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애정하는 것들 - 1. 향 (scent) [문화 전반]

노스텔지어의 매개체, <향>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글 입력 2022.03.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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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 [명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취향'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졌다. 다들 자신의 취향을 소셜미디어에 선보이기 시작하고, 미디어에서도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라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유행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몇년 전 이 현상에 대하여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때 했던 대화가 무척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진정으로 좋아서 취향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동일시하여 그것이 나의 취향인 양 착각하게된 것인지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화 이후로 진짜 나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좀 더 '나'에 가까워졌는데,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과 함께 내가 왜 그것들을 사랑하는지 소개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취향을 선보이는 짓이지만 취향 그 자체가 아닌, 취향을 갖게 된 스토리를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애정하는 것들>은 총 3부작의 글이 될 것이고, 그 시작은 향이다. 나의 첫번째 시리즈가 단순히 취향을 나열하고 또 자랑하는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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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향수나 인센스, 혹은 향초처럼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일수도 있고, 음식이나 커피에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다. 하도 향에 대한 나의 마음을 많이 드러내서, 지인들이 나를 소개할 때 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향을 좋아하게 되었나.


그 시작은 아주 까마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의 나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아이었다. 우습게도 장난감 같은 것보다는 남들은 크게 관심 갖지 않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감각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촉각보다, 맡고 듣는 감각들을 사랑했다. 그것들은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성격은 아주 무던 했지만, 후각 만큼은 아주 예민한 아이었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나는 냄새, 비가 오면 풀과 흙에서 나는 내음, 초여름밤 공기의 싱그러움 따위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때와 장소마다 특징적인 향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또 향을 맡으면, 어디에 있든 그 때로 또 그 공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며 머릿속에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마구 써내려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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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들보다 조금은 유별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그 날은 수학여행 출발 당일이였다. 날씨는 무척이나 흐렸고 부슬비가 내렸는데, 흙의 냄새와 비오는 공기의 냄새가 너무나 향긋하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아무래도 수학여행이라는 이벤트가 좋았기 때문에, 그 날의 내가 맨 처음으로 맡고 또 자각한 향이 더욱 좋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지금은 생각하지만, 어린 나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향으로 장면을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이라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러다 다른 이들도 장면을 기억할 때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간이 조금 흘러, 친구들에게 내가 향으로 순간을 기억하고 또 그 때 맡은 향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이자 공감을 해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도리어 조금 특이한 아이 취급을 당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생각보다 꽤나 특별한 재능이구나!’


향이 국어사전에 명시 되어 있는 뜻은 다음과 같다.

 

 

[명사]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그래, 좋은 냄새.

 

좋다, 나쁘다는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결정되지만 ‘좋은 냄새’라는 표현은 꽤나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대체로 좋은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데, 이건 인간의 본능과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본능적으로 더 아름다운 것을 탐닉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꽃집 근처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향수를 사용한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것이 예시이지 않을까.

 

어쨌든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후각을 가진 탓에 향을 아주 사랑하게 되었고, 나 자신에게서도 좋은 향이 났으면 하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욕망은 향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처럼 힘을 가지고 있는 향을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향은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연관된 향을 맡을 때마다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향을 맡으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고, 자연히 사람들이 생각나고 또 그들과 했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부유한다. 자주 쓰던 물건이 생각기도 한다.


그 날의 공기나 그 때 썼던 바디 크림등의 향을 우연치않게 맡게 되는 때면 자연스레 그리운 시절이 생각이 난다. 내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사용했던 바디크림과 고체향수 냄새를 맡기만 하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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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노스텔지어의 매개체로써 아주 훌륭하다. 과거에 젖어 사는 편인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날을 추억하고 또 행복했던 기억을 곱씹으며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또 향으로 인해 그 시절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추억되는데, 이처럼 향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컨대 로맨틱한 영화에서 무드를 잡을 때 향을 피우는 장면이 종종 연출 되고는 한다. 이는 더 좋은 기억을 선사하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물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좋겠지만, 좋은 향에 둘러싸여 있으면 행복감을 배로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향수를 쓰는 사람이 근처를 지나가면 뒤를 돌아보게 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추억 속을 한참 헤메이다 종착하는 곳이 행복한 기억이 아닌 악몽의 감정으로 남아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향은 고유의 힘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을 유일무이한 경험으로 초대한다.


향은 공간을 설명하기도 한다.

 

공간은 이미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간에 존재하는, 우리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기억에 총체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향이 그 중에서도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대표하는 향을 다른 어디에서 맡아도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절에 가면 흔히들 말하는 절간 냄새가 나고 바닷가에 나면 짠내가 섞인 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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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관계맺기를 빼놓고는 우리 삶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때 만난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향, 내가 썼던 향수, 우리가 함께 마셨던 그 술에서 나는 향기를 떠올리다 보면 수많은 관계들과 함께 한 지난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시간은 시절인연을 곱씹어보는 기회를 줄 수도 있고,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라는 개인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간 인연들을 향을 통해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고 또 흥미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또 그래서 재밌는 구석이 많다. 향도 마찬가지다. 향을 더 깊이 알아 갈수록 어려웠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보다 더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고, 내가 맡고 느끼는 바운더리 또한 넓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특별히 더 사랑하고, 잘 어울리는 향을 찾기도 하였다.

 

향을 '나'를 각인시키는 도구로써 활용하게 된 것이다.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갔을 때, 처음으로 비싼 돈을 주고 향수를 구입했다. 그 전까지도 향수는 사용하고 있었지만 큰 돈을 들일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원하는 이미지가 그려지는 향을 만나보지 못했었다. 여행 끝자락에 고민을 하다가 위의 향수를 구입했다. 당시 깨끗한 비누향을 몇 년 째 좋아해오던 터라 뽀송한 침구류에서 나는 향을 가진 향수를 샀었다.

 

한국에 돌아와 향수를 잔뜩 뿌리고 다녔는데,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보여지고 싶은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었으며, 진짜 '나'와도 어울리지도 않는 느낌이였다.

 

그래서 두 번째로 좋아하던 우디 향조의 향수를 구입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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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남성적인 향을 가진 아이였다. 시트러스 향조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물에 푹 젖은 소나무 냄새가 인상적이였다. 평소에 향(insence)도 자주 피우는데, 파출리 향을 태울 때 날 것만 같은 향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본연의 살냄새와 함께 섞였을 때 은근히 느껴지는 향이 매력적이었다. 원래부터 사용 중이었던 바디크림과 고체향수와 동일한 향조가 들어가있는 향수라서 통일감이 느껴졌고 또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래 전부터 써오던 것처럼 말이다.

 

오랜 고민과 경험 끝에, 마침내 나는 나의 향을 갖게 되었다. 아주아주 복잡한 나라는 사람에 걸맞은 향이었다. 어딘가 시원시원한 면도 있지만, 포근하기도 하고 또 나무처럼 우직한 면도 있는 내게 아주 걸맞는 그런 향 말이다.


만약 세상에 향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종종 생각해보고는 한다. 무향의 세상은 아주아주 심심할 것이며, 또 우리가 지금 느끼는 세상보다 몇 백배 쯤은 덜 행복하지 않을까? 바라보았을 때 예쁜 꽃도 향이 없으면 그 아름다움을 100% 다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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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향이 좋은 것들을 모조리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어느 시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남들이 맡지 못하는 컵에서 나는 물때 냄새나, 그릇에서 나는 행주의 냄새를 자각할 때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나의 예민하지만 섬세한 감각이 주는 행복이 좋다.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향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을 늘 기억하고 애정할 것이다. 내 삶의 정가운데에 늘 향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정독해주신 그대가 그리워하는 계절, 시간, 사람이 가진 향을 상기시키고 또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선사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만 글을 줄인다.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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