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은 예술이다 - 인모스트INMOST [게임]

글 입력 2022.03.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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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예술이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순순히 납득할 수도, 혹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동생들에게 먼저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한 명은 게임이 ‘오락’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정석적인 대답이다. 우리는 모두 즐겁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거니까. 나머지 하나는 게임이 ‘XX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엘든 링>을 플레이 중이었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째서 예술이 될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기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행위나 오브제가 결국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우선 나름의 미적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예술 작품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 인물들 간의 배열, 구도 등을 통해 나름의 미적 논리를 구성한다. 또한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가곡 <송어>는 변칙적인 악기 구성과 음정들 간의 관계, 곡의 형식, 가사 등을 통해 독창적인 미적 논리를 제시한다.

 

다음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써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예술을 하는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바로 ‘표현’이다. 우리는 각자의 감정, 혹은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원시시대 원시 인류들이 그린 동굴의 벽화다. 벽화를 그린 이유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주변 지역과 사냥감에 대한 정보를 남기기 위해서, 혹은 샤머니즘적인 목적에 의해서라는 견해가 가장 우세하다. 앞서 말한 <최후의 만찬>과 <송어>도 마찬가지다. 나름의 미적 논리를 바탕으로 <최후의 만찬>은 성경의 내용과 다빈치가 생각하는 기독교적 이상을, <송어>는 강물에서 헤엄치며 뛰노는 송어의 생기와 활력을 표현한다(예술에서 메시지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게임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완벽히 충족한다. 우선 게임의 스토리는 일종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활용되는 일러스트나 그래픽 디자인은 미술의 영역에 속한다. 이외에도 성우들의 연기, BGM(음악)이 들어가기도 한다. 비록 상업적인 속성에 매몰된 감이 없진 않지만 나름대로 미적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단적으로 영화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대표적인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는 영화 역시 시나리오(문학), 세트 및 의상 디자인(미술), OST(음악), 배우들의 연기, 연출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힘을 빌려 나름의 미적 논리를 구성한다.

 

이러한 이유로 게임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영화가 제7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게임은 제8의 예술이다. 20세기 촬영 및 영사 기술의 발달이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면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게임이라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야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게임은 예술이다’라는 주제에 걸맞은 한 편의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인모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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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제목 : 인모스트INMOST

장르 : 인디, 어드벤처, 퍼즐, 액션

개발자 : Hidden Layer Games

출시 날짜 : 2020년 8월 21일

가격 : 15,500원 (스팀 기준)

 

 

 

(1) 감성 넘치는 비주얼


 

어떤 책은 첫 문장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어떤 영화는 첫 장면만으로도 사람을 매료시킨다. 내겐 <인모스트>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게임을 시작한 지 정확히 10초 만에 나는 내가 이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인모스트>는 기본적으로 픽셀 아트 기반의 게임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그래픽을 가지고도 <인모스트>는 어마어마한 표현의 깊이를 자랑한다. 당장에 오프닝 장면만 봐도 그렇다. 황폐화된 세계 위로 하얀 빛이 떨어지자마자 황무지는 숲으로 변하고 부유하는 빛의 파편을 따라 나무가 자라난다. 하지만 나무가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룰수록 세상은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이를 보다 못한 빛의 파편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어느 기사에게로 날아든다.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만 같은 이 게임의 오프닝은 그 자체로 우아하고 장중하다. 나아가 이후의 게임 스토리가 오프닝 장면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생각하면 게임 전체가 달리 보이기까지 한다.

 

노인이 하얀 여우로부터 꽃을 건네받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해당 장면에서 하얀 여우는 사람의 형태가 되어 희망의 상징인 꽃을 노인에게 건네고 사라지는데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게이머는 스산한 분위기와 어두운 이야기에 지쳐 있던 마음을 위로받고 힐링을 얻는다. 여기에 더해 해당 장면에서는 음악과 함께 간단한 안무가 더해지는데 꼭 뮤지컬 넘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이외에도 소녀 캐릭터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부서진 햇볕 사이로 부유하는 먼지 등을 표현한 작은 디테일부터 기사와 용의 혈투를 그린 장대한 씬에 이르기까지 <인모스트>가 그리는 게임 세계는 깊고 풍부하여 게이머에게 깊은 몰입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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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2) 독특한 게임성


 

<인모스트>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소녀와 노인, 그리고 기사. 이때 게이머는 세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조작하는 캐릭터가 바뀔 때마다 게임의 재미성이 함께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소녀 캐릭터는 낡은 집을 배경으로 움직인다. 이때 소녀는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캐릭터를 조작할 때 힘을 쓰거나 높은 곳을 올라갈 때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에 소녀는 주변의 사물을 활용하여 높은 곳의 열쇠를 얻거나 비밀통로를 발견하는데 이렇게 문제 풀이에 성공할 때마다 게이머는 마치 방탈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혹은 퍼즐 게임을 푸는 것 같은 지적인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노인 캐릭터는 소녀에 비해 신체 능력이 약간 더 뛰어나다. 덕분에 점프를 하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혹은 달리거나 구르는 모션도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주변에 숨겨진 각종 도구 등을 활용해 노인은 폐허가 된 고성과 그 주변을 탐험하며 하얀 여우의 행방을 쫓는다. 이때 주변의 검은 괴물들은 호시탐탐 노인의 목숨을 노리는데 덕분에 게이머는 적절한 긴장감과 함께 이야기의 단서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퍼즐게임으로서 재미가 강했던 소녀의 시점과 달리 노인의 시점에서는 어드벤처 장르로서의 게임성이 커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사 캐릭터는 세 캐릭터 중 신체적 능력이 가장 강력하다. 그는 빠른 이동기와 단단한 무장을 바탕으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인의 목숨을 위협하던 검은 괴물들을 제압하고 ‘고통의 불꽃’이라 불리는 하얀 조각들을 모은다. 여기에 더해 기사는 갈고리 총을 활용해 아주 높은 곳이나 아주 먼 곳까지 한 번에 쉽게 갈 수 있는데 덕분에 게이머는 앞서 두 캐릭터를 플레이하며 느꼈던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고 신나는 액션의 쾌감을 누린다.

 

덕분에 <인모스트>는 마치 3개의 게임을 한 번에 플레이하는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독특한 게임성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올까. 그것은 바로 이것의 가장 큰 장점은 게임을 루즈하지 않게 하고, 게이머의 몰입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사실 <인모스트>는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중요한 게임이다. 하지만 스토리가 워낙 파편화되어 있고 불친절한 탓에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게이머가 이야기의 전말을 알아채는 건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인모스트>만의 독특한 게임성은 게이머로 하여금 적당한 긴장감을 계속 불러일으키며 꼭 스토리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게이머가 계속 게임을 붙잡을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저절로 결말에 이르게 된 게이머는 개발자들이 준비한 이 게임의 진짜 재미, 스토리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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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3) 디테일한 맵디자인


 

맵 디자인 역시 눈여겨볼 요소 중 하나다. 특히 노인의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게임 맵이 개인적으론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단 여기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이 게임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오래전, 사람들은 우연히 ‘고통의 불꽃’이라 불리는 하얀 물질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지나친 고통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려 그들을 검은 괴물로 만들었는데 이 괴물이 바로 게임 속에서 노인의 목숨을 노리는 존재들이다.

 

그니까 노인이 돌아다니는 고성과 그 주변은 고통으로 황폐화된 세계다. 노인 캐릭터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하얀 여우를 찾아다니는데 흥미로운 점은 노인이 돌아다니는 맵의 전반적인 구조가 수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맨 처음 노인은 지하의 동굴을 탐험하고 그곳에서 하얀 여우를 발견한다. 그리고 하얀 여우를 좇아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고 고성의 꼭대기에 오른다. 하지만 그곳에서 어떤 장면을 목격하고 노인은 고성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다. 하지만 노인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오르고 올라 마침내 하얀 여우를 만나게 된다.

 

이때 추락하는 것은 절망은 의미한다. 반대로 올라가는 것은 극복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노인 에피소드의 맵 디자인은 고통으로 인한 절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서사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맵 디자인은 게임의 후반부에서 이야기의 전말이 밝혀진 이후 노인의 행로와 연결되어 게임이 가진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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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4) 고통과 사랑


 

게임은 매체다. 그래서 자기만의 메시지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모스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게임의 스토리로 넘어가야만 한다.

 

앞서 말했듯 <인모스트>는 내러티브가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게이머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에 있어 상당히 불친절한 모습도 있다.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소녀와 노인, 기사 사이에는 어떤 뚜렷한 접점을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하마 못해 각각의 인물을 플레이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게임성 자체도 상이하다.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이 게임이 모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고, 서로 다른 별개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혹은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이 게임의 제작자가 애초부터 그걸 의도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 스토리는 선형적인 흐름이 중요하다. 이야기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순으로 일련의 흐름을 따라 진행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가로축이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인모스트>의 스토리는 가로축보다는 세로축이 더 중요하다. 마치 콜라주처럼 세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스토리를 서로 다른 층위에 배치 시켜놓고, 그렇게 만들어진 어떠한 형태를 게이머 스스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다음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모스트>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우선 소녀는 현재 불행하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그녀에게 무관심하고,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일에 치여 사느라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 인형과 숨바꼭질을 하던 소녀는 다락방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곳에 아이들이 납치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숨겨진 방에서 아이들의 낡은 물건이 가득 모인 방을 발견하게 된 소녀는 자신의 의심에 확신을 갖게 되고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몰아치던 밤에 소녀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다.

 

한편 노인은 동굴을 탐험하다 우연히 만난 하얀 여우를 홀린 듯이 쫓아간다. 그런 노인의 목숨을 검은 괴물들이 노리기 시작하고, 이에 노인은 주변을 탐험하며 모은 물건과 자신의 지혜를 활용해 괴물들을 따돌리며 길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하얀 여우와 재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기사는 검은 괴물들을 사냥하며 고통의 불꽃들을 모아 자신의 수호자에게 바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사는 고통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마음으로 피워낸 꽃을 우연히 얻게 된다. 하지만 꽃은 그런 기사를 매몰차게 거부하고, 기사는 꽃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기사의 정성에 감동한 꽃은 마침내 그를 받아들인다. 한편 괴물들을 사냥하며 고통에 점차 물들기 시작한 기사는 점차 쇠약해지고, 이에 수호자는 기사를 제거하려 든다.

 

이것이 <인모스트>의 주요한 스토리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 점에서 만난다. 소녀가 비극을 마주했던, 폭풍이 몰아치던 바로 그날에 말이다. 그날 소녀의 어머니로 보였던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소녀까지 살해하지 못했고, 대신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노인’에게 말이다.

 

그러니까 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에겐 사랑스러운 딸이 하나 있었고, 세 사람은 꽤 오랫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극심한 따돌림에 부부의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부부는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삶의 희망이라 할 수 있는 ‘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부모를 잃은 갓난 아이를 데려와 키우게 되는데 그 아기가 바로 우리에겐 ‘소녀’, 기사가 얻은 ‘두 번째 꽃’이다. 하지만 자신의 친딸을 아직 잊지 못한 여자는 매일 남자에게 화를 내고, 소녀 역시 남자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이에 남자는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매일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며 스스로를 희생시켰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본 기사의 이야기는 곧 남자의 이야기였고, 그가 매일 고통을 모아 바치던 수호자는 바로 남자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또한 소녀가 숨겨진 방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물건은 납치 피해자가 아닌 부부의 친딸의 유품이었으며, 노인과 하얀 여우의 이야기는 소녀를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맡기고 죽음을 맞은 여자의 최후에 대한 은유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녀와 노인, 기사의 이야기가 엮어낸 콜라주의 참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슬픈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게임의 초반부로 돌아가야만 한다. 해당 장면에서는 낡은 아파트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의 모습을 비추며 한 소녀의 내레이션이 울려 퍼진다. 소녀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억하세요? 꽃에 관한 이야기를? 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각했죠. 분명히 해피 엔딩일 거야……. 제 생각이 들렸어요. 그건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말씀드리죠.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이 내레이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기억하세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제 생각이 틀렸어요. 그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말씀드릴게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 모두는 저마다 고통을 지고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고통 그 자체가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 내 삶에 빛을 가져다줄 거라 믿으면서. 바로 이것이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고통의 불꽃에 매료된 이유였을 것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고통을 감당하기도 한다. 게임 속에서 소녀와 여자의 행복을 위해 남자가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허나 고통은 그저 고통에 불과하다.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숭고한 이유 역시 고통을 미화해 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의 삶은 당신이 고통받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은 그것의 당사자를 망가뜨리고 만다. 마치 게임 속에서 마음을 잃고 돌아다니는 검은 괴물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바로 나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나의 것마냥 공유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설산을 찾은 기사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사냥하러 온 검은 괴물들이 자발적으로 기사에게 자신의 고통의 불꽃을 건네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사에게 불꽃을 건넨 괴물은 곧 몸을 뒤덮은 검은 타르를 벗겨내고 순수한 존재가 되어 빛 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그들처럼 서로의 고통을 나누었던 꽃(소녀)과 기사(남자)는 마침내 장막을 걷어내고 서로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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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우리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데에는 수천,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심심해서, 혹은 정신적인 고양을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위로를 받기 위해서 등등.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질병의 대상도, 폭력성을 분출하는 도구도 아니다. 자기만의 목소리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춘 하나의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모스트>는 그 첫 번째 예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 더 많은 게임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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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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