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쓰고 싶은 책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6.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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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데 밖에서는 비가 내린다.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더웠던 요 며칠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반가운 바람이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혼자 있기엔 심심했는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멀리서는 차들이 도로 위에 스며든 빗물을 시원하게 가른다. 새해가 밝았다며, 친구들에게 새해 인사를 돌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이다. 여름의 시작이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투정 부리듯 하는 말이지만, 이제 정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4학년 1학기도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휴학을 할지, 아니면 계속 학교를 다닐지. 휴학을 한다면 뭘 해야 할지. 인턴을 할지,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할지. 군대에서 나를 그토록 못 살게 굴던 선임은 얼마 전, SNS를 통해 그토록 바라던 소방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학창 시절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첫사랑은 오랜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게 주변 친구들과 동기들이 하나 둘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지금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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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책 쓰시는 거는 잘 되고 있으신가요?”

 

얼마 전 아트인사이트 대표님을 만나 대화를 하다가, 대표님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애졌다. 책이요? 제가요? 그러자 대표님은 웃으시며 말을 덧붙였다.

 

“지원서에 쓰셨잖아요. 연말까지 책을 쓸 계획이 있으시다고.”

 

맞다. 그랬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쓰는 일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나름대로는 계속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아트인사이트에서의 에디터 활동의 거의 끝날 때쯤에야 떠올린 것이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내가 스무 살에 썼던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다. 가만히 추억들을 들여다보다가 스무 살의 내가 나름대로 만들었던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 제목이 ‘대학생활 중에 꼭 해야 할 것들’이다. 거기에는 이룬 것도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졸업 전에 책 쓰기’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찾으려고 다이어리를 펼쳤나 보다. 아마도 이건 실패로 끝이 날 것이다. 원고의 양과 완성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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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디어랍시고 옆에 조그맣게 써둔 메모들이 꽤 있었다. 소설도 있고, 에세이도 있다. 브랜드와 마케팅에 관련한 아이디어도 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다시 책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만약에 한다면 버킷리스트의 유효기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할까. 어차피 대학 졸업 전에 책을 완성하기는 글러먹은 것 같으니 아예 30살 이전까지 유효기간을 잡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나저나 만약에 쓴다면, 나는 어떤 책을 써야 하지?

 

소방서에서 군 복무를 할 때였다. 일병 말이었는지, 상병을 단 직후였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평소처럼 출동을 나간 어느 날이었다. 요양병원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먼저 환자를 발견한 요양보호사가 CPR(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곧바로 내가 뒤이어 환자의 가슴팍을 누르기 시작했다. 옆에선 반장님들이 부지런히 라인을 잡고, 제세동기를 연결했다. 기본적인 처지를 마친 뒤, 우리는 곧바로 환자를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도 CPR은 계속 진행되었다. 균형을 잡느라 허리가 뻐근하게 아팠다. 주황색 제복은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끝내 사망했다. 밀려오는 허탈함과 씁쓸함을 곱씹으며 사용한 장비들을 챙겼다. 반장님들은 환자를 인계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늘 그렇듯 뒤치다꺼리는 의무소방원의 몫이다. 장비들을 들것에 싣고 응급실 밖으로 나오는데 환자의 보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부고가 벌써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들은 울고 있었다. 나는 모자 속으로 시선을 숨겼다. 적지 않은 죽음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서둘러 구급차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환자의 가족 중 한 명이 거기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마친 그녀는 다시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나는 시간이 꽤 흐른 오늘에도 계속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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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나는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사람의 힘만으로는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곳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갔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죽었고, 우리는 실패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녀는 수고와 감사를 전하며 허리를 숙였다. 내가 과연 저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두고 돌아서는 건 편치 않은 일이다. 그랬기에 내게 인사한 그녀에게도, 내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도, 나는 많이 미안했다.

 

미안함과 무력감의 사이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결국 ‘기억’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그들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들을 기억하는 것 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만약 세상에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에겐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단지 글을 쓰는 게 재밌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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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1년 365일 밤낮으로 켜져 있는 촛불이 있다고 합니다. 촛불이 켜지는 이유는 단 하나, 동굴 밖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혼자라고 외로워하는 분들. 누군가 당신을 위해 24시간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건 일종의 필담이다. 작가와 독자는 글을 통해 서로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세상에 글이 쓰이는 이유는 단지 기록하기 위해서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동굴 밖,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쓰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쓰기의 본질은 ‘사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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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만히 옛 기억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머릿속에서 정전기가 일었다. 아무래도 나는 인터뷰집을 써야겠다. 그냥 문득, 결심해버렸다. 인터뷰 대상은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들이 좋을 것 같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름은 뭔지, 사는 곳은 어딘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꿈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다. 제목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정도면 어떨까. 너무 다큐멘터리스러운 제목이려나.

 

책을 출판한다면 내가 만난 사람들만큼의 숫자만큼만 출판하고 싶다. 아, 내가 소장할 책도 한 권은 추가해야겠다. 그리고 완성된 책을 각자의 이름을 새겨 넣어 그들에게 다시 보내주고 싶다. 이런 기획안을 출판사에 보낸다면 아마도 단 칼에 거절당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돈이 되는 책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이 버킷리스트도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적어 넣은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책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알고 있기도 하고.

 

단지, 그뿐이다. 동굴 밖,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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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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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볼살천사
    •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글이 정말 술술 읽혔어요 !
      저 또한, 꼭 책을 내고 싶다는 다짐이 있는데, 글감을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중민에디터님의 글을 쭉 읽다보니 인터뷰집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참 신선했던 것 같아요 ! 나중에 저도 그 인터뷰책에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
      응원할게요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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