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아트인사이트의 칼럼니스트, 이중민 에디터를 만나다

이 세상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해요. 나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요.
글 입력 2022.06.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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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만나는 5번째 시간.

 

이번에 만난 귀인은 <혐오의 시대>, <축구에서 브랜딩을 찾다>칼럼을 쓰셨던 이중민 에디터님이다.

 

이중민 에디터님은 20년도 초부터 활동을 시작하셨고, 최근엔 스포츠, 게임, 사회적 이슈, 컨텐츠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기고하고 계신다. 내가 처음 본 중민님 글은 <혐오의 시대 #1>이었는데, 칼럼을 써보고 싶은 입장에서 본 가장 이상적인 칼럼이었기 때문일까, 그때 본 칼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그때 이후로 <혐오의 시대> 칼럼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혐오의 시대> 마지막 편을 보고 난 후, 이토록 긴 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신 중민님을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인터뷰 신청 메시지가 오기만을 간곡히 기다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신청을 마치고 중민님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인터뷰 질문을 정리하던 나는, 중민님이 최근에 쓰신 칼럼들을 보며 이번 인터뷰 역시 할 이야기가 많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게임 칼럼이라니. 이것 역시 내가 언젠가는 한번 써보고 싶었던 칼럼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인터뷰 역시 Q&A 형식보다 대담 참여자를 뜻하는 K(KJH)와 Y(YJM)를 활용해 대화를 다시 구성해보았다.

 

 

 

아트인사이트의 칼럼니스트



KJH(이하 K). 제가 중민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글이 굉장히 짜임새 있다'였어요. 자료조사를 많이 한 다음 글을 쓰시는 것 같은데, 보통 글 쓰실 때 얼마나 오래 걸리시나요?

 

YJM(이하 Y). 지금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컬쳐리스트이기 때문에 월 2회 기고를 하고 2주에 한 번씩 쓰고 있는데, 그렇게 주어진 2주를 다 할애하고 있습니다.


2주 동안 계속 매달리는 건 아니고요, 2주의 90%는 자료들을 찾아보며 어떤 식으로 글을 쓸지 기획하고 나머지 10%만 글을 써요.

 

K. 2주 동안 글 쓰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많이 없고 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는군요.

 

Y. 그렇죠. 이건 제 개인적인 기질이랑도 연관되는데, 내 안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타입이라 최소한 기승전결 흐름만이라도 갖추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좀 피곤한 타입이기도 한데, 분량 같은 경우도 어느 순간 이렇게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나와요. 기본 4페이지에서 6페이지 정도 나오더라고요. 요즘은 그래서 많이 덜어내고 라이트하게 가려 하고 있습니다.

 

K. 자료 조사를 많이 하셔서 그렇게 분량이 많은 것 같아요.

 

Y. 자료 조사에 대한 부분도 있겠지만, 제 나름대로 하려는 말이 많고 그 말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려 하다 보니 점점 분량이 길어지더라고요. 사실 너무 긴 분량의 글이 무조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에 글도 하나의 소통 수단이고 그러한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유도리 있게 잘 전달하는 건데 그 말이 길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된다, 이런 건 아니잖아요. 말이 짧아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잘 전달하면 그것 또한 좋은 소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엔 많이 덜어내려 하고 있어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K. 지금 한 달에 2회라는 횟수가 정해져 있잖아요. 만약 한 달에 1번으로 목표가 줄어든다면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까요?

 

Y.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요. 한 달이 주어지면 그중 절반은 편하게 쉬고 나머지 절반은 글에 매진할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한 달이면 90%는 지금처럼 계속 구성을 짤 테고 나머지는 글을 쓸 것 같아요.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 달에 2회에서 1회로 줄어들면 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달에 딱 한 번밖에 안 된다는 뜻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럼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 글을 쓰기 위해 애쓸 것 같아서 부담만 늘어날 것 같아요.

 

K. 글 분량에 대한 강박 관념은 없으셨어요? 이전 글들은 분량이 기니까 전처럼 길게 맞추지 않으면 불안하다던가요.

 

Y. 그게 작년까지는 꽤 심했어요. 글을 썼을 때 초고가 3, 4페이지 정도 되면 '어디 부족한 면이나 빠진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될 대로 되라 식으로 10페이지 가깝게 써놓고 퇴고하면서 줄이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었어요. 

 

K. 자료 조사를 하실 때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맞춰 자료를 찾는 편이시죠?

 

Y. 그렇죠. 뉴스를 많이 참고 하고 관련 서적도 보면서 다른 칼럼에서도 찾는 편이에요. 통계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들을 추출하기도 하고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통계 자료가 중요한 글들이 한 번씩 있어요. 그때는 글에 들어가는 통계 자료가 잘못되면 글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요.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안 나오는 경우에는 제 글의 방향을 수정하는 편이고요.

 

K. 칼럼은 그렇게 공을 많이 들이는 만큼 단기간에 쓰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Y. 칼럼 어렵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칼럼에 너무 어렵게 다가가는 것도 그렇게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최근에 쓰는 글들은 리뷰나 오피니언이 거의 없고 칼럼이 대부분인데, 칼럼을 너무 어렵게 보지 않으려고 그런 시도를 한 거예요. 지금 제 입장에서의 칼럼은 언론사의 기자분들이 쓰는 정돈된 칼럼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으로 칼럼을 쓰거든요.

 

예를 들어 최근에 있었던 게임 이슈 중에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2> 평론 관련 비판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이게 꼭 평론가들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 나름대로 삐딱하게 던졌던 생각이 어쩌다 보니 칼럼으로 발전하게 된 거예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라이트한 접근을 제 나름대로 풀어내는 방식이 저의 칼럼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평론의 종말 - 더 라스트 오브 어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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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대중의 평가와 평론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나뉜다)

 

 

K. 칼럼을 정말 많이 쓰셨어요. 올림픽 글도 쓰시고, 게임 관련 글도 쓰시고, 축구도 쓰시고.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Y. 네 맞아요. 일단은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현상에 대한 제 생각들이 모이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서 필요할 때마다 쓰는 거죠. 이렇게 써놓은 글들은 나중에 저에게 득이 되기도 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당시 제가 세상을 바라봤던 시각이 글로 남으니까 어찌 되었건 저에겐 유의미한 일이에요.

 

 

 

User & Player


 

K. 최근 글들은 게임을 주제로 많이 쓰셨던데, 평소에 게임을 자주 즐기시나 봐요?

 

Y. 요즘은 바빠서 못하고 있는데 한때는 넥슨 게임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스팀 게임을 주로 하고 있고요. 스팀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더라고요.

 

K. 어마어마하게 많죠. 워낙 방대한 플랫폼이라.

 

Y. 그래서 스팀 게임들을 하나씩 해보는 중이고, 주변 친구들이랑 게임 이야기 하다보면 다른 게임에도 관심이 생겨서 덩달아 같이 해보기도 하고요.

 

K. 제가 본 글만 해도 거의 10편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게임을 하면서 글 생각을 좀 하는 편이세요?

 

Y. 그렇다기보다 사람 마음을 진하게 흔들거나 특정 메시지를 던지는 게임들이 간혹 있어요. 가장 최근에 썼던 글이기도 한데 <라스트 데이 오브 준>도 처음엔 별 생각 없이 그냥 퍼즐게임처럼 즐겼는데 결말이 굉장히 감동적이어서 글로 옮기게 됐어요.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 - 라스트 데이 오브 준)

 

예전에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나 취미 생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게임이 여타 예술 장르와 비슷하게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하나의 예술 매체다, 라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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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데이 오브 준>.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시간을 넘나드는 주인공의 감동 이야기.)

 

 

K. 그럼 스토리텔링 위주의 게임을 즐기시겠군요.

 

Y. 맞아요. RPG 게임이나 스토리가 있는 콘솔 게임들을 좋아해요.

 

K. 스팀에는 그런 게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들은 스토리텔링보다는 다른 게 중요시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레이드나 랭킹 시스템, 강화 등이 있죠.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좋아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부분이어서요. 

 

Y. 말씀 주신 것처럼 스팀에는 스토리가 좋은 게임이 굉장히 많아요. 옛날에는 저도 <메이플스토리> 같은 게임들을 주로 했는데, 스팀으로 넘어온 다음부터 '이런 게임도 있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이 드는 게임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스팀에 정착하게 됐어요. 물론 게임 사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지만요.

 

K. 돈값 한다는 생각이 들면 후회는 안 되죠. 

 

Y. 따지고 보면 온라인 게임에서 캐쉬 지르면 돈을 더 많이 쓰는데(웃음) 여기서는 딱 한 번만 지불하면 되니까 못 지를 건 뭐냐 싶죠.

 

K. 저도 중민님처럼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스토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보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Y. 맞아요.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하지 않는 이상 스토리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죠. 대신 스팀 게임 같은 경우에는 출시할 때부터 스토리가 완결된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죠.

 

K. 여태껏 했던 스팀 게임 중에서는 어떤 게임이 가장 좋으셨어요.

 

Y. 가장 인상적인 게임이라 하면 <인모스트>요. 제가 글로 쓰기도 했던 게임인데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게임성이 여타 게임들과 달리 독특한 면이 많았어요.

 

퍼즐 게임 요소도 있고 탈출 게임 요소도 있는데, 거기다 액션 게임도 섞여있어서 인상적이었던 게임이거든요. (게임은 예술이다 - 인모스트INMOST)

 

 

(<인모스트> 공식 트레일러.)

 

 

K. 안 그래도 중민님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너무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어떤 게임일까, 싶어서. 그래서 밑에 스포일러 나올 때 얼른 뒤로가기 눌러서 나왔어요.(웃음) 나중에 해보려고요.

 

Y. 어려워요.

 

K. 아 어렵나요?(웃음)

 

Y. 몬스터 잡는 것도 어려운데, 길 찾는 게 더 힘들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공략 보면서 깼습니다.(웃음)

 

 

 

게임은 예술이다


 

K. 최근에 핫한 게임이 하나 있죠. 국산 게임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는 <로스트아크>.

 

Y. 오, 요새 가장 즐겁게 하는 게임이에요. 

 

K. 반갑네요 되게.(웃음) <로스트아크>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정말 화제였거든요. 

 

Y. 저 또한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도 <로스트아크> 영향이 컸어요. 최근 나온 스토리를 즐기고 나서 든 생각은 '게임은 가장 고차원적인 예술 장르다'였어요.

 

게임이 여태까지 상대적으로 홀대 받았던 부분 중 하나는 게임에 나오는 대부분의 예술적 문법들이 기존의 예술 장르에서 하나씩 가져왔기에 게임만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여타 예술 장르는 정체성이 뚜렷하지만, 게임은 속에 내재된 예술 문법 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렇기에 강력한 인상을 줄 특출난 수단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로스트아크>가 보여주듯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예요. 제가 능동적으로 플레이 하지 않으면 그 게임은 진행이 되지 않죠. 게임은 플레이어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흘러가고 결국 그 길고 긴 서사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 됨을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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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시즌을 마무리 하는 엘가시아 대륙 업데이트는 스토리를 즐기는 많은 유저들의 심금을 울렸다.)

 

 

K. 맞아요. 일방적으로 보여주려는 특성을 지닌 영화나 음악, 문학, 공연과는 다르게 유저가 움직이지 않으면 게임은 절대 끝을 볼 수 없어요. 일부 몇몇 게임들의 경우에는 멀티 엔딩이기도 해서 유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게임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행동에 기인합니다. 그건 어떤 예술 장르도 흉내낼 수 없는 복합 문화로서의 게임이 가진 강점이에요.

 

Y. 여기서 한 가지 더 첨언을 드리자면, 굳이 그런 RPG류의 게임이 아니더라도 롤(League of Legend)이나 오버워치 같은 경우에는 유저 간의 대결구도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PvP(Player VS Player)게임이잖아요. 이런 게임들의 경우는 게임 스토리를 유저가 스스로 창조해낼 수 있어요. 게임 내내 지는 분위기로 흘러가다가 기적처럼 역전을 해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거나, 반대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적에게 크게 얻어맞고 처절한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서사거든요. 이런 서사를 만드는 것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고 이것 역시 다른 예술 장르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게임 만의 특징이죠. 다른 예술 장르는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게임의 경우에는 스토리의 가능성만 제시를 해주고 나머지는 유저들이 스스로 찾아가게끔 유도해요.

 

그 과정에서 내 작은 행동과 선택이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죠. 또한 예술 작품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창작자가 상대적으로 덜 대두되고 오히려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나 익명의 개개인들이 주가 되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치고 올라오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게임이라는 예술이 현대 사회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지금 사회 모습과 정말 비슷하거든요. 투표가 그렇고 민주주의가 그렇죠.

 

그래서 게임이 어떻게 보면 현대 시대상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 장르가 아닌가 싶어요.

 

K. 그렇기에 <로스트아크>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 여태까지의 국산 RPG 게임 디렉터들은 자신이 유저들보다 더 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잖아요. 내가 창작자니까 내 말이 맞아, 너희는 내 말을 들어야 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로스트아크>의 금강선 디렉터는 달랐어요. 유저와 동등한 입장에 서겠다, 우리 게임에 잘못이 있으면 뜯어 고치겠다, 쓴소리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이 부분은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인정하고 사과하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여태까지의 디렉터들과는 차원이 달랐죠.

 

결국 문화 예술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인데, <로스트아크>의 금강선 디렉터를 보니까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결국 이런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Y. 게임 자체가 유저들의 선택으로 이뤄지니만큼 유저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동안의 한국 게임 산업에서는 그게 많이 부족했어요. 일방적 소통이었죠. 그런데 금강선 디렉터가 유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태도를 보여줬고 그 소통의 결과가 게임의 흥행에도 큰 영향을 끼치면서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되었어요. 

 

비록 금강선 디렉터는 전반적인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좋은 선례를 남겨주셔서 저희 유저들은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죠. 이번 사례가 한국 게임의 인식을 바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해요. 

 

K. 이번 사례를 보면서 다른 게임사들도 많이 느꼈을 테고요.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해요.

 

 

 (낭만을 꿈꾸는 자, 금강선 디렉터 이야기. - 유튜브 <영래기> 채널)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K. 20년에 쓰신 내가 쓰고 싶은 책 글에 인터뷰 집을 만들고 싶다 하셨어요. 저도 중민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집을 만들 계획이에요.

 

Y.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면 거기 나오시는 게스트 분들이 다 평범한 분들이거든요. 우리 일상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데, 한 시간 분량의 방송이 뚝딱 나오고 그게 몇 년째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잖아요. 그 방송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모두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각해서 그 모습에 저도 깊은 감명을 받아 인터뷰 집을 쓰고 싶다고 했어요.

 

K. 그런 마음들을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는 동안 더 키우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Y. 그렇죠. 소방서에서 굉장히 이상적인 에피소드들을 많이 겪었어요.

 

지금 기억나는 사건이, 소방서에 "나는 이제 죽을 거다."라고 전화가 걸려오고 딱 끊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신고가 들어오면 관할 소방서가 경찰과 연계한 후에 출동을 가요. 전화 거신 분이 진짜로 괜찮은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전화 주신 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연락이 끊어진 곳 근처 산을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어떤 주민분께서 소방대원 여러명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까 우리가 뭐하는지 궁금하셨나봐요. 무슨 일이냐고 저희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략적인 말씀을 드리니 그 분께서 자신이 이 산 지리를 잘 아니까 안내를 해주겠다며 저희를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서 두 세 시간을 찾다가 다행히 신고자분을 찾았는데요, 신고자를 찾은 건 우리 소방대원이나 경찰관이 아닌 아까 그 동네 주민분이셨어요. 당시 상황을 확인해보니, 실제로 그 분은 자살 시도를 하셨더라고요. 나무에 목을 매달려고 하셨는데 나뭇가지가 얇아서 부러졌나봐요. 다른 나무를 찾으려 하는 와중에 주민분을 만나게 된 거죠. 그 분은 저희 소방대원이 갈 때까지 계속해서 신고자분을 설득하셨대요. 그리고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보호까지 해주셨죠.

 

저희는 사람을 구하는 직업이니까, 어떤 의무감에 따라 이런 일을 하는 거지만, 그 주민분은 대가도 없고 의무도 없는데 순수한 선의로 사람을 살린 겁니다. 살린 건 한 사람이지만, 주민분께서 구한 건 한 가족이자 한 공동체죠. 

 

그런 사례를 보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게 되었어요.

 

K. 그것도 기억나요. 심정지 환자를 심폐소생술 했지만, 끝내 사망한 일이요. 환자분을 구하지 못했지만 그 가족 중 한 분께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넨 일이 있었죠. (나를 들여다보며)

 

Y. 맞아요. 저희는 그런 일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요.

 

구급차 안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도 보고, 병이나 사고로 바로 앞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도 많이 보게 되죠.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되는 경우와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에요. 이런 것들을 옆에서 계속 보다보니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K. 사실 일반인들은 삶의 시작과 끝을 옆에서 볼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때 삶의 가치관도 많이 변화했겠어요.

 

Y. 그때 이후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성격은 아닌데, 소방서에서의 사건들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신경 써야겠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죠.

 

K. 소방서 경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혹은 사회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결국 그건 중민님 칼럼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네요.

 

Y. 그런 것들이 제 칼럼을 쓰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죠.

 

 제가 군복무를 하던 17년과 18년에 마음 아픈 사건들이 특히 많았어요. 구급대원이 주취자에게 폭행당해 뇌출혈 때문에 돌아가신 사건, 화재 사고 진압 도중 순직하신 사건, 야생 동물 구조 출동을 나갔다가 뒤에서 트럭이 치는 바람에 소방관 세 분이 돌아가신 사건 등이 있었어요.

 

그때 전국의 소방서에서 조기 게양을 하고 검은 리본을 가슴 한쪽에 달고 일을 했는데요, 이런 사건들이 기사화 됐을 때 나온 말 중 하나가 소방관이 해야할 당연한 일을 한 것 아니냐, 하는 죽음을 당연시 여기는 말이 있었어요. 소방 일을 모르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화나는 일이죠. 저도 엄청 화났고요. 바로 옆의 동료를 잃은 거잖아요. 동료를 잃은 소방관들은 이런 사건이 얼마나 참담하겠어요. 

 

그때부터 그런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하는 일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불합리함, 약자에 대해 덜 생각한다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모아서 칼럼으로 쓴 것이고요.

 

K. 타인의 고통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아요. 저는 이런 현상이 우리의 실제 거리는 너무 멀지만,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지게 된 것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넷 공간은 누군가의 죽음을 전해 듣기가 굉장히 쉽잖아요. 조금만 찾아봐도 누가 사망했고, 어떤 일 때문에 희생자가 발생했고, 누가 별세했고, 등등의 정보가 너무 많아요. 이런 것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Y.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매체가 발달하고 통신이 발달해서 안타까운 사건들을 아는 경로는 굉장히 많아졌지만, 반대로 그것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는 기회나 시각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해요. 말씀 주신 것처럼 누군가의 사연에 대해 단순히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거나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막 쉽게 넘어가진 않겠죠. 

 

이런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잖아요. 최근에는 마리우폴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들이 연일 보도 되고 있고요.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고 끔찍한 사건인데 당장 채널 한 번만 돌리면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와요. 그럼 그걸 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쟁 상황을 순식간에 잊게 되는 거죠. 그 모든 과정이 손가락 하나로 이뤄져요. 참 아이러니 하기도, 무섭기도 하죠.

 

결국 깊이 생각하는 기회 자체가 적어진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입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생각하게 되고요.

 

K. 이건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Y.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오는 정보의 양은 너무 많으니까요.

 

이해와 공감,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모든 사건에 일일이 교감하고 반응할 수 있겠어요. 고되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위와 같은 일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혐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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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혐오의 시대> 칼럼을 <닥터 프로스트>라는 웹툰과 엮어 풀어내셨는데 여기에 혐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나보죠? (<혐오의 시대> - 총 5편)

 

Y. <닥터 프로스트>는 크게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시즌에 그 내용이 나와요. 

 

외국인 혐오에 대한 내용도 있고 노년층에 대한 혐오,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에 대한 혐오 같은 내용도 나옵니다. 

 

이 웹툰이 흥미로운 게, 우리가 보통 혐오라고 하면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아요. 예를 들어 인종차별의 경우, 인종차별이 왜 일어났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있었던 백인 우월주의를 꼽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요소들은 혐오의 근본적인 원인보다는 하나의 트리거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혐오를 촉발시키는 방아쇠일 뿐이지 혐오라는 총알을 총 안에 집어넣는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닥터 프로스트>는 총알을 집어넣는 손을 조명했어요. 그게 바로 두려움이고 자기 의심 없는 정의감입니다. 즉, 혐오의 원인을 외부에서 그만 찾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근원적인 매커니즘을 찾아보자는 의미였죠.

 

K. 마사 누스바움의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도 혐오의 원인은 두려움이라고 정의내립니다.

 

Y. 사실 두려움만큼 상대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좋은 계기가 없어요. 실제 심리학 이론을 보면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제한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이 행동을 했을 때 당신이 입을 수 있는 손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거든요.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파급 효과를 절대 무시할 수 없죠.

 

그렇지만 무작정 두려워하지는 말고 우리가 왜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속담 중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 말로는 황혼인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나를 해치는 늑대인지, 내 친구인 개인지 구분이 안 가는 시간대여서 그런 말이 생겼어요. 사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불안하잖아요. 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건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두려움도 다 이런 매커니즘이죠. 모르는 것에서 오는 불안함.

 

전 이런 두려움에 대해 제대로 살펴본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K. 두려움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 두려움이니까 알려고 하는 노력만 있으면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거든요.

 

Y. 실제로 더 잘 대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K. 결국 본성과 이성의 사이에서 어디로 기울 것이냐, 하는 문제로 나아갈 수 있겠고요. 내가 품는 두려움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인지, 이런 두려움의 끝은 어떨 것인지 계속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 사회가 혐오의 시대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Y. 그래서 그 부분과 연관해서 자기 의심 없는 정의감도 끌어온겁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라는 단 하나의 의식만 있어도 많은 것들이 바뀌고 해결될 수 있거든요. 

 

K. 내 생각이 맞다, 내가 다 알고 있다, 라는 게 착각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닌 경우가 더 많죠.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렇게 믿어야 내가 편하니까, 그런 편안함에 안주하기 위해 포기해버리는 부분들이 사회의 불안정을 가져오죠.

 

Y. 그것도 한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아까 말씀 주신 것처럼 현대 사회의 정보는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없고, 그러다보니 깊은 생각을 할 기회 자체가 적어지니까 자신의 생각을 의심할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들었거든요. 빨리빨리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환경적 요건도 무시할 수 없고요.

 

K.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과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하니까.

 

Y. 사실 대단한 것을 할 필요는 없죠. 더 대단한 건 저기 위쪽에 정치인분들이 하시는 거고, 우리는 이런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 스스로 그런 논리를 생각해볼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싶은 거죠.

 

K. 한편으로 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의 단면만 보고서 판단하기에는 세상 일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거든요.

 

Y. 저도 그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독선이 많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에서 쓰긴 했지만 저는 악에도 나름대로 계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시대에는 무서운 짐승들이나 자연재해 같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이 악이었다면, 중세에는 신앙이 많은 영향을 끼치다보니 악마 같은 막연한 이미지들이 악의 자리를 차지했고, 산업 혁명 이후 시대는 범죄나 도시 문제들이 떠오르는 악이 되었고, 그리고 20세기 초반은 홀로코스트 같은 대량 학살이 악의 계보를 이었다면, 현재 시점에서는 독선이 그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이 독선이 굉장히 무서운 게 앞서 언급드린 악들은 나름대로 악하다는 것에 확신이 있잖아요. 히틀러를 떠올리면 악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로 떠오르듯이요.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의 독선은 어떻게 보면 선의 일종이거든요. 그 선이 다른 의견을 배타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악이 되는 건데, 이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큰 문제예요. 사실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던 일이 악한 결과로 도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잖아요. 이런 일들을 막으려면 내가 가진 선의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인지 한번쯤은 의심해야하죠.

 

이런 일들이 수학 문제처럼 1이면 1, 2면 2 이렇게 딱 떨어지면 좋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까 내 의견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견지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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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은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파괴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K. 그렇게 나온 <혐오의 시대>는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게 눈에 확 보여요. 5편이나 되는데, 이 칼럼들을 쓰면서 걱정되는 면이 있으셨나요?

 

Y. 일단 굉장히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게 걱정이 됐고, 또 혐오의 원인으로 위에서 말씀드린 두려움과 자기 의심 없는 정의감을 꼽았지만, 사실 외부적인 요인도 혐오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거든요. 이것이 만약 잘못 전달된다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한편으로 지나친 일반화를 할 우려도 있어서 그 부분이 많이 걱정되었어요.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이런 문제가 있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나 비전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 할까봐, 그리고 제가 제시한 답을 사람들이 잘못 받아들일까봐 결론 부분을 작성하는 데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런 걱정들 때문에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최종적으로 글을 기고하기까지의 과정이 거의 1년 넘게 걸렸어요. 

 

K. 무려 1년이었군요. 오랜 기간에 걸쳐 작성된 글들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중민님은 이런 혐오 현상에 대해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하셨고요.

 

Y.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면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 이해와 공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는 시도가 저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을 뽑는데 성별 할당을 두자, 라는 의견에 대해 찬반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대하는 사람은 찬성하는 사람의 입장을 한 번 정도는 생각했으면 좋겠고, 역으로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을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좋겠고요. 

 

각자 나름의 근거가 있잖아요. 찬성측 입장은 실제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들은 남성에 비해 많이 적고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반대측 입장은 국회의원 제도가 지역구 제도로 되어있기 때문에 성별로만 하다보면 되려 좋은 인재를 놓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라는 거죠.

 

다만 이해와 공감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 말미에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이고요. 

 

저는 차별금지법이 처벌을 하는 것에만 집중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은 이 법이 아주 오래 전에 통과됐어요. 그런데도 계속 인종차별 문제가 생기는데, 저는 그 원인이 처벌에 집중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에만 집중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반발심을 느껴요. 더 중요한 건 차별이 왜 나쁜건지 교육하는 것이고, 여러가지 시각들을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만들어질 차별금지법이 처벌보다는 교육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교육을 잘 시킬 수 있고 그 교육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그 법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K. 앞으로는 어떤 글을 써보고 싶으세요?

 

Y. 요즘 제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게임 관련 글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게임은 고차원적인 예술이고 그러다보니 할 이야기도 많다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게임 이야기를 쓸 계획이에요.

 

K. 지금 당장 생각 안 나시면 말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미래의 꿈 같은 게 있으신가요?

 

Y. 보통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월 500버는 게 꿈이다(웃음)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 커리어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대단한 비전은 아직 없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명확한 계획없이 어쩌다 보니까 하게 된 것이라서요. 

 

그래서 그런 측면의 비전은 없지만, 취직 준비할 때 부모님께 제가 이야기 했던 게 '나는 마흔 전에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내 마음대로 편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 거다. 그게 내 꿈이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그럼 그때 다같이 여행 다니면서 재밌게 살자'였어요. 그때는 심드렁하게 받아들였는데 어느 순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라고요. 

 

그게 지금의 꿈이라면 꿈이고 나중의 프리랜서 상태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 다니면서 살 수 있는 여유 같은 걸 가지고 싶어요. 되게 소소하죠.

 

K. 명확한 목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저 소소한 뭔가가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는거니까요. 옛날에는 큰 목표를 설정하고 사는 게 진짜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작은 목표라도 그것이 내 하루를 소중하게, 가치있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소확행이라는 말처럼요.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중민님이 생각하시는 문화 예술은 뭔가요?

 

Y. 제가 예전에 글로 한번 썼었는데 문화 예술이 왜 나왔냐, 를 생각해본다면 문화 예술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거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기가 가진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가 문화 예술인 것 같아요. 문화 예술을 보면 그 안에 사람이 있죠. 우리는 문화 예술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끝은 소통이 되는 것이고요.

 

*

 

인터뷰 글을 신나게 옮겨적다 보니 이렇게 양이 많아질 줄은 몰랐다. 

 

중민님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양이 많은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은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려다보니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욕심을 부려보았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야 했을 다른 아트인사이트 구성원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이번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중민님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칼럼을 쓰는 것을 그리 어려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느 정도 무게감 있는 글을 칼럼이라 부르고 그에 합당한 글을 쓰는 것이 칼럼을 쓰는 사람의 의무라면 의무겠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경우도 아니고, 내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아니기에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 나아보였다.

 

첫 주제라면, <로스트아크>로 시작하고 싶다.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일무이한 디렉터이자 꿈꾸는 낭만 전도사, 빛강선. 그가 창조한 희대의 역작 <로스트아크>를 천천히 조명할 테다. 비록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로 현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렇기에 그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떠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가 보여준 모든 모습들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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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게임 디렉터의 모습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같이 게임 속 희로애락을 즐기는 유저의 모습으로, 때로는 뜬금없는 감동을 선사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낭만 전도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오래 알고 지내온 편한 친구의 모습으로, 그리고 때로는 길고 긴 인고의 세월들을 견뎌낸 후 끝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나서야 산화해버린 소년 만화 주인공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는, 우리 <로스트아크> 유저들의 영원한 캡틴, 키팅 선생님이다.

 

자신의 모든 것에 진심인 사람, 그 진심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애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도와준 모든이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의 인생작인 <로스트아크>에 관한 칼럼을 쓰고 싶다.

 

항상 진심으로 다가왔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날 되돌아본다. 난 누군가에게 정말 진심으로 다가간 적이 있었을까? 난 내 진심을 누군가에게 잘 전달했을까? 내 진심을 누군가가 전해들었을까. 나의 진심이 제대로 느껴졌을까.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고 나에게 용기를 주신 중민님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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