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이 그림을 만나고 그림이 와인을 만났을 때 -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글 입력 2022.06.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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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 중인 모네의 <수련> 연작

 

 

어느 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데 문득 샹볼 뮈지니라는 와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꽃향기와 따스함, 연못에 고인 물의 습함이 피노 누아로 만든 샹볼 뮈지니 와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와인을 들고 모네가 그림을 그린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마치 모네가 된 것처럼 모네가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셨습니다. 이때 제가 느낀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정희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동양북스, 2022)

 

 

책의 머리말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 이야기 하나로 저자가 왜, 얼마나, 어떻게 '그림'과 '와인'을 사랑하고 그 두 가지를 함께 즐기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과 와인을 감상하는 그만의 방법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정말이지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그리고 의욕이 일었다. 모네는 알아도 <수련>의 연작이 어떤 그림인지, 저자를 와인에 푹 빠지게 만든 장본인 샹볼 뮈지니가 어떤 와인인지 모르는 문외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종의 학구열이.

   

그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 연작의 배경인 프랑스 지베르니 정원에 앉아 샹볼 뮈지니라는 와인을 음미하는 누군가를. 그 누군가가 나라면 어떨지, 아마 뭔지는 몰라도 오래도록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며칠 동안 저 이야기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왠지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내 버킷리스트에 비슷한 목록이 추가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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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하다 와인에 빠져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소믈리에 과정과 와인 시음 과정을 수료했고, 이후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을 취득해 현재는 다양한 프랑스 문화재에서 10년째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작품을 볼 때마다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혹은 작가의 인생과 성향에 따라 어울리고 의미가 연결되는 와인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반대로 와인을 마시면서는 향과 맛에 따라 연상되는 그림을 떠올려보았죠. 서로 닮은 작품과 와인을 함께 즐길 때는 배가 되는 이 감동을 혼자서만 느끼기엔 아까웠습니다. 제가 느낀 이 감동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와인과 미술을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누군가가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있게 연구하고 생각하고, 또 연구하고 생각해서 집필한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니.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와인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입문서가 되고, 평소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으로 두 가지 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색다른 기회가 된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와인과 그림을 향한 저자의 열렬한 사랑이었다. 이 책의 구성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조화, 사랑, 위로, 신념, 변화 등 무려 36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와인과 다양한 그림을 연결시키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1장에서는 와인에 대한 기본 개념을 미술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고, 2장에서는 미술 작품과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정을 엿볼 수 있으며, 3장에서는 와인 라벨과 와인 병에 담긴 아티스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와인과 미술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

 

각 장에서 유독 내 마음을 뒤흔든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와인을 닮은 그림 이야기를 만나보자.


 

 

산뜻함 : 빠르게 완성되는 그림과 와인

모네[인상, 해돋이], 보졸레 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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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앞서 말했듯, 책에는 다양한 미술 작품과 작가가 등장한다. 그 말은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과 작가를 만나거나 새로이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의 경우에는 클로드 모네였다. 저자는 책에서 총 다섯 개의 모네 작품을 소개했는데, 유독 모네의 그림이 나올 때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뎌졌다. 그만큼 더 오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눈에 담았다.

  

<인상, 해돋이>는 풍경과 인물, 사물의 선이 뚜렷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흐릿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섬세하기보다는 빠르고 거친 붓질을 상상하게 되는데, 실제로 모네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물감으로 단번에 그리는 알라 프리마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파라솔을 든 여인>에서는 산뜻하고 경쾌하며 포근한 느낌을 주는 그의 가벼운 붓 터치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그림에 나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바람을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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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파라솔을 든 여인>

 

 

이러한 모네의 그림과 닮은 와인으로, 저자는 보졸레 누보를 꼽았다.

 

보졸레 누보는 포도 수확 이후부터 병입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 보통의 와인과는 다르게 4~6주 정도면 완성된다고 한다. 발효 시 포도를 넣은 밀폐된 탱크에 임의로 탄산을 주입하는 탄산 가스 침용 기법 덕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양조 기술로 인해 알코올 도수는 낮고 떫은 맛이 나며 산도는 적고, 상큼하고 시원한 향미를 지닌 와인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술을 많이 못 하는 사람도 가볍게 마실 수 있다고.

 

장기 숙성력은 부족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산뜻한 햇와인, 보졸레 누보. 한 겹이나 두 겹으로 얇게 붓질해 빠르게 그려내는 알라 프리마 기법으로 순간을 화폭에 담은 모네. 저자가 왜 이 둘을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보졸레 누보가 어떤 맛일지도 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아마 모네가 표현한 <파라솔을 든 여인> 속 솔솔 부는 바람과 같은 맛이 아닐까.


 

 

꿈 : 별을 담은 그림과 와인

고흐[별이 빛나는 밤], 돔 페리뇽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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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별이 빛나는 밤>

 

 

'별'하면 생각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밤하늘의 별을 그려 완성한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별이 빛나는 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론 강변의 밤하늘을 담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중에 동생 테오의 부인인 요한나에게 돈과 함께 응원의 편지를 받은 직후 그려낸 그림이라고 한다. 반면에 <별이 빛나는 밤>은 폴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도려내고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배경은 같지만 그림이 가진 이야기는 달랐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말처럼, 밤하늘에 차분히 빛나던 별빛들의 모습이 회오리를 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으로 달라졌다. 달라진 화풍의 이유가 무엇이든, 고흐에게 '별'은 상반된 의미를 가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꿈'을 꾸게 하는 동시에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갈 수 있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는 갈 수 없는 것일까? 티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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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페리뇽 샴페인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소." 프랑스의 한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이 와인 창고 속 깨진 병에 남아 있던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한 말이라고 한다. 와인 속에 녹아든 기포를 별로 표현한 것으로, 그에 의해 샴페인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분명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샴페인의 유래가 한 편의 영화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그 이야기는 허구에 가깝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샴페인은 특정인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페리뇽 수도사가 샴페인 발명가로 추대될 뿐만 아니라 신적인 존재로까지 업적이 미화되었고, 샴페인 생산자들이 이 이야기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샴페인이 발전했고, 그래서 피에르 페리뇽은 현재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돔 페리뇽 샴페인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 속에 녹아든 기포가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별은 내 기분에 따라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속 차분하면서도 영롱하게 빛나는 별처럼 느껴질 수도, <별이 빛나는 밤>의 역동적이면서도 강렬한 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 : 우리의 힘과 빛

방혜자의 스테인드 글라스, 브루노 파이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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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 대성당을 채운 방혜자 화백의 작품 (출처 : 중앙일보)

 

 

앞서 책을 통해 다양한 작품과 다양한 작가를 만나며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방혜자 화백의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은은하고 고요하지만 단단하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였다. 어쩐지 그 모습이 한 마리의 섬세한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아서.

 

방혜자 화백은 자신의 화폭에 빛을 그리기 위해 일평생을 노력했다고 한다. "빛은 생명의 원천이고, 생명들의 사랑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러한 기쁨은 평화의 원천입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빛과 에너지와 평화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2018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녀의 작품으로 물들였다. 첫 번째 창부터 '빛의 탄생', '생명, 빛의 숨결', '사랑, 빛의 진동', '평화, 빛의 노래'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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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파이야르 샴페인 / 방혜자 화백, <에너지>

 

 

브루노 파이야르는 와인 라벨에 샴페인 제조 시 침전물을 제거하는 과정인 데고르주망의 날짜를 처음으로 표시한 인물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와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사람이 수술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데고르주망을 거친 후 가장 필요한 것은 회복으로, 브루노 파이야르에서는 최소 5개월, 최대 18개월의 휴식기를 가진 와인을 최종 소비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휴식기를 거치고 나면 와인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파리의 갤러리에서 우연히 자신의 샴페인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방혜자 화백의 <에너지>를 보고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2008년 빈티지 샴페인 와인 라벨에 그녀의 작품을 새겨 넣게 된 것이다. 브루노 파이야르의 선택은 옳았다. <에너지>로 채워진 샴페인이 참 근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와인은 물론이고 와인병 수집에도 전혀 접점이나 취미랄 것이 없는 나조차도 소장 욕구가 일 정도로 말이다. 말하자면, 술이지만 마셔도 에너지가 채워질 것 같은 느낌이다.

 

"색과 빛, 그리고 생명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우주의 모습이 자신의 작품에서 우러나오길 바랐던 방혜자 화백, 샴페인을 단순한 술이 아닌 우리의 삶을 더욱 즐겁고 빛나는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며 와인을 생산하는 브루노 파이야르의 모습은 많이 닮아있습니다. 살아 숨 쉬며 잔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활기찬 기포와 빛으로 가득한 이 와인, 그리고 이 작품을 함께 만나보며 내 안의 또 다른 에너지를 얻어가길 바랍니다." 저자의 말이 주문이 되어, 이후 방혜자 화백의 작품과 브루노 파이야르 와인을 만났을 때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들이 그림을 대하고, 와인을 대하는 열렬한 마음을 떠올리며 말이다.


*


이 외에도 다양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와인을 닮은 그림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서로 닮은 작품과 와인을 함께 즐기며

 배가 되는 감동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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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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