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연이 선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팠던 사람들 - 예술의 정원

정원의 역사로 헤아려 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 사유들
글 입력 2022.03.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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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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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흰색 수련, 1899년,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모네는 자신의 정원 자체를 예술 작업으로 생각했다. 마치 화가가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림으로 옮기듯, 정원을 그림으로 생각하며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었다.

 

- p.379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중에서

 

 

인간이 만든 인공물과 세계의 일부라 할 만한 자연물이 한곳에 모여 이루어지는 정원. 나는 이번에 이 당연한 사실을 다소 새삼스럽게 마주했다. 인간과 자연의 합작, 이제 거기에 인간의 사심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원은 내 예상보다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고 한다. 고대 때부터 있었다 하니 사람과 함께 아주 긴 시간을 함께했던 장소인 셈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오랜 시간 만들어져온 만큼 사람의 본능적인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 정원일지도 모르니까.


‘예술’이 들어간 제목 덕분에 삶과 예술에 대한 주관적인 관점으로 『예술의 정원』을 읽었다. 그 관점은 요약해 표현하자면 인간의 살아감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의식이 있다. 생각한다. 숨을 쉰다. 나올 수 있는 여러 대답 중 나는 이것에 주목하는 편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곳을 그만의 방식으로 감각하며 헤아린다. 여기에 지극히 인간 다운 특징을 끌어온다. 우리는 응시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를 읽어낸다. 우연인지, 나의 감성, 이성 그 무엇 때문이든지 간에. 사람이 사는 세계는 다채로운 의미가 맺혀 존재한다. 그런 사람이 창조한 정원이다.


이런 관점으로 예술과 정원, 두 단어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떠올린 생각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이토록 넓은 자연, 그토록 다채로운 존재 의미를 덧대어 형성되어온 정원의 역사를 예술 작품과 함께 해석하는 도서 『예술의 정원』 리뷰를 시작한다.



[표지 평면] 예술의 정원.jpg

 

 

[Review]

자연이 선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팠던 사람들

 

 

정원은 한 시대를 표현하는 예술이자 신화, 종교, 교황, 군주, 제왕들의 역사를 반영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시대에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나 그림 작품에 영감을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예술의 정원]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정원부터 당시의 생활 양식을 담은 정원, 상징적인 개념을 내포한 정원, 문학 작품과 화가의 화폭 속 정원, 종교적 장소로서의 정원 등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서양 미술에 담겨 있는 다채로운 정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 책 소개 중에서

 

그림 앞에 나란히 서서 곁에 선 저자의 손끝을 시선으로 좇는다. 손끝은 사람들이 아닌 그들이 서 있는 정원으로 향한다. 기대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당대의 정원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보며 그림 속 장소가 정원이란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는 것에 작게 놀라며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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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마다 예술 작품 여럿이 함께 소개된다.

저자는 그림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세히 해석을 이어나간다.

 

 

시대마다 유행한 정원의 양식은 무엇인지. 정원을 이루는 산책로, 꽃, 물, 화단 등의 요소에는 어떤 상징이 깃들었는지, 정원이 이런 모습이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지 등등. 『예술의 정원』은 기대보다 더 섬세하게 정원을 해석하고 있었다. 마치 정원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란 건 보통 딱딱하고 지루한 인상을 주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담담히 정원의 역사와 그 의미를 해석하는 <예술의 정원>은 오히려 다채로운 맥락을 읽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정원 내 새겨진 명문 덕택에 처음 이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1552년의 날짜와 소유자를 알 수 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Solo per sfogar il core'라는 명문에 적힌 글귀는 정원 조성의 목적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일종의 경이로움의 정원이며, 여러 볼거리 중 석조물들이 단연 눈을 끈다. 무질서한 자연 속에서 씨름하는 거인들, 강의 신, 바다의 신, 곡물의 여신 케레스 Ceres, 날개 달린 백마 페가수스 Pegasus 뿐 아니라 코끼리, 돌고래, 암컷을 등에 얹고 있는 거북이, 지하 세계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 Cerberus, 복수의 세 여신 등 다양한 돌조각들이 배치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정원이 있는 지역을 초자연적인 장소로 보기도 한다.

 

- p.76 「보마르조 정원」 중에서

 

 

저자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넘어 그 뒤에서 움트던 세계를 읽는다. 시대마다 다른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정원을 만들었는지 예술 작품을 통해 해석한다. 고대의 정원은 위험이 도사리는 외부 세계에서 벗어나 안전히 머물 수 있는 피난처였다. 안온한 곳인 만큼 신성하고 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자연환경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의 권력을 드러내는 공간으로서의 정원을 볼 수 있다. 그에 반면 지배하는 권력이 아닌 그저 질서만을 부여함으로써 그 모습 그대로 정원 삼아 함께하고자 하는 정원이 18세기 영국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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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려있는 보마르조 정원 사진

 

 

일상에서 벗어나 향락을 누릴 수 있는 놀이의 공간. 산책하며 사유를 즐길 수 있는 열려 있으면서도 간직된 공간. 처음에는 미적,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던 정원은 근대에 이를수록 기능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먹을 작물을 기르는 지극한 일상의 터가 되기도 하고, 도시가 생겨난 후에는 도시 환경을 가꾸는 공공의 장소로 변화한다. 그러니까 정원은 점차 신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안온함을 좇아야 하는 곳이 신에서부터 일상의 일부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을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로운 역사였다.

 

 

일반적으로 정원은 즐거움을 위한 장소로 인식된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소리, 향기를 통해 감각에 어필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인간의 지식을 가다듬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 p. 406 「선악의 정원」 중에서

 


상징과 맥락을 따라 구획한 땅을 덮은 꽃과 풀잎, 주변을 꾸미는 장식물과 조각상이 정갈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이미 그 자체로 평온한 순간을 그리게 한다. 그 장면을 두고 나쁜 일을 떠올리는 건 왠지 쉽지 않다. 자연과 생명체들의 작은 뒤척임이 들려오는 그곳에 머무는 걸 잠시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런 감각과 사유의 향연 덕분일까. 『예술의 정원』 속 작품 수를 보면 알 수 있듯, 정원은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겐 쉼이 되었을 것이고 시적인 사유를 만끽해볼 만한 산책길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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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가르느레, 말메종 호수 풍경, 19세기 초,

말메종과부아 프레오성 국립 박물관.

18세기 말 황후 조세핀 보나파르트가 가꾼 말메종 정원은

유럽 풍경식 정원의 가장 뛰어난 예 중 하나다.

 

 

그 즐거움의 출처를 고민해보자면, 자연과 함께할 때 활짝 열리는 다채로운 감각들이 절로 떠오른다. 옛사람들의 정원을 그들의 마음으로 당장 동일하게 느껴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평화로운 자연 속에 놓일 때 느껴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안온한 감각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자연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마음들이란. 나도 가지고 있는 이런 단서들은 정원을 만들고 한 순간도 시들지 않게 가꾸면서까지 간직하려는 마음이 그런 맥락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보게 한다. 사실 오늘날에도 화분부터 식물로 작은 정원까지 자연물을 가꾼 모습들을 곳곳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좋은 마음과 느낌 갖게 하는 세계란 걸 그런 흔적들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몇 가지 기억과 함께 자연이 얼마나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거란 결론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가장 큰 단위로서의 화분, 가장 작은 단위로서의 세계이자 낙원으로 느껴지는 정원의 이야기는 그런 마음들을 그려보게 했다.

 

 

모든 문명과 시대는 태초의 풍요로움과 행복에 대해 저마다의 관념을 갖고 있다. 축복의 시대, 황금시대, 낙원, 그 어떤 정원의 개념이든 동일한 점은 고요함과 조화로움이 지배하는 장소와 시간이라는 점이다. (...) 황금시대나 기독교적 낙원을 상실한 후, 우리는 보다 나은 시대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를 정원에서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정원은 ‘행복한 장소’, ‘세속과 시간에서 벗어난 장소’로서 이상향을 그린 최초의 예이다.

 

- pp. 450~451 「황금시대의 정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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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도 작품도 많은 『예술의 정원』은 꽤 묵직하다.


 

정원을 짓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그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행복을 엿보는 과정이었다. 자연물을 인간의 영역으로 데려온 역사는 곧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역사이기도 했다. 예술 작품으로 살피는 정원의 역사는 자연과 함께 사람과 예술 그리고 역사를 간직하고 가꾸고 향유하며 기록해온 형태의 역사였다. 그래서 담담하고 섬세한 해석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백과사전 같은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주 깊고 거창할 것 없이 다채로운 예술 작품과 함께 정원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구석구석 살피는 즐거움 또한 있던 책이었다. 정원이라는 특별한 관점으로 당대 예술과 역사를 살피며 사유해볼 수 있는 『예술의 정원』을 한 번쯤은 만나보아도 좋을 것 같다.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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