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오스 안에서의 끊임없는 자기탐구 - 스메르쟈코프 [공연]

선과 악과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자, 스메르쟈코프.
글 입력 2022.04.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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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의 극중 인물 스메르자코프의 이야기를 뮤지컬화 한 <스메르쟈코프>는 <브라더스 카라마조프>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원작 소설과 <브라더스 카라마조프>를 보지 않았던 필자는 "왜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도 하필 '스메르쟈코프'를 선택하여 그의 시점으로 극을 전개하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극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원작을 읽어보고서 공연을 보려고 했으나 방대한 양을 공연 전까지 볼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고, 열심히 관련 내용을 검색하였다. 전문도 아니였지만, 읽으면서도 꽤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 극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인물 내면에서의 선과 악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함이었기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보자는 마음가짐이라면 극에 조금 더 다가가기 쉽겠다고 생각하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난해하지만 처연한 외침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브라더스 카라마조프>의 스핀 오프 작품으로써 보다 심오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스메르쟈코프라는 인물의 탄생기에 초점을 둔 극이기 때문에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시놉시스를 보면 아버지 표도르 살해 후에 발작을 일으키는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긴 여행'으로 표현하며 극을 소개하는데, 관객에게 그의 일대기를 휘몰아치듯 보여주며 단시간 내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넘버와 함께 막이 오르는 점이 인상 깊었다.

 

주인공 스메르는 간질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인지 같은 3명의 스메르쟈코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릴 적 그, 간질을 앓아 공통스러워 하는 그 마지막으로 발작 후 악함을 드러내는 그, 이렇게 나누어 연기를 한다. 묘지관리인으로 일하면서 귀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과도 이야기를 하며, 어떤 때에는 울부짖으며 노래하는 등의 극적인 전개를 통해 인물 내면의 심리를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노래다. 극 중 넘버들은 관객에게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넘버들을 통해 그의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보다 쉽게 장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넘버들 중에서도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곡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답게 그의 삶 전반을 설명해주어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과거의 시점과 현재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극은 주인공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지금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예전의 일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또 그 스스로 근원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극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이름을 찾아 헤멘다. 이름을 찾아 방황하는 삶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많이,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도 부르짖듯 불리운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처연한 외침은 그에게 감정이입하게끔 하는 장치기도 하다.

 

스메르쟈코프라는 이름은 수증기라는 뜻이다. 그의 삶은 그의 이름처럼 어느 한 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보지 못한 불쌍한 영혼이다. 사생아에서부터 간질환자까지 부정적인 꼬리표는 그가 사는 동안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는 죽는 순간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스스로에게 그것을 부여하였다.

 

 

 

선과 악 사이의 고민


 

원작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감옥에서의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성경책 뿐이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종교와 관련한 장치가 많이 나온다. 조시마장로, 공동묘지에 가득한 십자가, 성경공부 중 알게된 내용을 읊는 등등 극 전반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들이 깔려 있다. 분명 이것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원작에 대하여 찾아보니,  그 중에서도 조시마 장로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선한 존재의 대표 격인 '조시마 장로'가 죽음 앞에서 그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극 후반부에 등장한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고백하고, 용서받아 그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도운 것이 아니였다고. 사실 그 자신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이들을 대신하여 여러 차례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생각하게 된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과 악은 스펙트럼 선상에 있는 것이기에 우리 내면에는 선도, 악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사실은 이것이 조시마 장로의 본성일까? 그런 결국 그도 악한 인간에 불과하였나?

 

극에는 악한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묘지관리인은 죽은 자들의 안식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 묘를 파헤쳐 그 안의 금은보화들을 내다 팔기도 하고, 심지어 가난한 자의 시체를 거래하기도 한다. 아버지 표도르는 인간성이 결여된 인물로, 그저 본인의 이익만 취하는 극악무도한 인물이다. 그런 그를 닮은 사생아 스메르는 그를 악인을 처단한 영웅으로 볼 수 있을까? 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과 가장 비슷한 스메르를 하인처럼 부렸고, 서자 그 이상의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스메르는 그런 아버지를 죽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사람을 죽인 것은 어떠한 이유와 동기가 있든 간에 용서할 수 없는 죄임은 틀림없다. 우리는 대체로 서사에 동요되는 경향이 있고, 스메르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내재되어있는 도덕적인 잣대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발작을 겪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고전판 조커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명에 따라 요리학교에 보내지고 하인처럼 산 성실한 나라의 스메르는 과연 악한 존재일까. 문장만 놓고 보았을 때는 명을 잘 따르는 착한 아들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간질이 일어날 때마다 드러나는 그의 악함은 앞서 말한 선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떠한 인간인가. 선인가 악인가?

 

 

"신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악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우리 안에는 악마도 있고, 신과 비슷한 모습도 있는 것인가요?"

 

 

공연은 스메르라는 인물을 통해 복잡한 인간 내면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간질병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마치 지킬앤하이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대사도, 위에서 언급한 신의 의도와 관련한 내용도 다 인간의 양면성을 다루기 위해 꺼낸 이야기다. 악한 것이 있어야 선한 것이 선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그의 물음은 우리들의 허를 찌른다.

 

 

 

극 속의 장치들


 

뮤지컬은 그 특성상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안에서의 장치들을 통해 장면 변화를 주게 되는데, <스메르쟈코프>는 소극장에서 진행됨에도 불구하 몇 가지의 소품들과 무대 장치를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과 공간 제약이 느껴지지 않도록 구성했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상 매 컷마다 장치의 이동이 잦거나 엄청나게 많은 소품들을 활용한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극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연기와 흰 천 그리고 붉은 장미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성과였지 않나 생각한다. 극 초반부터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치들의 의미를 생각하며 보는 것도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맵핑 스메르쟈코프 - 음악감독과의 대화


 

극이 끝난 후, 운이 좋게도 '맵핑 스메르쟈코프 - 음악감독과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란 늘 재미있는 법이니까. 음악감독은 극 중의 넘버들을 통해 스메르라는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숱한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넘버들이 혼을 쏙 빼놓는 강렬함을 기반으로 만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왜 그렇게 절절하고 복잡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대화를 하였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스메르에게 온전히 빠져들어 그를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인물을 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마치며


 

<스메르쟈코프>는 내게 2년 여만의 뮤지컬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던 90분이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극이 끝난 후에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에 압도당해서 오랫동안 박수를 칠 정도로 너무나도 멋진 공연이었다. 체력소모가 크겠구나 느낄 정도로 90분 동안 쉼없이 몰아치는 극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극 자체의 분위기가 무겁고,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극 초반부에는 이해하기 바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는 극에 빠져들 수 있었지만, 본 직후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극의 모체인 <브라더스 카라마죠프>도 보지 않았고, 원작인 소설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행방식이 조금 더 친절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남는다.

 

어렵고 난해했지만 오히려 고뇌의 시간이라 값진 경험이었다. 극을 계기로 원작 소설을 한 번 접해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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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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