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할 줄 알았던, 시절 인연 [드라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리고 시절 인연
글 입력 2022.04.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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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무조건 완결이 되고 나서 본다는 나름을 철칙을 가진 나조차 정말 오랜만에 매 회차를 기다리며 실시간으로 감상했던 드라마였다.
 
아름다울 정도로 청량한 색감과 마음을 찌르는 대사들을 자주 곱씹게 되었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청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잔상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청춘백이진나희도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보며 누구보다 이들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다. 김태리와 남주혁이라는 두 배우를 재발견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화 방영 이후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등장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백이도와 나희도의 이별이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더욱 여운이 남고 공감되었다는 의견부터, 현실적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던 청춘의 끝만 현실적이어야 하냐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의견도, 전개 방식을 아쉬워 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백이진과 나희도라는 인물에게 몰입했다는 증거인 동시에,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되짚어 본 “청춘”의 기억, 또는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정의하는 청춘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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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나와 매주 함께 시청한 엄마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참 예쁘면서도 아리다고 말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어버린 엄마에게도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리게 된다. 드라마 초반, IMF의 여파로 고생하던 백이진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엄마, 나희도가 봤던 풀하우스 대신 캔디를 보며 자랐던 엄마의 모습을 드라마를 보며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엄마와 함께했던 이들은 이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과는 다르게 SNS나 스마트폰을 통해 자유롭게 소식을 접하고 연락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연결고리가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슬프지 않냐 물었다. 기억은 그대로인데 기억 속 사람들만 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엄마는 드라마 속 어른이 된 희도와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다. 그렇지만 그게 인생이라고 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가 문득 어떠한 계기가 생기면 웃으며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 아름다움을 곱씹어볼 수 있게 되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유독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현재의 희도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아팠다. 빛났던 청춘의 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슬프다”라고 바라보는 나와 “아름답다”라고 바라보는 엄마 사이의 시간의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보며 슬프고 아리다고 느끼기보다 아름다웠던 추억이라며 미소를 지을 때야 비로소 청춘이라는 긴 터널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너무 어린 것인지, 그런 방향으로의 성장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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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에는 다음과 같은 아킬레스의 대사가 등장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인간은 늘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아. 그래서 지금 넌 가장 아름다워.”
 
 
유한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을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제이기도 한 “시절 인연”은 요즘 들어 유독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그 시절 우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인연들, 시절 인연. 아직 모든 게 영원하기만을 바랄 나이지만, 사실 나는 이미 시절 인연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를 스쳐 가는 그 순간에는 참 크게 느껴지고, 크고 잊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순간들도 언젠가는 흐릿해진 기억이 된다. 드라마 속 현재의 희도가 고등학생 시절 태양고 5인방과 함께 다녀온 인생 첫 수학여행마저 한 번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중학생 시절 밤잠을 설치게 했던 내 첫사랑의 기억과 고등학생 시절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든 강렬했던 순간들의 감정은 이제 내게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겨져 있다. 우정과 사랑, 감동과 실망을 알려준 이들 중 일부는 이제 내 삶에서 지워진 사람들이다.

우리의 시간은 순간에 메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지나간 순간들은 시절이 되어 우리를 만든다. 그렇기에 어쩌면 시절 인연이란 말이 생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순간은 영원할 수 없고 우리는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 삶이란 지나간 순간들을 그 시간 안에서 온전히 추억해주고 사랑해주며 때론 쿨하게 꺼내 볼 수 있는 자세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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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순간들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능력 아닌가. 모노톤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난 순간들을 되돌아보니 분명 가슴 벅차게 행복했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은 존재했다. 그때에는 그런 줄도 몰랐지만, 지금 내가 청춘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순간들도 존재했다.
 
종영 후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두 아름다웠다는 엄마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메시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매 순간 끝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는 순간에 더욱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순간을 미련 없이 후련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종영 이후 김윤아가 비긴 어게인 프로그램을 통해 포르투갈에서 부른 스물다섯 스물하나 라이브 영상을 자주 시청한다. 시절인연과 청춘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20년 뒤의 나는 2022년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올해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 중 어떤 것들이 20년 뒤의 내 기억 속에도 남아있을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이 글을 썼던 것은 20년 뒤의 내가 기억하고 있으려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한다. 남아있을 것이라 믿어야 순간에 충실할 수 있으니까.
 
 
 
 
모든 걸 갖겠다고 덤비던 시절이었다
갖고 싶은 게 많았다
사랑도 우정도 잠시 가졌다고 착각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연습이었던 날들
함부로 영원을 이야기했던 순간들
나는 그 착각이 참 좋았다
그래도 가질 수 있었던 게 하나 있었지

그해 여름은 우리의 것이었다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마지막 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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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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