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계에 놓인 ‘선’: 괴물은 누구인가 – 경계선 [영화]

선과 악, 인간과 트롤, 본능과 이성, 문명과 자연
글 입력 2022.04.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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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메인 예고편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인간의 죄의식을 냄새로 맡아 불법적인 물건을 가진 자를 색출한다.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특이한 외모로 멸시를 당하지만, 인간의 체계 속에 적응하고 융화되려 노력한다. 그런 티나 앞에 ‘보레’가 나타난다. 보레는 외모뿐만 아니라 엉덩이 위쪽에 난 흉터와 같은 신체적 특징, 애벌레를 먹고 싶어 하는 -실제로 먹는- 식성 등 여러 면에 있어 티나와 닮았다.

 

티나는 자신을 염색체 결함으로 태어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보레를 만나고, 그가 자신과 같은 존재들은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트롤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티나는 보레와 함께 자연을 맨발로 거닐면서 애벌레를 먹고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한편, 티나는 보레가 머무는 집 안 냉장고에서 아기처럼 보이는 생명체, ‘히시트’를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수사관들과 함께 세관에서 찾아낸 메모리 카드에 담긴 아동 포르노 제작자를 쫓던 티나는 그들과 보레 사이에 수상한 관계를 눈치챈다. 보레가 인간의 아이와 히시트를 바꿔치기한 후, 인간의 아이를 아동 포르노 제작자들에게 팔았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은 옆집 부부를 보며 분노한 티나는 보레를 만나러 간다.

 

배 위에서 마주한 티나와 보레,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보레는 티나에게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며 함께 떠날 것을 권유하는데, 티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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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영화 <경계선>은 선과 악, 인간과 트롤, 본능과 이성, 문명과 자연 등 다양한 의미의 경계선 위에 있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는 인간으로 생활하는 트롤인 ‘티나’를 통해 그 경계를 보여준다.

 

티나의 경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보레이다. 트롤로서 정체성이 확고한 보레는 티나가 있는 경계에 선을 그으며 트롤과 인간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경계의 정의에 이미 “어떠한 기준에 의한 분간”의 뜻이 있지만, 티나의 경계에서 명확한 한계를 보여주는 선은 보레가 질문을 던지기까지 인지할 수 없었다. 즉, 티나가 ‘트롤’이라는 자아를 의식하고 받아들이는 데 보레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의 설정으로 티나가 이전까지 통제해왔던 자신을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선’은 논리적 모순을 가진다.

 

무엇보다 티나에겐 인간성이 남아있었다. 티나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간의 아기를 훔치는 보레에게 실망하여 핀란드로 떠나지 않았다.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윤리적 판단과 도덕적 양심을 지키며 인간의 경계에 남았다. 그러나 인간 세계 역시 모순되는 ‘선’을 가지고 있었다. 트롤이 훔친 아기를 산 인간은 더러운 욕망을 풀어내었으며 과거엔 트롤을 학대하는 비도덕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트롤과 인간은 서로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서로를 향해 괴물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선’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트롤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티나를 살펴보며 경계에 놓인 두 가지의 ‘선’, 금이나 줄을 의미하는 ‘선(線)’과 도덕적 기준을 의미하는 ‘선(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선(線)의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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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티나는 인간에 의해 길러지며 자신을 염색체 결함으로 태어난 불완전한 인간으로 여겼다. 남들과 다른 흉측한 외모와 생김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레가 던진 질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스로 괴물이라 생각했던 티나에게 “인간들이 나눈 경계에 너를 가두지 마”라는 보레의 한마디는 자신을 인식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보레는 티나가 인간으로서 유지해왔던 경계 위에 선을 그어 트롤이라는 새로운 테두리를 만들게 했다는 점에서 선의 설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성과 본능, 문명과 자연에 대한 티나의 달라진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티나는 영화 초반 항구에서 잡은 벌레를 다시 내려놓는다. 인간 사회에서 인간은 벌레를 먹지 않는다는 규칙을 따르기 위해 벌레를 먹고 싶은 본능을 참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닮은 보레가 벌레를 먹고 이를 권유하자 거부감없이 받아먹고 나중에는 직접 잡아먹기도 한다. 보레와 함께 나체로 숲속을 뛰어놀며 인간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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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보레는 티나에게 이성과 본능, 문명과 자연의 사이에서 트롤의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자아를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인간 세계에 얽매어있던 티나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동시에 선을 그음으로써 인간과 구분되는 트롤의 정체성을 인식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이때 그어진 선으로 인해 두 집단은 서로를 향해 괴물이라 서슴없이 말한다.

 

하지만 완전한 트롤도 인간도 아닌, 그 경계에 놓인 티나의 입장에서 둘을 나누고 괴물을 판단하기에 ‘선’은 너무도 빈약했다.

 

 

 

선(善)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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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선(線)의 설정이 보레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도덕적 의미인 선(善)의 인식에서는 티나에게 남아있는 인간성을 위주로 극이 전개되어 결말까지 나아간다. 우선 티나는 보레를 통해 트롤로서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트롤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 티나는 인간 아버지에게 길러졌으며, 인간 세계에서 그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규범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나는 인간의 내면적인 양심으로부터 비롯되는 도리를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보레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행동은 트롤의 선이 인간과는 다른 것으로 꺼림칙한 느낌을 준다. 보레는 인간으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과거의 기억으로 인간에게 복수하고자 히시트를 인간 아기와 바꿔치기한다. 훔친 아이는 더러운 욕망을 품고 있는 인간들에게 되파는 등 부도덕한 행동을 망설임 없이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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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그러나 자신이 받은 고통만큼 인간도 괴로워하길 바라는 추악한 복수심은 그가 혐오하는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과 다른 트롤이라 선을 그었던 보레였지만, 정작 그의 내면은 괴물이라 폄하했던 인간과 닮아있었다. 이에 실망한 티나는 핀란드에 가지 않았으며 보레를 경찰에 넘겼다. 티나에게는 아직 인간으로서 선이 남아있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유일한 선이라고 볼 수 없다. 트롤이 넘긴 아이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소아성애자의 모습이나 과거 트롤을 학대하고 묻어두는 아버지와 같은 인간들은 보레가 증오해 마지않았던 악의 가득한 괴물이었다.

 

각자 다른 선을 긋고 선을 추구하며 악을 저지르기도 하는 이들에게서 티나는 두 가지의 선을 보았고 경계에 서서 괴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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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말하면 인간인가요?” 보레를 경찰에 넘기기 직전, 함께 떠나자는 보레의 말에 대한 티나의 답이다. 경계에 놓인 두 가지의 선을 보며 괴물은 누구인가에 대한 우문현답이기도 하다. 인간이 –혹은 트롤이- 그어놓은 선에서 무시당했던 티나는 보레의 선을 통해 새로운 자아, ‘레바’로 다시 태어난다. 티나는 트롤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트롤의 행동을 하지만, 보레와 달리 인간 세계에서 도덕을 지키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

 

경계에 놓였던 인물이 선을 긋고 선을 따라간 끝에 경계로의 회귀는 어떻게 보면 현실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초에 선을 통한 구분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무의미한지를 보았기 때문에, 너 아니면 나라는 이분법 구조에서 벗어난 또 다른 하나에 대한 명석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결국, ‘선’을 긋는 것은 극단으로 나뉜 자들이 설정한 경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괴물은 선을 나누고 자신의 선을 취하고자 다른 이를 경계하며 위해를 가할 때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영화는 경계에 놓인 ‘선’으로 괴물은 누구인지, 선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관람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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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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