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벚꽃이라는 가름끈을 손에 쥐고 [문화 전반]

나머지 페이지를 위하여
글 입력 2022.04.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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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한없이 느리게 가다가도, 어느새 저만치 가 있는 시간을 감각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고도 인지적인 찰나에 불과하다. 이를 세기 위해 하루, 이틀, 1주, 1년 등으로 매겨진 수많은 페이지들이 존재한다.


으레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고도 하던가, 농담으로라도 주고받던 그 말이 나는 썩 달갑지 않았다. 말마따나 나를 종용하기라도 하듯 할 일이 태산으로 닥쳐오는 시기가 바로 봄이었다.

 

이 일정들을 전부 소화해내기에 바빴던 나는 목표의 무게에 짓눌려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SNS는 물론이요, 저마다 개화 시기를 알리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벚꽃이 눈이 부시게 화사해지는 가운데 못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찬란함을 외면하며 ‘굳이’라는 수식어를 우물쭈물 붙이기 시작했다.

 

 

벚꽃1.jpg

 

 

다시 또 봄이다. 춘곤증의 기운이 만연하고 살갗에 닿는 옷감의 무게가 한껏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어느덧 나는 중간고사랑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옛날에도 지금도 항상 무언가를 하느라 봄을 바쁘게 보낸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게 주어진 바쁨은 ‘이것만 하고’의 연속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태우고 남은 아쉬움이 잔여물로 엉겨 붙어 내게 강박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바쁘다는 다짐’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던 것 같다.


이제는 마음속이 온통 의무감과 변명으로 뒤덮여 버려서 바쁘기 위해 쉬고 싶은 건지, 쉬고 싶어서 바쁜 건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더 이상 추진력과 화력만으로는 나의 바쁨을 해결할 수 없었다. 실눈을 뜨고 바쁨무리함의 경계를 살펴보았다. 바쁘지 않음을 견뎌야 한다. 장장 6년에 걸쳐 읽어낸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유행처럼 번지는 벚꽃 소식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여전히 바빴지만, 바쁨을 위한 변명은 이제 멈추기로 했다. 간만에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위한 날짜를 잡았다. 만나기로 한 곳은 장소가 아니라, 길이었다.


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로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길을 지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일부러 길에 머물렀다. 나도 그 곁에 서서 있는 그대로의 벚꽃을 천천히 관찰하고 감상했다. 봄이라는 찰나에 너무 빨리 떨어진다고 느꼈던 벚꽃잎은 실제로 아주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벚꽃에 서린 각자의 추억들을 더듬고, 또 새로운 추억을 새겼다.

 

 

벚꽃2.jpg

 

 

순간의 기억은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마법과도 같다. 곧 비가 내릴 것이고, 이 글이 올라갈 때쯤 벚꽃은 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바쁠 필요도 없다. 벚꽃이 떨어진 길은 올려다본 하늘의 모습을 기억한다. 빛이 머무른 자리처럼 눈을 감아도 보이는 잔상을 남겼다.


언젠가 또다시 펼쳐 읽을 나머지 페이지를 위해, 벚꽃이라는 가름끈을 손에 쥐었다.

 

 

 

민정은.jpe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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