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히 남을 전국노래자랑 [사람]

기억합니다. 송해
글 입력 2022.06.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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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우리나라에도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마을에 그 '바보상자'를 가지고 있는 집이 몇 군데 없어서 전국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시간에는 그 집에 삼삼오오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함께 TV를 시청하기도 했고,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는 집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서 부모님한테 리모컨을 조르다가 혼나기도 하였다. 텔레비전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이제는 약간은 정겨운 말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는 행위는 시청한다는 행위를 넘어서,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고 정서를 같이 느끼는 사회적 행위가 된 것 같다. 그 정겨운 텔레비전에서는 참 많은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우리를 울고 웃게 한 많은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국민적으로 인기를 지속적으로 끈 프로그램의 경우, 그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에게도 사람들은 정을 붙인다. 음악, 나레이션, 사회자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렇다. 그렇게 오랜 정을 붙인 요소가 어느 순간 바뀐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 슬퍼하기도, 분해하기도 하며 후임자에 대해 어색한 마음을 비추기도 한다.

 

한 번 예를 들어볼까? 일본에서만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크레용 신짱'(한국판으로 '짱구는 못말려')의 등장인물인 '노하라 히로시'(한국판으로 '신형만', '신영식' 등 짱구 아빠로 알려져있다)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담당한 일본과 한국의 성우들은 모두 안타깝게도 영면에 들었고, 사람들은 그 소식에 매우 슬퍼하며 후임자 성우에 대하여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익숙함이란, 그리고 오랜 정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에게 친근함 그 이상의 감정을 선물해서 삶을 함께 걸어가는 그런 동반자 비스무리한 게 되는 것이다.

 

한 노신사가 있었다. 그 사람은 아주 옛날에는 코미디언으로 활동해서 웃음을 주었다. 활발히 활동하던 도중에 사고로 외동 아들을 잃었다. 그 슬픔에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도 자리를 물러났었다. 청년이었고 중년이었던 노신사는 그렇게 서서히, 노인이 되어갔다. 사람들에게 다시 나선 건 입가에 주름이 꽤나 깊어졌을 때였다. 그는 일요일마다 전국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전국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몇 십 년이 흘렀다. 노신사는 웃음을 되찾아갔다. 전국의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음악과 함께, 악단과 함께, 전국의 국민들과 함께 살아갔다. 어느 덧 그는 95살이 되었다. 이제는 쇠약해진 몸으로, 그는 여전히 시청자를 사랑했고 시청자는 그를 사랑했다. 그렇게 그는 잠들었다. 아주 깊고 깊은 잠에 들었다. 사람들은 그 잠을 믿을 수 없어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외치는 소리를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다. 그의 웃음을 이제 더는 볼 수 없다. 그가 전국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이제 더는 즐길 수 없다. 사람들은 슬퍼했다.

 

故송해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팔도를 돌아다니며 KBS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다. 전국노래자랑과 사회를 맡는 송해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익숙함을 주었고, 오랜 정을 주었다. 그래서, 동반자 비스무리한 게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다. 송해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는 뉴스가 퍼지자 많은 사람들은 그 오랜 정에 매우 마음 아파했다. 앞으로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담당하게 될 사람은 사람들의 어색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익숙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많이 슬퍼한다. 어쩌면 삶을 함께 살아가던 것의 부재이니 슬픔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故송해 선생님도 매일 익숙함을 만들고자 새로움을 찾아 전국을 다니셨던 것처럼, 새로움이란 결국 인연, 그리고 삶에서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그 익숙함을 회의적으로 보자는 것은 아니다. 결국엔 그 익숙함을 위한, 익숙함에 대한 그리움이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그리고 사랑하자. 그리고 앞으로의 것들 또한 사랑하고, 기억에 새기자. 마치 텔레비전이 트는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것처럼.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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