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잎사귀에 남은 목소리를 듣는 사람 - 온난한 날들 [도서]

글 입력 2022.08.0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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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문을 두드릴 때


 

안전가옥의 책을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명절 날 아침,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가방에서 소설책을 꺼냈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궁금해지는 제목, 귀여우면서 기묘한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숨 가쁘게 소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다. 미묘한 불쾌함과 흥미진진한 감각이 뒤섞인 이야기였다.

 

실험적인 이야기를 찾아서, 출판사의 PD와 작가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안전가옥만의 방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안전가옥]온난한 날들_표지이미지.jpg

 

 

'온난한 날들'은 호기심을 갖고 살펴 온 안전가옥의 신간이다. 윤이안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기후 미스터리’라는 안전가옥의 새로운 장르를 탐험하는 실험에 오른 이야기였다.

 

식물에 관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탐정과 얽히면서 종잡을 수 없었던, 일상과 가까우면서 한끗 차이로 완전히 멀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잎사귀에 남은 목소리


 

박화음은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다. 환경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에코 시티에 사는 그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카페를 오간다.

 

에코 시티에서는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거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면 벌점을 받고 패널티를 받게 되는 도시다. 그곳에서 100%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하는 커피 체인점에서 일을 하는 박화음, 그녀에겐 그 누구에게도 없는 단 하나의 능력이 있다.


박화음은 잎사귀에 남겨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처럼 나무도, 풀도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사람들이 되뇌인 말들이 때때로 잎사귀에 달라붙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기도 한다는 걸, 그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지녔다는 건 특별한 행운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영원히 섞여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박화음은 원했던 그러지 않았던 식물의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고, 그 이야길 들은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곤 했다.

 

홀로 외로운 그 속에서 박화음은 더 이상 식물에 관한 이야길 입 밖으로 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변화’에 맞서는 박화음은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의 주체이지만, 변화시키거나 소거할 수 없는 제 천성으로 괴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인간이기도 하다.

 

주변의 사념을 간직한 식물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 자동차에만 올라타면 구토하는 버릇,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오지랖 등 화음의 모난 부분은 타인과 사회의 눈에 띄는 것은 물론, 본인에게도 줄곧 눈엣가시다.

 

하지만 탐정이라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이해준의 등장으로, 어느샌가 에코 시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하나둘 해결해 나가는 동안, 화음은 제 모서리들이 닳지 않으며 깎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좋은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기후 소설이자 탐정 소설, 성장 소설이기도 한 ‘온난한 날들’은 결국 개인의 모서리를 속속들이 더듬어 가는 모험과 그것을 마모시키지 않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 출판사 리뷰 中

 


 

오지랖의 순기능



박화음은 식물에 남겨진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다. 그건 탐정 이해준과 함께 미스터리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박화음을 이해할 수 없는, 잔뜩 불어난 문제 한가운데로 불러오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게 만드는 것. 그건 박화음의 아버지가 힘주어 말했던, 조심하라고 주의에 주의를 줬던 박화음의 오지랖이다.

 

사람 좋아 보이던 동네 칼국숫집 사장님의 가족이 사라진 것, 애증의 대상인 아버지에게 생긴 일을 먼저 듣곤 그의 딸인 신연주가 걱정되어 힘들 때 연락하라며 건넨 명함. 그런 것들은 박화음을 늘 그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 말 그대로 자기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계속해서 엮이게 했다.

 

그건 알지 않아도 될 불편한 진실과 계속 마주치는 일, 모르고 살았을 감정을 밑바닥부터 느끼게 되는 일.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탐정은 타인 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함께하게 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은 나를 기쁘게 만들기도 했지만 소름 끼치게 만들기도 했다.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나는 식물에 남은 남의 사생활을 의도치 않게 엿듣는 게 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유리의 목소리는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화를 끊고 자전거 페달을 더 힘차게 굴리기 시작했다. 페달에서는 차르르륵, 잠자리가 날개를 비비는 듯한 소리가 났다.

 

- p. 156 | 이름 없는 무덤 中

 



온난한 날들


 

밤비가 내린 풀숲을 지나는 것처럼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비에 젖은 땅과 잎사귀에서처럼 자연의 향과 생각이 담겨 있었다. 기후 미스터리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매력이 분명 있었다.

 

특별한 능력과 천성을 지닌 박화음, 언뜻 예의 없는 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해준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보길 권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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