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이라는 인생의 오솔길에서 - 윤은솔 박상욱 듀오 리사이틀 [공연]

그대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글 입력 2022.07.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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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활약하는 두 실력파 앙상블팀,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의 윤은솔과 피아노듀오 신박의 박상욱 듀오 리사이틀 <그대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가 진행되었다. 1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앙상블 팀을 유지해오며 갈고 닦은 앙상블 구현에 대한 높은 음악성과 해석력을 바탕으로 독일, 보헤미안,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낭만 레퍼토리를 엄선하여 선보였다.


한국과 해외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무대 및 해외 저명 음악제, 독주 무대를 이어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윤은솔과 박상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비엔나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주 프로그램의 구성 역시 유럽에서 보낸 긴 시간을 흡수하고 체화 시킨 본토의 낭만주의 정서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보겠다는 포부가 엿보였다.


1부와 2부는 각각 모두 '로망스와 소나타'로 구성되었다. 낭만주의시대 음악 고유의 서정성과 감수성를 만끽할 수 있는 로망스라는 곡 형식을 소나타와 함께 전달하여 부드러운 정서를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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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R O G R A M

 

A.드보르작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낭만적 소품곡, Op.75

 

J. 브람스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가장조, Op.100


- INTERMISSION -

 

C. 슈만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Op.22

 

E. 그리그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다단조, Op.45


 

 

공연 감상에 앞서



부끄럽지만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다. 다만 내 취향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다는 마음 한구석에는 늘 클래식이 존재했다.

 

김겨울의 『아무튼, 피아노』 를 읽으면서는 내가 클래식에 문외한인 이유가 5살 이전부터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탄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접할 즈음에는 도로 정체에 걸려든 택시 안을 벗어나 수트 차림으로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아오마메를 떠올리며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재생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랜 굴드를 소설의 형태로 녹여낸 『몰락하는 자』를 읽을 때에는 골든베르트 협주곡과 푸가의 기법을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클래식들을 늘 배경음악 삼으며 책을 읽었으니 한번쯤 클래식 공연을 보러갈 법도 했지만 막상 연주회를 보고 나서 의미나 주제의식만을 찾으려 전전긍긍할 나의 모습이 걱정되어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시대를 불변하여 사랑받는 것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클래식 공연이 사랑받는 이유는 연주자와의 관객의 교감뿐만 아니라 과거의 작곡과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최근 접한 크리스티앙 보엥의 문장은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그려보았을 뿐인 클래식 연주회에 방문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바로 그 말 속에 머물며, 침묵할 때면 바로 그 침묵 속에 머문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자리를 정리하고 벗어나, 말과 침묵의 고역에서 해방된 희미한 선율 속으로 멀어져간다. 목적지를 안다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 안에 있다는 것은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연약한 인생의 오솔길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한쪽 빛에서 다른 쪽 빛으로 건너간다.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그 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주저함에 미소 지으며,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우리 안의 희미한 생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크리스티앙 보엥, 『환희의 인간』

 


피아노 연주와 바이올린 선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말과 침묵의 고역에서 해방된 상태를 누리리라.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마음속으로 품은 다짐이었다. 음악 안에서 A나 B의 주제의식 같은 것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그 사이 어디쯤의 희미한 선율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면 될 일이었다.

 

 

 

공연을 감상하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단 두 개의 악기로 빼곡하게 채워지는 70분의 시간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멜로디, 여러 자극적인 요소들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오직 악기 두 개만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요한 몰입의 순간이 펼쳐졌다. 두 아티스트의 손짓 하나, 숨소리 하나,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하나가 모두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시선이 분산될 일이 없으니, 온전히 그들의 움직임만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마치 악기와 한 몸이 된 듯 한 몸짓과 다이나믹한 표정이 모두 인상적이었다.


특히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앙상블팀을 유지해오며 앙상블 구현에 대해 높은 음악성과 해석력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은 앙상블을 구현에 뛰어났다. 잘 짜여진 한편의 시나리오가 그들의 손짓을 따라 재생되었다. 낭만주의 음악 특유의 서정성과 감수성이 사뿐히 내려앉은 손가락 끝에, 바이올린의 현 위에서 펼쳐졌다.


첫 곡, ‘토닌 드보르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낭만적 소품, Op.75’는 본래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소품 3중주였다가 두 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트리오 <소품들>(Miniatures)Op.75a를 드보르자크가 동료들과 연주하기 위해 편곡한 곡이다. 작곡 초기의 악장은 카바티나, 카프리치오, 로망스, 엘레지의 4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로베르트 슈만의 영향으로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4개의 독립적인 소품 모음곡으로 작곡했다는 평가가 있다. 보헤미안적 애수를 짙게 느끼며 음악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낭만적인 시작이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1886년부터 3년간 매년 여름을 스위스 툰 호숫가 휴양지에서 보냈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가장조 Op.100’는 툰에 머문 첫 해에 작곡한 곡이다. 푸른 초원에서 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목가적인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평화로운 생활이 반영된 듯 브람스의 세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밝고 온화한 분위기의 선율이 주를 이루며, 1악장의 알레그로 아마빌레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것 같은 온화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2악장 안단테 트란퀼로-비바체는 시적이며 느린 부분이나 역동적이고 빠른 두 섹션이 번갈아 등장하며 각각 주제를 변주곡풍으로 등장시킨다. 3악장 알레그레토 그라지오소는 론도 형식으로 유려하고 감상적인 주제 선율의 변형과 반복으로 곡 전체에 우아함이 드러난다.


‘클라라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Op. 22’는 비애 어린 집시풍의 서두로 시작해 활기찬 아르페지오와 함께 중심 주제를 거쳐 도입부의 주제로 돌아오는 1악장, 세 개의 악장 중 가장 서정성이 도드라지는 2악장에 이어 첫 악장과 닮은 듯하며 흐르는 듯한 피아노 반주를 동반한 선율로 구성된 3악장에 이르기까지 일생에 있어 사랑과 번민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마지막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다단조'를 작곡한 에드바르 그리그는 북구의 쇼팽이라 불리는 북유럽 특유의 어두운 이미지를 서정적인 멜로디의 고전적인 구성으로 풀어낸 노르웨이 국민음악의 아버지이다. 노르웨이 춤곡의 주제를 곁들여서 ’무곡 소나타‘로 불리기도 하며, 두 악기의 끊임없이 주고받는 토스로 격정과 갈등의 감정을 치밀하게 담아낸 부분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돌림 노래를 하는 것 같기도, 한 치의 양보 없는 다툼을 보여주는 듯도 한 둘의 움직임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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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감상하게 된 낭만주의 음악은 유튜브 클립으로 보던 장면과는 차원이 달랐다. 적막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듯했던 바이올린 활의 움직임과 피아니스트의 우아한 몸짓, 몰입으로 인한 굽은 등의 들썩거림과 바쁘게 건반 위를 현현하는 손가락의 모습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가슴 속에 기입되었다.


“음악 안에 있다는 것은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한쪽 빛에서 다른 쪽 빛으로 건너간다.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그 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주저함에 미소 지으며,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우리 안의 희미한 생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 문장을 다시금 되새겼다. 침묵도 말도 아닌 음악의 선율 속에 빠져, 우리들은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음악에, 그리고 우리 안의 세밀하고 희미한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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