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페터 한트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돌아보며 [도서/문학]

예술의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된다
글 입력 2022.05.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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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들어가며



2019년, 페터 한트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일으키며 문단의 이단아로 불린다. 이에 더해 어느 시점까지 페터 한트케는 파격적인 문학관과 독창성으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곤 했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은 분명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이견은 없다.

 

하지만, ‘페터 한트케’라는 개인을 따져봤을 때, 그 상황은 180도 변한다. 노벨 문학상의 당해 상황과 페터 한트케의 개인사- ‘전범 지지’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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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페터 한트케, 우-슬로보단 밀로셰비치=출처:한국일보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



페터 한트케는 작가로서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지속해왔고, 실제로 1980년대 무렵까지 페터 한트케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앞서 썼듯이 이는 한때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그의 정치적 행보다. 페터 한트케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서 벌어진 알바니아 민족의 집단 학살을 주도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연방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다. 그는 그러한 사적 관계를 이유로 밀로셰비치의 만행을 옹호하고, 전범으로 구금 중 사망한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직접 추도사를 읽는 등 충격적인 모습을 꾸준히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공과 사의 구별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족주의를 이유로 ‘인종 청소’를 자행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쓰라린 아픔을 남긴 ‘전쟁 범죄자’를 두둔하는, 다시 말해 ‘전범 지지’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노벨 문학상 후보군에서도 페터 한트케의 이름은 빠지게 된다.


위와 같은 이유로 늘 수상자, 아니 후보자 명단에서조차 배제된 페터 한트케가 2019년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어떻게 된 걸까?

 

먼저 페터 한트케가 수상하던 해의 노벨 문학상은 여러 논란에 휩싸인 상태였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인 카트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에게 18명의 여성이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의 자질 여부 문제로 전개됐다. 결국 노벨 문학상 선정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그렇게 스웨덴 한림원은 미투 파문으로 무산된 2018년도 노벨 문학상 선정을 2019년의 수상자와 함께 발표하기로 하며, 외부 심사위원을 초빙한다. 초빙된 외부 위원의 의견을 중심으로 수상자를 선정했고, 한림원 측은 이의 없이 그대로 시상하게 된다.

 

이때 발표된 2019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바로 ‘페터 한트케’다. 즉,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이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두고,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하는 동시에, 정치적 행보를 이유로 후보에서 매번 탈락시킨 페터 한트케를 외부 심사위원의 결정에 따라 수상자로 지명한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 수상이 2018년도 심사위원단 내부의 부적절한 자격으로 새로이 꾸려진 외부 심사위원단의 결정이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문제를 덮기 위해 다른 방안을 찾은 건데,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 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페터 엥글란드는 과거 기자로 활동하며 발칸 전쟁을 취재했다. 페터 한트케의 수상 소식에 관해 그는 “동유럽의 비극에 동조한 페터 한트케의 시상식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며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심사위원 중 다른 한 명은 아예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에 더해 1988년 유엔 평화유지군의 회원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스웨덴 언론인 크리스티나 독타르는 페터 한트케의 수상에 반대하며 메달을 반납하기도 했다.

 

아울러 페터 한트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유족협회를 비롯해 여러 단체는 “인종주의 및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는 것을 반대한다”며 시상식장 앞에서 수상 철회 청원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를 조직한 아드난 마흐무토비치 스톡홀름대 교수는 “페터 한트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과거의 학살이 현재 진행형으로 되는 것과 같다”고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피해국인 알바니아와 코소보, 크로아티아, 터키 등의 스웨덴 주재 대사는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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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관객모독>, 우-<베를린 천사의 시>

 

 

 

페터 한트케의 작품 세계



그러나, 위와 같이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노벨 문학상을 시상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은 문학적, 미학적 기준을 바탕으로 수여되는 것으로 정치적인 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상자를 번복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몇 번이나 되풀이했듯, 그의 작품은 확실히 탁월하다는 여론은 여전하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 속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험적인 문체이다. 정말이지, 복잡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방식은 단순히 어렵거나 난해한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적 승화로 이어져 ‘페터 한트케 고유의 특징’, 즉 범접 불가한 개성 및 예술성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작가들이 추구하는 명백한 서술 구조가 아닌, 예술적 이야기, 혼란하고 탐구하게 되는 수수께끼, 불안정한 동요 상태의 이야기 구조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페터 한트케는 전통문학 양식의 회피와 파괴라는 서술방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독창적인 예술성이 페터 한트케라는 작가의 문학적 성과로 이어지며, 수많은 작가 및 예술가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페터 한트케는 문학이 예술과 함께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문학은 예술성을 지녀야 하며, 다양한 예술과 서로 연대하고 공유하는 등 유기적으로 나아가는 예술의 한 분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관에 있어 페터 한트케의 작품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그의 문학성에 예술이 더해져 문학의 갱신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실, 무엇보다 페터 한트케가 단순히 평단의 사랑과 애정을 받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들로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점- 즉 페터 한트케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여러모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중에서도, 페터 한트케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관객모독>을 말할 것이다. 해당 작품은 1966년에 초연한 희곡으로, 세상에 공개된 직후부터 큰 반응을 얻었고 오늘날까지 널리 공연되고 있다. <관객모독>은 시간, 장소, 행위의 일치 및 통일,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 같은 전통적 연극의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또한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대신, 오직 언어가 쓰이는 방식과 언어의 연결에 집중한다. 등장인물은 오직 넷이며, 줄거리나 사건도 없다.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직접 말하고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삭제한다. 이에 더해 배우가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마지막 부분은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각본을 맡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도 함께 얘기하고 싶다. 페터 한트케의 열광 팬인 빔 벤더스 감독과 협업한 작품으로 1987년 개봉했다. 분단된 베를린을 배경으로,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보이스오버 기법을 활용한 시와 함께 들려주고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의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모든 눈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영상과 희망적이고 따뜻한 주제 의식을 통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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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시상식의 페터 한트케

 

 

 

예술의 이름으로



페터 한트케의 많은 작품은 <관객모독>과 같이 전통을 탈피하고자 한다. 이전의 것을 뒤엎고 새로이 개척해나가는 것, 그것은 페터 한트케의 문학과 그의 문학관뿐만 아니라, ‘예술'이 언제나 바라 온 것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정점을 찍었던 ‘창밖의 회화’- 즉, 눈에 보이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캔버스에 그려내는 작업은 더 이상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고 점점 구겨지고 구부러지는 매너리즘으로, 결국엔 회화에서 그 어떤 입체성도 아닌 완전한 평면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추상으로, 우리의 밖이 아닌 안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예술가의 감상을 표현해낸 큐비즘으로 변모했듯 예술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페터 한트케는 희곡과 소설, 에세이, 시,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찬사와 비판,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은 우리 시대 가장 전위적인 예술가로서 노벨 문학상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이긴 하다.

 

그러나, 페터 한트케는 사적인 이유 및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제 생각이 옳다는 결단에서,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소패권주의를 내세워 인종 학살을 자행한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그의 정부를 옹호하고, 그의 장례식에서 참여해 조사를 읽으며, 그를 두둔하는 논조의 글까지 썼다.

 

또한 스웨덴 한림원은 페터 한트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벨 문학상은 정치적인 상이 아닐뿐더러, 문학적 우수성을 정치적 관점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오히려 시대의 주류 의견을 반영해 심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해 전, 비평을 공부하다가 만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기에 그의 수상 소식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에 대해 후련함으로 기쁘면서도, 동시에 그의 개인적인 사상에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관해 별다른 책임 의식도 없는 노벨 문학상의 안일한 태도가 싫었다.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2차 가해의 전형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기사까지도 말이다.

  

 

 

마치며


 

페터 한트케의 대단한 작품성은 인정하지만, 오히려 자기 작품에서 매번 행해왔던 것- 지나간 것과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성의 가치, 더 나아가 사랑을 강조하는 가치를 작가 개인이 무시해버렸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며,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한들, 창작자가 창작물의 뜻과 위배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의 작품이 진정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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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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