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글쓰기 싫음에 대한 글쓰기 -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글쟁이들의 눈물겨운 공통점 5가지
글 입력 2022.05.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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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들의 공통점


1. 완벽히 쓰고 싶은 순간을 기다린다.

2. 저명한 천재들을 보고 소심해진다.

3. 이 책을 쓰기를 수락한 것을 후회한다.

4.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5. 장비 빨을 세운다.

 


글을 쓴다면 누구나 격한 공감을 표출할 책이 나왔다. 특히 매주 마감을 치루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외칠 거라 믿는다. ‘어? 이거 내 얘긴데?’


이 사람 뭐야... 쓰고 싶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싶은 불퉁한 제목이 눈에 띈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글쟁이로 살고 있는 9인의 글을 엮어 만든 에세이집이다.


글 쓰는 걸 밥벌이의 주력으로 삼는 직업적 글쟁이도 있고(씨네 21 이다혜 기자, 백세희 작가, 한은형 소설가), 글에서 발전한 아이디어로 영화를 찍는 감독도 있으며(전고운 감독, 김종관 감독, 임대형 감독), 본업을 한 뒤 남은 감수성을 글로써 풀어내는 예술가들도 있다(뮤지션 이석원, 뮤지션 이랑, 배우 박정민). (물론 이 한 가지 직업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직업을 적었다.)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글쓰기 싫은 마음’에 대해서다. 9인의 필자가 ‘글쓰기 고통’에 대해 자신만의 문체로 피력한다. 글을 쓰게 된 이유, 글쓰기가 주는 의미,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동시에 뼈를 깎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것에 대해 ‘썼다.’


흥미로운 건 모두 각기 다른 직업과 배경, 성격, 문체를 가졌음에도 유달리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는 거다. 이거 짜고 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글쟁이들의 고통은 닮아있었다. 글을 사랑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글쟁이들의 숙명, 그 몇 가지를 정리했다.

  

 


1. 완벽히 쓰고 싶은 순간을 기다린다.



 
내 마음속에서 다른 핑곗거리가 더는 떠오를 일이 없을 때라야, 그야말로 먼지 하나 없도록 완벽한 내 삶과 내 주변이 정리되어야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내가 원하는 날은 오지 않는 것일까. -이석원
 

 

글쓰기는 엄청난 집중을 요한다. 음절 하나하나에 뜻을 담고 싶다는 욕심으로 두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특히 글쟁이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잡념이 질척이고 진지한 생각이라곤 하나도 할 수 없는 이런 가벼운 상태에선 내가 원하는 글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모두 ‘그때’를 기다리기로 한다. 정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그때’를.


불행히도 ‘그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시간만 날려 마감이 더 코앞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가령 백세희 작가는 ‘글 써야 해!’라고 마음먹은 뒤로 종일 한글자도 쓰지 못하다가 결국 강아지들을 데리고 긴 산책을 다녀온 뒤, ‘고민 수다방’이란 모임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전고운 작가도 마찬가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감상하는 ‘이상적이고 우아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정작 오후부턴 시나리오 회의를 핑계로 온갖 잡다한 수다를 떨다 시간을 날린다. 새벽녘에야 발등에 불이 난 듯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작업실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맥모닝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전부다.


우리가 글을 썼던 대부분의 순간은 그리 우아하거나, 정갈하거나, 아름답지 않았을 거라 예상한다. 오히려 마감에 허덕이며 책상 앞에서 대충 끼니를 때웠던 때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내 키보드 커버 위 수북히 쌓인 부스러기가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글을 완성했다는 것. 다 쓴 글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추잡함이 담겨있지 않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전고운 작가는 말한다. “아침은 우아하게, 밤은 천박하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그 천박함을 가려줄 테니.”


 


2. 저명한 천재들을 보고 소심해진다.



 

내가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책, 음악, 영화에 대한 대단한 취향 중 어느 것으로도 함께 일하는 사람의 발끝에 비빌 정도도 되지 못했다. -이다혜

 

 

가끔 오늘 글은 좀 괜찮은데? 싶어서 우쭐하다가도 내가 고민‘만’ 했던 주제를 너무나도 훌륭하고 명확하고 날카롭게 물 흐르듯 써준 다른 분들을 볼 때마다 의기소침해진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나는 저런 사유까지 도달하지 못했었는데, 어째서 저분들은 저렇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걸까?


내가 부러워했던 ‘저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니 새삼 맘이 놓인다.


주눅 드는 것마저도 장점이 있다면, 그 덕에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일 거다. 서로의 글을 예찬하며 자신의 글을 꾸짖었던 수천 년 간의 상호작용이 지금의 풍요로운 글 시장을 만들었으리라.


 
우선 샐린저처럼 살기 위해선 『호밀밭의 파수꾼』을 써야 하는데,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임대형
 


임대형 감독의 구절이 재밌다. 그래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같은 대부호를 보고 소심해졌던 덕분에, 『호밀밭의 파수꾼』만큼은 아니지만 꽤 멋진 수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3. 이 책을 쓰기를 수락한 것을 후회한다.



 

이 원고를 전달하겠노라 약속한 것을 취소할 순 없을까. -임대형

 


가장 재밌었던 특징이다. 마감이 들이닥쳤는데도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아마 기발한 글감을 고민 중이었을 거다) 필자들이 차례대로 괴로움을 호소한다. 글쓰기 싫음에 대한 글쓰기라도 싫은 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분명 세상에 무언가를 피력하고자 결정했던 글쓰기인데, 막상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꼭 내가 써야 하는 글이 세상에 있을까?”(이다혜) 하는 의문이 솟구친다. 과연 내가? 하필 내가? 꼭 내가?


글쓰기를 후회 중이이라고 쓴 글이야 말로 글쓰기의 고통과 희열, 그 모순을 십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지금 이 원고를 쓰겠다고 한 것도 조금 후회스럽다.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 쓰다니. 모순이다. 한편, 써지지 않는 글과 미리 받은 계약금 또한 모순의 대결을 펼치는 중이다. 돈을 미리 받지 말걸. 경솔했다. -박정민
 



4.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모든 괴로움―글 안 써짐―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는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예시는 역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가 자신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밝힌 일상은 다음과 같다.


 

4:00 ~ 12:00 글쓰기 (200자 원고지 20매)

12:00 ~ 13:00 점심식사 (주로 생선과 채소)

13:00 ~ 19:00 운동(1만km 달리기 혹은 1500m 수영), 독서, 집안일, 재즈 감상

21:00 ~ 4:00 취침

 


마치 수도승처럼 절제되고, 규칙적이고, 성실한 삶이다. 그는 수십 년 간 매일을 이렇게 살고 있다.


9인의 필자도 비슷했다. 대부분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머리가 맑을 때 글을 뽑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메워진 원고가 언제나 나의 최선이었다. 하루 중 그 아침나절 몇 시간 동안 나오는 글이 가장 질이 좋고 선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행여 점심때가 올까 허겁지겁 글을 쓰고는, 남은 하루 동안 그렇게 나온 글을 정리하고 퇴고하는 것이 내 작가로서의 하루였는데. -이석원
 

 

나 또한 아침 글쓰기의 힘을 안다. 머리가 맑고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게 되고, 그렇게 집중했음에도 고작 12시 밖에 안 되어있는 요상하게 건강한 시간. 하지만 미루고 미룬 마감을 치기 위해 몽롱한 정신으로 새벽 타이핑하는 날이 더 많다는 게 아이러니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의외로 당연하지 않다. 글쓰기는 없는 근육을 만들어 유지하는 일과 같다. -임대형
 


글쓰기 루틴을 만들고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글쓰기를 오래하고 싶다는 뜻이다. 급하게 메꾸고 넘어가버릴 숙제가 아니라 천천히 질적 향상하고 싶은 목표로 대하는 것이다. 하루 중 일정 부분을 할애하고, 매일 같은 시간동안 노력하는 건 대단히 고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많은 성장을 안겨준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성실한 노력과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5. 장비 빨을 세운다.


 

글쓰기야 뭐, 노트북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제일 가볍고 간단한 가성비갑 창작활동 아냐? 라고 생각했다면, 재밌게도 생각보다 ‘장비 빨’을 내세우는 작가들이 많았다.


 

글을 써 내려가는 리듬과 잘 맞는 키보드는 정말 중요하다. 오랫동안 타자를 쳐도 거슬리지 않는 소리와 키감을 찾아야만 최적의 상태로 글을 써 나갈 수 있다. 평소 커피와 밥 외에 소비가 거의 없는 편인 내가, 10만 원이 넘는 키보드를 몇 개씩 사가며 맞는 것을 찾을 때까지 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키보드가 글을 쓰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이랑

 

 

두 개의 스탠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선물 받은 것은 몸체는 실버, 광원은 흰색에 가깝다. 내가 산 것은 투명한 노란색 몸체에 노란 광원이 있는 모델이다. 북향인 내 방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날, 은색 스탠드를 치우고 이 노란색 스탠드를 켠다. 그러면 방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나를 다독일 힘을 불빛에서 찾기도 한다.


내 방에 있는 책상 A는 10년 전 원하는 디자인으로 맞춘 것이다. 오리나무로 골랐고, 가로도 길지 않고 세로도 짧다. 서랍을 만들지 않은 대신 나무를 두툼하게 아래로 내려 무릎에 닿을락 말락 하게 만들었는데 안락하고, 좋다.

책상 B는 스탠드 책상으로 만들어져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책상 A와 B를 오가며 다른 장편을 동시에 쓰는 게 나의 목표라 이렇게 두 개의 책상을 마련해 두었다. -한은형

 

 

이랑 작가는 키보드 스위치의 종류(청축, 갈축, 적축, 흑축 등)를 구분하면서 세밀하게 키감을 구분한다. 첫 키보드였던 기계식 청축은 소리가 너무 커서 두 번째는 갈축으로 골랐고, 그 마저도 키보드 가로 넓이가 거슬려 결국 세 번째 적축 모델에 정착했다.


한은형 작가 또한 장비에 아주 진심인 사람이었다. 두 가지 색의 스탠드로 그날의 무드를 결정하고, 식탁을 포함한 세 종류의 책상을 ‘넘나들며’ 글을 쓴다. 각 장비엔 제각각의 의미가 부여돼 있다.


이런 행위는 단순히 ‘장비 빨’을 세우는 게 아니다. 비싼 물건을 써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허영도 아니다. 오히려 ‘행동에 형식을 담는 것’이다. 특정 물건을 쓸 때마다 특정 행동을 한다면, 그 흔적과 원동력이 물건에 담기게 된다. ‘그’ 스탠드를 켜기만 해도 글을 쓸 힘을 얻고, ‘그’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해도 익숙한 박자감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나의 몸을 편안하게 해주고 소음마저도 리듬으로 둔갑시켜주는 물건들이 있다. 그것은 고된 글쓰기 여정 중 적어도 ‘거슬리는 일’을 삭제해 준다. 나아가선 성공적으로 마감을 마쳤던 어느 때의 기억을 되살려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장비는 그냥 장비가 아니다. 글쓰기라는 행동에 일관된 형식을 부여하고 의지를 북돋아주는 무언의 동반자다.

 

 

 

'안 쓰면 죽어' 날에 마감하는 리뷰 원고



 
드디어 '오늘부터는 진짜 써야 해'가 아니라 '안 쓰면 너 죽어(마감)'의 날이 왔다. 안 쓸 거면 편하게 쉬든가, 편하게 못 쉴 거면 쓰든가! -백세희
 


‘오늘부터는 진짜 써야 해’의 날부터 원고를 시작하긴 했는데 결국 ‘안 쓰면 너 죽어’의 날에 이 리뷰를 마감한다. 쓰고 싶지 않다는 글에 대해 쓰면서 나조차도 가끔은 쓰고 싶지 않았다는 게 글쓰기의 아이러니이자 매력이다.


위대한 작가들도 우리 모두와 같다. 글쓰기를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가끔씩은 마감을 늦는다. 그럼에도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어 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대변하기 위해 백세희 작가의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이렇게 글쓰기는 내게 지겨움, 스트레스, 자기혐오와 동시에 즐거움과 흥미, 관심, 열정을 동시에 준다.(주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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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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