서 왜인지 그의 삶은 공허하고 불안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종말이라는 불안한 현실이 다가왔을 때 그는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시 서로의 감촉을 느끼고 연결한다. 물론 종말이라는 것에 압도되고 불안을 느끼지만, 마지막 식사에서 그들이 맞잡은 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그들이 자아낸 어렴풋한 미소는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지키는 신뢰의 원 안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서로의 감촉을 느끼는 것, 그렇게 가능한 한 큰 신뢰의 원을 만드는 것. 이것이 뚜렷한 비관 속에서 우리 사람이 피워낼 수 있는 자그마하지만 가장 강력한 낙관이 아닐까.
해외 영화계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분명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이 영화에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초호화 캐스팅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현대 사회와 꼭 닮은 이 이야기를 한 명이라도 보게 하려는 것. 그렇게 한 명이라도 더 지금의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것.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영화 전반에 수놓아진 의도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인간 삶의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영화 전반에 걸친 아이러니가 현실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우리는 비관 속에서 일말의 낙관을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이를 향해 달려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돈 룩 업>이 제시하는 듣기 싫은 예언을 믿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하고 행동할 것인가. 또 그렇지 않다면, 예언을 믿지 않았을 때 마주할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정해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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