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별한 아내를 추모하는 시인의 방식 - 그녀를 그리다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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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녀를 그리다’는 아내를 사별한 후 시인의 삶을 말합니다.
아내가 급작스레 떠난 후 그는 자신이 자신이 ‘의미 없는 시간의 한 구석’에 버려졌다고 느끼는데요. 아득한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아내의 흔적을 써내려갑니다.
제 1부 이불, 제 2부 단추, 제 3부 살다 보면 살아진다로 나뉘는데요. 일상적인 소재를 활용하며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냅니다.
<마트에서 길을 잃다>
당신과 함께 장을 보러 가던 마트에
이젠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 뒤를 따라 카트를 밀고 다닐 때완 다르네요.
이젠 나 혼자 메모지를 손에 쥐고
거대한 마트 안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문득 앞서가던 당신이 보이지 않아
난 갑자기 멍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일상 속에서 빈자리의 그리움이 더욱 찾아옵니다. 항상 오던 마트가 유독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실과 절망의 나날들입니다.
유기농 야채 코너에도, 정육 코너를 기웃거려봐도 아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함께 장을 보러 가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직접 해보니 이전엔 알지 못했던 아내의 노고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담금술>
당신이 떠난 후 모든 일이 의미가 없어졌기에
술 담그는 일을 한 동안 그만두었지요.
(중략)
3년 쯤 지난 후,
다시 술 담그는 일을 시작했어요.
당신 기일 또는 명절에
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1년에 몇 차례지만
내가 그대에게 보내는 술 몇 잔,
아직 맛이 괜찮은가요?
10여 년에 걸친 세월이 책 속에 담겨있습니다. 빈자리의 그리움에 젖어 살다 보면 삶이 살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시에 담긴 3년의 시간 동안, 술 담그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아내를 위한 제사상을 만들고자 해산물 음식과 술을 차려냅니다. 평범한 어조로 그려낸 이 장면을 떠올리자면 꽤나 먹먹해지는 듯 합니다.
시인 박상천은 <그녀를 그린다>를 통해 아내를 추모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또 다른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이를 추모하는 방식을 두 가지 소개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샤갈, <그녀 주위에>입니다. 전반적인 청색 분위기는 우울감을 자아냅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장밋빛 드레스를 입은 아내 벨라가 그려져 있는데요. 왼쪽 하단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나가 머리가 거꾸로 된 샤갈의 모습이 있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샤갈은 작품에 항상 아내의 넋처럼 보이는 유령을 등장시킵니다.
두 번째 작품은 모네, <카미유의 임종>입니다. 침대에 누워 사망해 있는 아내 까미유를 화폭에 담은 것인데요. 임종에 드리워진 보라색의 빛을 그려냈습니다. 모네는 "그녀의 죽음의 순간, 시시각각으로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윤민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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