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 뮤지컬 '모래시계' [공연]

글 입력 2022.06.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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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은 시대는 없다. 모든 세대가 제각기 다른 갈등과 문제를 겪고는 한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는 늘 고민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하며,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뮤지컬 <모래시계>는 드라마 <모래시계>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며, 2017년 초연 이후 새롭게 재정비하며 초연 같은 재연으로 돌아왔다. 새롭게 돌아온 <모래시계>는 과거의 격변기를 헤쳐 나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으며 현재의 격변기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스포일러 주의: 아래는 줄거리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아무리 도망쳐도 다시 제자리

끔찍한 어둠이 우릴 기다려

오늘 밤 지나면 알 수 있을까

꿈꾸던 내일은 어디에 있나”

 

- 뮤지컬 <모래시계> 넘버 ‘시대의 어둠을 넘어’ 中

 


뮤지컬 <모래시계>는 1978년부터 1988년까지, 즉 유신정권 말기부터 제6공화국 출범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장르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다루는 수많은 작품이 있었다. 그렇게 동시대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이 탄생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다음 세대를 거치면서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 시대는 격변의 시대이자 ‘야만의 시대’였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던 학생들이 자라나서 평범한 일상생활 대신 투쟁에 뛰어들고, 혹은 미래에 대한 일상적인 꿈조차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끌려갔고, 부정을 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상에 위치하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 시대 속 세 사람, 태수, 우석, 그리고 혜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하지만 힘이 세고 우직한 태수,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 우석,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부잣집의 당찬 딸 혜린. 전혀 다른 배경의 세 명이 한데 모여 친구가 되었고, 어떤 역경이 생겨도 멀어지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역설적으로 작품의 결말을 향해 달려갈수록 그들은 점점 멀어져갔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의 1막을 지나 본격적으로 세 인물이 사회에 뛰어든 2막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다. 혜린이 그토록 혐오하던 아버지의 카지노를 맡게 된 것, 태수가 혜린과 대립해야 하는 권력(안기부)의 편에 서게 된 것, 그리고 우석은 그 둘의 비리를 고발해야 하는 검사가 된 것. 1막에서는 소소한 갈등이 생겨나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있었지만 2막에서는 서로에게 총을 겨눈 것과 다름없는 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 이유조차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혜린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태수를 꺼내기 위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태수는 제 친구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키우기 위해 부정한 권력의 편에 서게 되었고, 우석은 정의를 지키며 친구들을 위한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검사가 되었다. 결국 이 세 사람의 결정은 시대, 그리고 권력에 의한 것이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뒤집히는 모래시계처럼, 세 인물의 상황은 계속 바뀌고 또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자신이 직접 뒤집을 수 없는 모래시계였다. 막강한 권력을 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지배하던 시대에 의해 자의의 탈을 쓴 타의로 상황이 변화하였다. 세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가 그저 그들의 모래시계 속에서 뒤집히면 떨어지고, 또다시 뒤집히면 떨어지는 모래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린 계속 떨어지고 마는 아주 작은 모래알 같겠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뒤집을 수 있겠지”

 

- 뮤지컬 <모래시계> 넘버 ‘모래시계’ 中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직접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왔다. 비록 자신이 직접 모래시계를 뒤집은 결과물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모래시계를 뒤집는 주체가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는 것은 그 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그 변화를 통해 부정을 고발하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모래시계를 뒤집는다는 것은 판도를 뒤엎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권력층이 지나치게 견고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판도를 정반대로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래알들이 뒤집히고 쌓이며 사람들의 노력과 변화도 같이 쌓여갔다. 그렇게 모인 것들이 점진적으로 상황을 바꾸어나갔다.

 

 

 

2. 격변하는 시대 속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세상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인내로 대하라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처럼 치열한 사랑으로 대하라

그리고 살아내는 것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러면 어느새 해답 안에서 살고 있을 테니”

 

- 뮤지컬 <모래시계> 넘버 ‘젊은 시인에게’ 中

 


작품 속 세 인물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고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그 이유는 시대가 그랬기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대라는 가정 자체부터가 비상식적이어서 그들의 행동도, 그리고 그 결과도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감히 대답해보고 싶다.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역사로 남았지만,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주로 불의에 맞서 투쟁한 이들을 기억하지만, 사실 그 시대 속에서 평범하고도 치열하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저 우연히 그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게 된 것을 어떻게 감히 비판할 수 있는가.


끝까지 살아내는 것. 어찌 보면 평범하기도 하지만,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존재다. 이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수많은 고민을 하며 계속 살아간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고통과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것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그저 평범한 일이라고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이 그 시대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아파야 했을까요?

그저 지키고 싶었고, 그저 정의롭고 싶었고, 그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던 세 사람에게 마음으로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너희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 뮤지컬 <모래시계> 책임 프로듀서 정경진 인사말 中

 


이 뮤지컬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모든 시대에는 그 나름의 갈등과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갈등과 고난을 헤쳐 나가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혹시나 자신의 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되돌아오더라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을 건넨다.

 

 

 

3.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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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목표를 위해 수많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잣대를 드리우기에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최소한의 방향성은 필요하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방향성 말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질문을 준다. 어떻게 야만이 문명으로, 불의가 정의로, 독재가 민주주의로 변화할 수 있었는가? 왜 윤회장, 동환, 종도는 악역으로 비판받아야 하며 태수, 우석, 혜린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속에서 악역과 주인공을 가르는 그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각기 다른 시점이지만 동환과 혜린에게는 같은 질문을 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카지노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 그 말에 대한 동환의 대답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짓밟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혜린의 대답은 카지노가 자신의 친구들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동환은 제 목표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망설이지 않지만, 혜린은 타인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 외에도 삶의 방식이 중첩되지만, 그 의미가 다른 인물들도 존재한다. 혜린과 그의 아버지 윤회장은 카지노를 운영한다는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되지만 윤회장은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면, 혜린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일구어낸 카지노를 다시 떳떳한 방법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태수와 종도는 함께 학생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잡아가거나 윤회장의 밑에서 용역 깡패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종도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고 자신도 그저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태수는 자기 행동에 늘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종도가 태수를 칼로 찔렀을 때도 그저 살고 싶었다고 제 행위를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태수가 종도를 칼로 찔러 결국 죽이자 제 행위에 대해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 마침내 자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에 따라 같은 삶의 방식이더라도 그 의미가 변화할 수 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는 삶,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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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첫 장면이 다시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며 세 사람의 이야기를 넘겨받은 영진. 영진은 미래의 세대를 상징하며 그 시대의 기록자가 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곧 이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과거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며 우리는 계속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과거를 기억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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