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행선 사이를 횡단하는 진실에 대한 신념 - 패러렐 마더스 [영화]

민족 학살과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를 함께 다루다.
글 입력 2022.03.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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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두 개의 평행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대 닿지 않을 것 같던, 아무 연고도 없어 뵈는 두 개의 이야기가 각자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중간엔 사진작가이자 엄마인 야니스가 서있다. 그녀는 어떻게 이 사이를 왕래하는 걸까, 영화는 이 평행선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위의 도표는 <패러렐 마더스>의 간단한 타임라인이다. 시작(Start)과 끝(End)이 같은 선형적 시간대인데, 파란색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빨간색의 비중이 높아지고, 다시 파란색이 섞이면서 결국 둘이 함께 마무리 된다. 극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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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야니스는 능력 있는 사진작가다. 그녀는 오래 전 군부 독재에 의해 생매장 당했던 증조부의 유골을 발굴하고자 한다. 작업을 위해 만난 고고학자 아르투로와 연인 관계가 되며 곧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산부인과에서 10대 임산부 아나를 만나 친하게 지낸다. 출산 후 일상으로 돌아온 야니스는 헌신적으로 딸을 사랑하지만 곧 DNA 검사를 통해 친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아나의 아이와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친딸은 이미 돌연사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야니스는 아나를 입주 가정부로 들이며 그녀의 딸이자 아나의 친딸을 돌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니스와 아나는 섹슈얼한 관계로 이어진다.

야니스는 아나에게 진실을 밝힌다. 사실 이 아이는 네 딸이라고. 아나는 분노하며 집을 나간다.

유골 발굴 작업이 시작된다. 야니스와 아르투로는 관계를 회복한다.아나는 둘의 관계를 지지한다. 곧 땅 속에 묻혀있던 조상들의 유해가 드러난다. 감독은 ‘침묵의 역사란 없’노라고 말한다.

(편의상 각 스토리를 ‘파랑’ ‘빨강’으로 부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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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당시 사망한 공화당 죄수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 AP통신.


 
파란색에 해당하는 역사 이야기는 감독의 정치색, 역사관, 민족성이 뚜렷이 보이는 부분이다.

1939년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의 독재정권 시대엔 많은 이들이 실종 당했다. 그 수는 114,000여 명에 이르며 이 중 시신을 수습해 신원을 확인한 것은 19,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야니스의 증조부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감독은 이것을 중심 소재로 사용하며 침묵된 역사를 직접 고발하고자 한다. (실제 감독은 그 독재 정권 시절―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빨간색은 다소 ‘막장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병원에서 뒤바뀐 아기, 내 친딸은 이미 죽었고, 난 살아있는 딸의 친모를 속이며 한 지붕 아래 산다? 그것도 그녀와 성적 관계를 맺는 연인 비스무리한 것이 되기까지?
 
내전의 아픔과 막장 드라마 사이, 만나지 못할 평행선은 야니스가 추구하는 어떤 신념에 의해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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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선상에서 야니스는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사람이다. 유해가 묻힌 땅을 문자 그대로 ‘파헤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집안의 내력이자 그녀 인생의 목표이다.

또 그녀는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영화는 사진을 찍는(본업을 하는) 야니스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다. 카메라를 들고 찰칵일 때마다 밝은 플래시가 번쩍한다. 사진은 현상 그대로를 박제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를 때마다 책임감이 주어진다.

희생당한 조상의 진실을 밝히고, 제 스스로도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 진실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저돌적이고 가감이 없다. 말 그대로 ‘진실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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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빨간 선상에서의 야니스는 완전 반대다. 거짓말쟁이에 가깝다.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에게 사실 네 딸은 살아있다고 밝히지 않고 은폐한다. 이걸 마냥 고의적으로 보긴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그녀 또한 진실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닥친 진실은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 아이가 제 친딸이길 바랐지만 사실 아니었고, 집단 성폭행을 통해 임신하게 됐었다는 아나의 고백조차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쏟아진 것이다.

그렇기에 빨간색에선 도리어 진실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입장을 보인다. 능동적으로 진실을 쟁취하려 하는 그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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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한 진실은 선하고 단단하지만, 개인의 욕망을 위한 진실은 비윤리적이고 불안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이 사이에서 고뇌하는 야니스를 통해 대척점을 부각시킨다.

동일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토록 모순적인 태도, 이 나약함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이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용감하다가도 곧잘 비겁해지는 게 인간이란 동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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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생각하는 진실의 속성은 결국 ‘드러나다’ 혹은 ‘(필히)드러날 것이다’이다. 그 예로 야니스가 혼자 숨기던 비밀을 결국 고백하는 것이 있고, 조상의 유골이 결국 발굴되는 것이 있다. 개인의 진실이 해결된 뒤 대의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 도표 마지막에 빨강과 파랑이 만나며 갈등이 막을 내리는 구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유골이 묻혀있던 자리에 살아있는 이들이 누워있는 모습이다. 고문을 당해 손이 묶여 있거나 팔다리가 웅크려진 채로 겹쳐있던 시신들과 똑같은 자세를 취한다. 사람 한 무더기가 땅 한 구덩이에 파묻힌 모습이다. 그 상태로 카메라가 천천히 붐업되며 화면이 점차 디졸브된다. 마치 무언가가 붕 떠오르는 것처럼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우루과이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을 인용한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해도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야니스의 연기가 드러난 것처럼, 유골이 그 형상을 드러낸 것처럼,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감독의 태도이자 자국의 근대사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굳건한 신념이다.
 
감독은 평행선의 배경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는다. 민족의 역사, 모계사회, 카메라가 가진 포착의 성질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딜레마를 겪는 한 여성을 통해 이것들을 만나게 한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각각의 평행선의 분절, 그 사이를 잇는 진실의 대치를 즐길 수 있다.
 
빠른 호흡과 다소 낯설 수 있는 전개, 그리고 파격적인 소재들까지. 그 사이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영화, <패러렐 마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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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Parallel Mothers, Madres paralelas>, 페드로 알모도바르, 2021,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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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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