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를 들여다보며

글 입력 2020.07.0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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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TI 성격 검사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서로의 성격 유형을 묻고 답하는 일이 놀이처럼 번져 버렸다. 얼마 전에는 군대 동기였던 형이 카카오톡으로 나의 MBTI 유형을 물어왔다. 왠지 너라면 INTP거나 INFJ 일 것 같다는 둥의 말과 함께. 그런 그에게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의 마음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난 몰스킨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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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스킨 형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항상 몰스킨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지만, 나는 종이 다이어리가 더 편하다. 학교를 갈 때도 노트북은 몰라도 다이어리만큼은 항상 챙긴다. 회의를 듣거나, 팀원들과 조별 과제를 할 때도 노트북 보단 다이어리에 글자를 끄적이는 게 더 좋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린 왕자 그림이 그려진 다이어리가 내 옆을 장식하고 있다.

 

내가 종이 다이어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종이 다이어리는 자유롭다. 나는 손이 자유로워야 생각도 자유로워진다고 믿는 편이다. 행간이 명확해서 극도로 형식화되어 있는 컴퓨터 문서 프로그램과 달리 종이 다이어리는 내 마음대로, 내 손이 가는 대로 기록을 할 수가 있다. 종이의 여백을 구석구석 활용하기도 하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꾸겨버리거나 다음 장으로 넘길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종이 다이어리가 주는 특별한 감각 때문이다. 펜으로 종이를 가르는 순간에 펜촉 끝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과 펜의 움직임을 따라 검게 피어나는 선의 모습들, 사각사각 소리, 희미하게 풍기는 잉크의 비릿함까지. 그러니까 나에게 기록을 한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다. 내가 기록을 하는 그 순간과 온몸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나는 기록을 함으로써 지금 나의 현실을 이해하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바로 거기서 나의 글도 시작하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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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이어리를 쓰던 때를 떠올린다. 13살 때였을까. 아버지께서 다이어리를 선물로 주셨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연말이나 연초쯤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다이어리나 달력을 돌리곤 했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매년 내게 다이어리를 선물하셨다. 하지만 나는 일기를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했다. 초등학생 시절, 매주 숙제로 일기를 써가야 했던 게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꽂이 한 쪽을 조금씩 채워가는 텅 빈 다이어리들을 보고 있으니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사용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다이어리 한 권을 꺼내 펼쳤다. 그런데 도대체 뭘 써야 하지? 하얀 여백 위로 막막함이 피어올랐다. 그렇다고 초등학교 시절처럼 일기를 쓰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싫었다.

 

고민 끝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는 언제 학원을 가야 하는지, 학교 숙제는 무엇이 있는지, 조금 있으면 시험기간인데 어떻게 공부를 할 건지, 이번 주엔 어떤 책을 읽을지 등등. 내 다이어리의 시작은 바로 스케줄러였던 셈이다. 생각보다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은 금방 몸에 익었다. 차츰차츰 쓰는 항목도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실하거나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나는 그냥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을 해낼 때마다 그렸던 빨간 동그라미가, 그 빨간 동그라미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모습이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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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성인이 된 나는 군대를 갔다. 나는 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일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별거 아니다. 그냥 의경 같은 거다. 다만 소방서에서 먹고 잘뿐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이라는 글에서도 썼듯이, 소방서에서 일하다 보면 무신론자인 나조차도 신을 찾게 되는 순간들을 종종 맞이한다. 그러나 신을 향한 기도가 모두 이뤄지는 세상이었다면 애초에 소방관 같은 직업은 일을 필요가 없었겠지. 우리는 자주 기적을 바랐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그런 순간들을 수없이 마주해야 했기에, 직원들은 새로 전입 온 의 방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몰라고. 무덤덤해지는 연습을 해보라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우리를 찾는 출동벨이 울렸다.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심정지 환자였다.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며 환자를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끝내 사망했다. 이미 여러 번 본 익숙한 풍경이었다. 사용한 장비들을 수거하여 들 것에 실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오는데 맞은편에 환자의 보호자들이 거기 있었다. 울고 있는 그들을 지나쳐 얼른 구급차로 돌아가려는데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날 이후, 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패한 우리가 그녀에게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안했다. 내게 인사한 그녀에게도. 내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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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나는 펜을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빨리 잊고, 무덤덤해지는 게 최선이라 했지만 그러기엔 그녀가 건네준 인사가 내 마음속에 너무 깊이 박혀 버렸다. 내가 만난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바로 ‘기억’이었다. 만약 세상 어딘가에 당신의 아픔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에겐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미안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나에게도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는 응원이 되어주진 않을까.

 

기록을 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과 온몸으로 소통한다. 손가락 끝의 촉감과 그려지는 글자와 들리는 소리와 잉크의 냄새를 통해서 그 순간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이것이 내가 앞서 말한 종이 다이어리를 쓰는 두 번째 이유다. 그리도 동시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절망과 슬픔이 닥쳐올 때 내가 하는 행동 중 하나는 지난날에 쓴 다이어리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기엔 내가 지나온 삶의 궤적들이 빼곡하게 남아 있다. 동그라미들, 읽은 책들, 보았던 영화들, 그녀와의 추억. 대학교, 동아리, 소방서에서 있었던 일, 생각, 고민, 다짐들까지도. 그것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바로 ‘나 자신.’ 그리고 ‘당신은 이제껏,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살고 있다,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

 

기록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후일을 위하여 어떤 사실을 글로 남기는 일을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후일은 도대체 언제쯤일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1년 뒤의 미래일 수도, 혹은 조선왕조실록처럼 500년 뒤의 미래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기록이라는 건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해 보내는, 과거와 현재의 ‘러브 레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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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는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보낸 시간들도 마찬가지다. Art Insight. 예술에 대한 통찰력. 그 섬세한 시선 끝에서 마주한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영화던, 공연이던, 책이던, 전시든 간에 문화예술은 결국 좋은 글을 나오게 하는 일종의 매개체였다. 당연한 일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선 결국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니 아무리 자제하려 노력한다 해도 스스로의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본 세상과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셈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영화 <화양연화>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

 

그 세계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우와 리첸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산다. 지역 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차우는 자신의 글 대신에 타인이 쓴 글을 다듬고 정리한다. 수출회사의 비서로 일하는 리첸의 하루 일과는 보스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 그런 두 사람을 두고서 그들의 얼굴 없는 배우자는 바람을 피운다. 누군가에게 의탁해야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그들은 그렇게 그 누군가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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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세계의 부스러기가 되어버린 그들은 쓸쓸하게 부유한다. 집이 아닌 거리의 국숫집에서 매일 저녁을 해결한다. 코앞의 집을 두고서 비를 피해 다른 건물의 처마에 몸을 숨긴다. 차우와 리첸이 함께 걷는 길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선행한다. 아무것도 아닌 두 사람은 부지런히 그 그림자를 좇았다. 결국 배우자들의 바람기에 기댈 곳을 잃어버린 그들은 대신 서로에게 기대기로 작정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글은 ‘자존(自存)’을 부여했다. 역할극의 형태로 자신들의 배우자가 저지른 부정을 흉내 내며 사랑을 해갈하던 그들은 차우가 무협지를 쓰면서부터 달라진다. 차우와 리첸은 더 이상 과거의 자취를 좇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연기하던 역할극의 문법은 현재형이 되었다. 그들의 배우자는 이미 그 역할극에서 퇴장해버렸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다시 말해 차우가 리첸과 함께 완성해나가는 무협지의 세계는 일종의 촉매였을 뿐, 결국 그들은 무협지를 통해 그들 자신을 이야기했다. 얹혀살던 집을 벗어나 차우는 글을 쓴다는 핑계로 두 사람만의 공간을 얻는다. 리첸은 더 이상 거리에서 국수를 사 먹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가 비밀을 털어놓을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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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글을 쓴다는 건 가장 적극적인 행위다. 그것은 나를 아는 것이고, 나아가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너 자신부터 알라’고 고함친 이는 소크라테스였다. 진리를 아는 건 그 뒤의 일이다. 말하자면 타인에게 급급했던 차우와 리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글’이었다.

 

영화의 끝에서 차우는 사원에 난 구멍에다가 리첸과 함께했던 그 시절을 속삭인다. 그 역시 나름대로 일종의 기록을 한 셈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내 인생의 한 시절을 아트인사이트에 속삭이고 기록했다.

 

언젠가 모든 게 힘에 부치는 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또 내가 쓴 글들을 읽어볼 것이다. 문화와 함께 한 그 순간을,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기록하려던 나 자신을,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던 성실한 노력을. 그리하여 나는 안다. 바로 '나 자신'과 ‘당신은 이제껏,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살고 있다,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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