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도서]

글 입력 2022.08.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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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비비안 마이어_나는 카메라다_앞표지.jpg

 

 

마이어는 새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도시를 누볐다. 자신이 일하던 집의 모습도 담았다. 사진에는 아이들, 생일파티, 다양한 가정 풍경과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자주 포즈를 취해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핸드폰 용량 정리를 했다.

 

수만 개의 사진을 외장하드에 전송하면서 사진을 쭉 훑었다. 오늘의 내가 이랬어, 라는 느낌의 사진, 셀카, 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사진들, 좋았던 풍경, 동영상 등이 대다수였다. 개인적으로는 까르르 현실적으로 웃는 사진과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찍힌 사진들을 좋아한다.


예쁘게 나오기도 하지만 바보같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더 좋다.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돌려보곤 한다. 마이어의 사진은 대부분 남의 사진이었다. 가끔은 허리춤에 있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찍거나 그림자나 실루엣을 담아낸 사진도 있었지만 말이다.

 

내 위주로 찍힌 사진들과 달리 마이어가 세상의 것을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어에게 사진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편안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카메라라는 친구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본 거죠. 사람들을 자기 삶에 불러들이는 수단이었을 거예요.”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노라면 ‘카메라’라는 것이 마이어 본인의 베스트 프렌드였을 거라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기록의 의미보다는 본인의 눈에 보인 것들을 성실하게 담아낸 느낌이었다. 또, 흑백 사진의 매력도 알 수 있다. 핸드폰이나 셀프 사진관엔 꼭 하나씩은 흑백 필터가 있는데, 이 필터를 쓸 일이 있을까 자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 쯤 가서는 검은색 안에서도 밝음과 어둠, 선명도가 있음을 깨달으면서 흑백필름이 더 좋아졌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마이어의 작품이 과거의 사진이 아니라 현재의 사진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잡지 같은 느낌이나 센스있는 사진의 구도가 세련되었기에 그런 건 아닐까, 보면서 즐거웠다.


 

마이어의 작품이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할 이유로 스스로 예술가로 존재할 수 없었고 존재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의심할 나위없이 예술가였던 한 여성의 시선으로 보았던 세상을 우리도 똑같이 본다는 점이다.

 

마이어는 사진을 편집하지도 않았고 까다로운 작업을 통해 만든 빈티지 프린트를 은닉해두지도 않았다. 자신의 작품을 역사와 비평 담론에 참여시키려는 사람들의 역사가 사진의 역사라면 마이어는 이러한 부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마이어는 카메라와 사진을 참 아꼈던 사람이구나 느낀다. 있는 그대로, 당연한 듯이 사진이 본인의 생활이자 습관이 된 그를 보면서, 현재의 나는 황홀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꼈다. 단순히 카메라에 미쳐있는 사람이지 않았나 싶었지만, 사진을 보며 사람 마이어의 한 세계와 한 우주를 만난 느낌이 강하게 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꾸준히 했다는 것에서 성실함이나 집착, 습관을 넘어 오히려 마이어와 사진이 완전히 일체 된, ‘나는 카메라다.’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대단함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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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본 다른 이들도 그러했는지 묻고 싶다.

 

특히 278페이지에 초록 잔디 위에 핀 노란 꽃과 마이어의 그림자가 담긴 사진은 자꾸 눈길이 갔다. 카메라라는 친구(혹은 자기 자신)와 마이어가 놀고 있는 느낌 또는 예쁜 와중에 묘하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구도는 내가 혼자 바다로 여행을 가서 모래사장에 날짜와 이름, 장소를 쓰고 찍어낸 것과 비슷했는데, 마이어는 글 없이 모든 것을 표현해 냈다. 그를 따라 ‘글 없는 사진’만으로 그 언젠가 그때의 나를, 잔디와 꽃과 함께 따라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81, 282페이지의 눈이 쌓인 기찻길과 TV를 한쪽에 틀어놓고 방 문고리 옆에 셔터를 누르는 마이어의 모습이 찍힌 사진은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그 때의 기억을 선명히 불러일으킨 듯하다. 각자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그 만의 템포로 시간을 살아낸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타인을 완전히 읽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같은 것을 보더라도 항상 다른 반응을 하는 타인들 속에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점점, 그와 내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가 생기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셔터를 누를 때의 감정과 지금의 내가 같은 감정을 느꼈을는지도? 하는 익살스러운 생각이나, 동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내 호들갑은, 이미 내가 그의 사진이 너무 좋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도서 <비비안 마이어-나는 카메라다>를 통해 눈과 감정이 즐거워지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천재적인 구도와 카메라와 혼연일체 된 그의 작품을 보며 경탄하며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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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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