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 - 해방된 기호들의 춤사위

글 입력 2022.05.31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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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던 해에 처음으로 마이아트뮤지엄에 방문했었다. 당시에 관람했던 <앙리 마티스전>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손꼽기 때문에, 미술관 자체에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을 관람하기 위해 마이아트뮤지엄에 다시 방문했다. 2년 전의 내가 앙리 마티스에 대해 잘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호안 미로의 작품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상태로 미술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낯선 그림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화가의 작품 세계에 푹 빠지는 경험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회화의 암살, 기호의 해방



호안 미로는 1893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화가이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부정하는 ‘회화의 암살’을 선언하며 원대하고 창의적인 자유를 그려내고자 하였는데,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기호(Sig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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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여인, 새, 별’은 미로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기호들이다.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각 기호는 나란히 놓이기도 하지만 혼합되거나 재창조되며 더욱 대담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미로의 작품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그려진 그림 같다. 그러나 물에 번진 자국이나 흩뿌려진 물감까지 미리 계산되었을 정도로 그의 작업은 신중했다. 1948년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의 인터뷰에서 미로는 작품 속 모든 기호가 상징성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형태는 절대 추상적일 수 없다. 사람, 새, 또는 어떤 것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나의 회화에서 형태를 위한 형태는 없다.”

 


그의 작품에서 새는 세속적인 지상계와 천상계의 조합을 나타낸다. 그가 공간에 대해 늘 생각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날아온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을 때 탈출에 대한 소망을 사다리로 그린 것을 고려한다면, 새 또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강한 바람을 담은 기호였을 듯하다.


이처럼 하나의 기호는 여러 가지의 것을 상징할 수 있으며 그 의미는 또 다른 기호들과 작가의 생애, 무엇보다 관람자의 상상력에 의해 해석된다. 그가 작품의 해석을 관람자에게 맡기는 것은 시인이 쓴 표현의 해석이 독자의 몫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제로 미로는 시와 시인들을 사랑하였으며, 시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근본적 요인이었다. 전시를 볼 때 세월이 흐를수록 시와 그림들이 뒤얽히는 양상의 변화에 주목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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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안 미로가 기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작품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본래의 형태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한 기호는 눈에 잘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간결함이 회화 작품의 이해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기호들은 자유로우면서도 언제나 균형과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마구 그려진 것 같은 형태들의 짜임새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서 어떤 요소를 추가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순수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과 개성적인 형태들의 조화는 마치 낯선 세계의 춤사위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춰서 기호들의 자유로운 해방을 지켜보았다.

 

 


캔버스 너머의 자유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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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에게 캔버스 안에서의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미로는 회화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각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조합하고 다른 두 사물이 한데 모였을 때 일어나는 변화와 효과를 눈여겨보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줍거나 모은 사물들을 작업실에 널브러뜨려놓고 골라서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조각은 다양한 사물 조합에 기반한다. 앉기 위해 만든 의자에 사물을 더했을 때 의자 본연의 형태와 용도는 사라지고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조각의 특징도 미로의 작품관과 잘 어우러진다. 브론즈로 제작된 ‘고요한 별자리’의 한쪽 면은 잔잔하고 질서 정연한 우주처럼 보이지만, 반대면은 굉장히 투박하고 척박한 땅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이 보이지 않듯 캔버스 안에 있는 사물의 뒷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캔버스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로 빠져나온 사물들은 자신의 모습을 남김없이 내비쳤다.


미로는 조각을 할 때 표면의 질감을 의도적으로 거칠게 혹은 녹슬게 만들거나 색을 칠해 구성 요소를 강조하는 등의 다채로운 표현을 시도했다. 조각 외에도 판화와 직물 작업을 하다가 5년 후 다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기호는 대상물을 넘어 배경까지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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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은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미술관으로부터 서울의 마이아트뮤지엄까지 작품들을 담아 운반한 안전 크레이트가 장식하고 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의 일상적인 사물을 작품으로서 배치한 것도 호안 미로의 전시회다운 아이디어였다.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에서는 탁월한 기획, 구성과 더불어 전시 공간의 색감이나 쾌적한 환경까지 작품들을 돋보이게 했다. 2년 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아트뮤지엄의 노고와 섬세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전시였다.

 

단순한 기준으로 오브제를 배치하는 진열과 달리, 전시는 작품의 의미와 맥락에 대한 기획자의 해석이 가미된 고차원적 작업임을 다시 한번 아로새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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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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