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초의 휴식

꼭 필요했던 휴식의 순간을 맞이하다
글 입력 2022.03.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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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난 순간, 깊게 잠긴 목의 감각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유명하고도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 이제는 오미크론이라 부르는 게 더 일상적일까, 이 감염병의 그물망에 안타깝게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2020년 1월부터 온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이 골칫거리를 요리조리 피해가나 싶더니 결국 예외의 대상이 되진 못했다.

 

"일주일간 집에서 격리하시구요. 약먹고 2-3일이면 나을 거니까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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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판정 후 의사선생님의 '기념샷(?)' 권유에, 재빨리 촬영했다.

 

 

6살 때부터 17년간 다닌 이비인후과의 원장님께서는 별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듯이 조곤조곤 행동수칙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추억"이 될 거라며, COVID-19 검사 키트에 빨간색 두 줄이 그어진 것을 사진 찍어가라고 하셨다. 얼떨떨한 감각으로 아이폰을 드래그한 후 사진을 찰칵 찍었다.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원장님께 꾸벅 인사를 한 후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애 처음 느끼는 깊은 안정감과 안도감을 마주했다. 이것이 정녕 확진자의 생각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내 안에서는 "일주일동안 집에서 쉬세요"라는 그 한 마디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는 것이었다.

 

 

 

꺼지지 않는 불


 

우리 할머니는 태어났을 때부터 운명을 논할 때 사주팔자를 일컫곤 하셨다. 아직까지도 '사주'라는 것이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끔 심심할 때 혹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할 때 제발로 사주의 맥락을 찾아간다. 친구들과 함께 재미로 보았던 사주집에 홀로 다시 한번 찾아간 적이 있다. 다양한 관계에서의 어려움과 고민,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던 때다. 사주집 원장님은 내게 '불'의 기운이 두 개나 있다고 했다. 활활 타오르고, 끓어넘치는 에너지가 강하다고.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20살 초반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모두 쟁취하며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데 지금 이시기부터는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시기가 얼마간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는 거의 펄쩍 뛰면서 "맞아요! 제가 지금 정말 고민에 빠져있거든요."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다시 돌아서 생각해보니 그건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모름지기 공유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고뇌일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펼치기가 어려운, 시대의 변화 그 한복판에 서 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 대한 합리화도 결국 인간의 능동성을 부정하는 핑계다. 그날 사주를 보고 나서 오히려 마음을 굳건히 다잡았다. "그래, 어찌됐든 선택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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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나의 '불' 같은 사주 기질에 대해 생각해보자. 돌이켜보니 과거,현재,미래를 아울러보면 스스로를 '꺼지지 않은 불'이라 칭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다. 언제나 나는 춤을 추면서 땀을 흘렸고, 밖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누비기를 좋아했고, 사람들과 만나 열정의 순간을 꽃 피우기를 지속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과정에서 집에서 가만히 누워 뒹굴거리거나 혼자만의 여유를 '지속'하는 시간을 가졌던 때는 거의 없었다. 언제나 불타고 있고, 불타고 있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정의내리기 힘들었으니까.

 

 

 

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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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육체, 몸과 마음을 모두 쉬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까지의 좌우명은 "Seize the Moment(순간을 잡아라)"였다. 죽음은 예정되어 있고, 현재라는 지금의 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이 여정을 살아야한다는 신념은 나의 무의식 속 깊은 뿌리부터 박혔기에 모든 행동과 선택의 원인이 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에게 긴 휴식을 허락한 적이 손에 꼽는다.

 

물론 6-7km를 혼자 걸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1시간동안 자전거를 타며 14km를 왕복하는 것도 나에겐 일종의 '쉼'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환기가 가능했을 뿐 육체적인 사이클은 멈추지 않고 끝없이 돌아가야 했다. 또 침대에 벌러덩 누워 가끔씩 가려운 목과 두피를 시원하게 긁으며 유튜브를 볼 때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깨달음을 얻고자 이따금 심리학 또는 주식과 부동산 관련 영상을 보거나 들었다. 뇌를 혹사시켰다. 누워있으나 엄연히 휴식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잠을 잘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너무 많은 생각과 가능성을 생각하는 습관 탓에, 지독하게도 많은 꿈을 꾸고 살았다. 찾아보니 이것도 '다몽증(多夢症)'이라는 수면장애의 일종이었다. 실제로 지나치게 꿈을 많이 꾸어 수면 부족이나 피로감 따위가 생긴 날이 아주 많았다.

 

또 작년 1년간 휴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휴식을 취하진 못했다. 그저 대학교에서의 공부(學)를 잠시 쉬는(休) 그 말 그대로의 '휴학'일 뿐, 10개월동안 인턴 생활을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했고, 글을 쓰고, 고민하고, 또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2월 마지막날까지 인수인계 작업을 위해 하루를 쏟았으니, 휴학의 시작과 끝에서 진정한 휴식은 사실상 없었다.

 

어쩌면 기계보다도 더 기계처럼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살았을까. 그 당시에 내린 선택이 그때의 나에겐 최선이었지만, 7일간의 '강제 휴식' 또는 '최초의 휴식'이 공식적으로 명명된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강제적으로, 나도 모르게, 완전히 출구 없는 휴식의 길에 접어들었다. 단 7일일지라도!

 

 

 

최초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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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 창문을 열고 바라본, 3월 중순의 맑은 하늘

 

 

일주일동안 온전히 나의 방에서 24시간 시간을 보내는 첫날밤. 난생처음 다가온 '무계획 휴식'에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밤잠을 뒤척였다.

 

오전 6시에 눈이 떠졌다. 멀뚱멀뚱 눈만 뜨고 누워있으니 기분이 오묘하다. 지금쯤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평소 계획했던 대로 영어 말하기를 연습하거나 책을 펼쳐들어 읽어야 할 것만 같은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는 '확진자'의 신분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완벽한 명분을 가지고 소위 '자빠져있는 것'이다.

 

적적한 새벽의 공기가 조금은 어색했다. 익숙한 멜론 앱(App)에 들어가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평소에도 길을 걸을 때나 지하철을 탈 때 수없이 들었지만, 새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새벽녘에 이불 속에서 노래를 듣는 기분은 또 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루틴하게 했던 습관을 잠시 놓아도 된다는 안도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서 성시경과 아이유, 정승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호사.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이상하리만치 신기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잠이 스르르 들었다. 그대로 11시까지 늦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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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첫 날, 혼자 배달시켜 먹은 초밥세트. 참 맛나게 먹었다

 

 

잠이 깬 후로부터는 온전히 나의 마음이 이끄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계획을 지켰는 지의 유무에 따라 하루의 의미를 정의했던 이전의 나와는 잠시 안녕을 고하기로. 책이 읽고 싶을 때는 침대든, 바닥이든, 책상이든 책을 펼쳐들었다. 예전같았으면 곧이어 있을 약속에 나가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책을 읽었을텐데, 이제는 시간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고 그저 '몰입'했다. 몰입의 순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랬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메모하는 시간이 이토록 빛날 줄이야. 시간의 고무줄을 천천히 잡아당기듯, 순간의 밀도를 온전히 체감하고 있었다.

 

쉬는 동안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의 <다크호스>란 책을 읽고 있다. 성공의 표준 공식을 깨는 비범한 승자들의 원칙이라는 소제목의 도서인데, 잔잔히 이 책을 살펴보며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개개인성에 적합한 미시적 동기와 상황, 태도, 기회들을 선택하는 것의 의미를 곱씹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중요한 순간에서의 선택의 진가는 "자신만의 미시적 동기들을 최대한 많이 활성화할 기회를 찾아내 선택할 때 발휘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의 뜻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새로이 번역해보았다. '내 안의 다양한 불꽃을 정성스레 가꾸고, 그것들을 동시에 터트리는 파티같은 삶을 살자!' 그동안 정신없이 살았던 이유가, 한편으로는 내 안의 섬세한 동기와 원동력을 찾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토닥여줄 수 있었다.

 

'어딘가에 가야한다' 또는 '누구와 만나야한다'는 일말의 부담감없이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며 보낸 이 시간의 힘은 대단했다. 저절로 여유있는 사람이 되어간달까. 창밖의 하늘을 살펴보며,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몸의 근육에 엉킨 긴장을 푸는 스트레칭을 한다. 목적은 없다. 그냥 마음과 몸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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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뭉이의 낮잠 아지트가 된 나의 요가매트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잔잔하고 확실한 행복을 준 것은 우리집 강아지 신뭉과의 시간이다. 물론 가족들과는 철저히 접촉을 지양하고, 최소한의 소통(카톡, 전화, 방문 열고 몇초간 대화)가 전부지만 하지만 뭉이와의 시간은 예전의 일상과 달리 더 촘촘해지고, 다정해졌다.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갔던 평소에는 뭉이를 아침 또는 늦은 밤에 주로 보았지만, 이 기간만큼은 뭉이가 내 무릎 위에서 자는 부드러운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뭉이와 교감한 덕에 쉬는동안 꾸준히 빙그스레 웃음이 베어나온다. 감정의 면역력이 강해지는 걸 느낀다.

 

최초의 휴식. 꼭 필요했던 휴식. 평소 말이 너무 많아 '말을 줄이라'는 하늘의 뜻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최초의 일상. 모든 것이 처음이지만 지금 나는, 편안하다. 운명처럼 제 때, 제 시간에 맞게 다가온 이 휴식을 보다 포근하게 감싸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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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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