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집을 읽으며 번아웃을 극복하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8.2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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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에디터의 근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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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두 달 앞에 '벌써'라는 단어는 넣지 못했다. 초보 에디터에게 두 달은 꽤나 벅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위해 쉬는 시간 없이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쓰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을 뒤엎으며, 이번에는 괜찮을까 하는 의심과 싸우는 나날이었다. 날마다 올라오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자책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쳐갔다.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거뜬할 거라 믿었다. 그때의 '나'는 무지했던 것일까, 오만했던 것일까. 개인적인 공간이 아닌 다수의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르는 일이었다. 에디터는 '나'만을 위한 글이 아닌 '독자'를 위한 글을 써야 했고, 그렇기에 글의 소재부터 구성, 맞춤법, 쓰기 윤리 등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여기면 안 되었다.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근육통을 겪는 중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니 글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대략적인 내용도 그려졌는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새하얬다. 이것이 '글쓰기 번아웃'인가 싶었다. 두 달 만에 번아웃이라니 누가 보면 비웃겠지만, 나에게는 비상사태였다. 노트북 앞에 있으면 뭐라도 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빈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었고,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결국 단념하고, 심란한 마음을 잊기 위해 시집을 한 권 들었다.

 

 

 

나태주,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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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난해하지 않아 편안하고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읽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중,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시를 발견했다. 창작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였다.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과 비교하며 그동안 뿌리 박혀있던 나쁜 글쓰기 습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2-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

 

 

시인에게 '창작'은 그저 줍는 것이었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는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들이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칠 때 시인만이 그 존재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본래의 빛깔대로 빛날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갈고 닦아 시에 오롯이 담아낸다. 시인에게 '창작'은 버림받은 것이 다시 보석이 되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 글쓰기는 줍는 것이 아니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 말고, 화려하고 멋진 소재를 찾으러 다녔다. 소재를 위해 여기저기 뒤지고 살피느라 시간과 체력을 소비하고, 결국엔 지쳐버린 것이다. 거창한 무엇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글쓰기는 편해질 수 있었다.

    

 

-새로운 길-

 

<중략>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 길을

걸어서 멀리 사리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중

 

 

새로움이란 감정은 참 신기하다. 새로움은 그 전에 볼 수 없는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 대상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금세 진부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웠던 것들을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고 사람들에게 잊힌다. 그렇다면 새로움이란 순간만 반짝하고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는 것일까. 새로움을 동경하는 나로서는 혼란스러웠다.

  

시인은 새로움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시인은 사람들과 반대로 '오래되어 빛바랜 것'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사람들에게 잊혀 과거로 사라진 것들은 시인에게는 모두 새로움의 대상이었다. 새로움은 무조건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움을 찾기 위해 무작정 미래를 내다볼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

 

시인은 50년이란 시간 동안 거의 100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창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이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은 소수지만 보통의 것은 다수이고, 그것은 곧 창작의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기에, 시인의 시는 특별해진다. 평범함은 시인의 원동력이자, 사랑받는 비결이었다.

 

글쓰기 슬럼프가 온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딴것이 아니었다.

평범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겸손함과 섬세함이었다.

나도 시인처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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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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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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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화
    • 책.많은정보감사합니다.앞으로좋은정보이용할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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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닫기댓글 (1)
  •  
  • 김연경
    • 2022.08.26 21: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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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화저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기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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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호
    • 시집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터인데 서평으로 시집에 입문해보려 합니다.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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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닫기댓글 (1)
  •  
  • 김연경
    • 2022.08.26 21: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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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호시집은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러울 때 읽으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시의 여백이 마음의 공백을 주는 느낌이에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지친 하루에 댓글로 힘을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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