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연히 마주하게 된 아련한 나의 노스텔지어

글 입력 2022.05.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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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 싸이월드 사진첩이 복구됐다. 그 덕에 오랫동안 파편처럼 흩어져있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절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간임에도 어릴 적을 떠올리면 괜스레 아련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미련, 아무 걱정과 책임 없이 가족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지낼 수 있었던 행복한 나날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인지 등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물론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기에 자아가 아직 미성숙한 시기기도 했겠지만 본질적으로 행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늘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거닐고 방방곡곡을 다녔다. ‘뽀롱 뽀롱 뽀로로’의 친구들처럼 오늘은 또 어떻게 재미있게 놀아볼까 생각했다. 그런 유년기를 떠올려보면 나는 대부분 웃고 떠들고 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사진 속의 나도 그러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가 지을법한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사진이 많았다. 한창 그렇게 향수에 빠져 사진들을 둘러보다 문득 화장실에서 본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적응되질 않았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한 24살의 나는 무척이나 단단하고 안정된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밑에서 올려 봐야 할 거 같은 우직한 사람.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대척점에 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사람.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비틀거리는 사람. 그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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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들에게 20살의 나이는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도 자유로워 무엇이든 먹고 사고 입을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인이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주변 어른들은 ‘너 때가 제일 좋은 것’이라며 ‘성인이 되면 자유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고 고리타분하게 말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까짓 것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본 사회는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위험과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철저히 개인화되고 있는 지금의 차가운 사회에서 실패와 위험, 선택과 좌절로 인한 책임들은 오롯이 개인에게로 돌아간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난 앞으로의 사회는 얼마나 흉포하게 변모할지 궁금할 지경이다.

 

성인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터팬처럼 유년기는 머물고 싶다고 해서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나고 나면 일장춘몽처럼 느껴지는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 살자고 다짐해왔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아이가 보는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살자고, 그렇게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자고 다짐해왔다. 하지만 그러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 깨닫게 됐다.

 

아이들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대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곤 한다. 펑펑 울고 있으면 친구들과 부모님이 다가와 그들의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어루만져 준다. 하지만 성인은 아이처럼 마냥 주저앉아 울고 있기엔 끊임없이 부여되는 책임과 일들의 더미 속에 쌓여있다. 우리는 깨지기 쉬운, 그래서 깨지기도 했을 유약한 아이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하기에 마음에 보호막을 굳게 치고 그 무엇이 와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어른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인지 잃어버릴 만큼 많은 페르소나들이 있다. 많은 가면을 내려놓고 아이처럼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지낼 수 있는 날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마냥 해맑았던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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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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