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친 당신에게 선물하고픈, 도서 '마음챙김 미술관'

20가지 키워드로 읽는 그림 치유의 시간
글 입력 2022.03.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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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정신없는 세상이다.

 

소셜미디어 채널을 클릭하는 순간. 맞춤화된 알고리즘에 의해 정신을 쏙 빼놓는 가십거리들과 흥미로운 정보들이 '날아다닌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에 들 때까지 어느 장단에 맞추어 집중을 해야할 지 모를 때, 그제서야 내 마음을 온전히 챙기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되새기는 마음챙김을 하는 방법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하는 '노력'은 별개의 문제다. 여기, 마음챙김을 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내미는 한 책이 있다. 도서 <마음챙김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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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미술관' 또는 '미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각자의 경험과 감상에 의해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미술 작품 애호가가 아니라면 "지루하다", "어렵다",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나오기 일쑤다. 사실 필자도 그랬다. 미술은 독창적인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만의 것,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으니 그저 '보는 것'으로만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미술의 의미는 사뭇 달랐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은 바로, 우리의 '지금'과 '현재'를 빗대어 해설할 수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단지 일이 백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느낀 기쁨과 슬픔, 행복, 자존감, 만족감, 자기비하, 우울감, 불안, 트라우마, 자기신뢰, 삶의 균형들과 같은 요소들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데칼코마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곧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무수히 많은 감정과 태도들, 때로는 인정하기 싫을 만큼 구차하고 찌질한 면모까지도 작품은 모두 감싸안아준다. 이미 오랜 시간 전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앞서서 그 모든 감정과 경험의 스펙트럼을 생생히 겪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20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마음을 치유해준다. 삶의 이유, 감정의 선택, 기회 비용, 사회적 시선, 현실적 고민, 익숙함, 사회적 가면, 열등감, 갈등, 인정욕구, 실존, 생득적 자기파괴, 트라우마, 부정적 자기대화, 불안, 만족감, 미봉책, 관점, 자기신뢰, 삶의 균형. 이 20가지의 가치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느껴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마음챙김 미술관>을 접하는 허들을 가뿐히 넘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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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레벤망>, 1866

 

 

<마음챙김 미술관>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꼭 필요한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꼭 찾고, 그것을 음미하기를 간절히 권한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 그것을 음미하며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필자는 다양한 키워드 중에서도 "인정 욕구"에 주목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는 21세기가 최초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키워드의 생명력이 두드러져 보인 것일까. 시공간의 제약없이 연결된 온라인 채널망을 통해 자신의 인정 욕구를 시시각각 드러내고 채우고자 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불특정 다수, 즉 남에게서 찾는 나의 가치는 때때로 '좋아요' 수나 '조회수' 또는 '팔로워'로 환원되며, 이것의 정량적인 수치로 인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오가며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사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임을 고백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브런치, 그리고 이곳 아트인사이트에서까지 나의 영향력과 생각, 경험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정욕구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정하고,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로 선택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때때로 비교를 통해서 발전의 기회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적으로는 남과의 비교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인정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 목표이지 않을까.

 

21세기의 인정 욕구와 빗대어 볼 때 먼 옛날 크나큰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자 발버둥친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폴 세잔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과 함께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3대 화가로 손꼽혔지만, 살아생전 그는 대중 그리고 부모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세잔은, 그의 생애에서는 비운의 화가였던 것이다.

 

고지식하고 완고한 세잔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은행을 물려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의 뜻을 그대로 이어가지 않고, 그림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추구했던 세잔의 가능성과 열망을 무시했다. 위의 그림 <레벤망>은 세잔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 속의 벽에 걸린 정물화는 세잔 본인이 그린 것으로서, 아버지가 그의 그림을 방의 벽에 걸어둘 정도로 인정해주기를 그는 강렬히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세잔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그는 스스로 고립된 채 진리를 파악하고자 열과 성을 다했다. 마침내 그는 그 당시 세상을 지배했던 위대한 예술작품의 프레임을 부숴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신화 속 인물이나 영웅, 혹은 귀족이나 왕의 초상화를 그렸던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세잔은 구성과 연출이 자유로운 '정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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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900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세잔은 기하학적인 기본 형태로부터 세상의 원리를 파악하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갖추게 됐다. 그는 정물을, 그중에서도 수많은 사과를 그렸다. 이윽고 아래에서 올려다본 사과, 옆에서 본 사과, 위에서 내려다본 사과 등 다각도의 시선을 한 그림에 모두 담는 혁신적인 시도에 성공한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한 세잔은 자신의 초상화, 부인, 아들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세잔은 대상의 근본적인 원리인 입체적인 동그라미인 구, 원기둥, 그리고 육면체라는 기본 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꾸준히 내었다. 세잔의 이러한 혁신은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비록 세잔은 살아생전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떠난 다음 해인 1907년에 피카소가 발표한 첫 입체주의 전시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유명한 피카소는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폴 세잔"이었다고 말하며, 지금 세잔의 사과는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4대 사과(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빌헬름의 사과와 함께)라 불린다.

 

세잔의 삶으로부터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긍정하고 아껴주는 자기긍정과 충족감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있는 무언가로 빛날 수 있으니까. 동서양을 넘나드는 공자의 명언인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의 의미를 여기서 재발견할 수 있겠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남보다 뛰어난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진정한 자랑거리는 과거의 자신보다 뛰어난 자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과거의 나 자신이고, 그보다 발전한 현재를 칭찬하고 바라봐야 한다. 도달하지 못할 이상적 대상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필요한 자기비하감을 만들어낼 뿐이다.

 

인정받지 못한 마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면, 자신이 그동안 외면했던 스스로의 장점을 하나씩 적어보자.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약점이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비장한 무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세잔은 결국 사과를 통해 이를 증명해 냈다. 우리가 사용해야 할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기이다.

 

<마음챙김 미술관> p.134 중에서

 

 

그렇다.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잔의 그림이 결국 후대에 가서는 입체주의를 이끈 선구자로 알려진 것처럼, 세잔 자신이 내린 정의와는 달리 세상은 불확실한 속도와 시간으로 응답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가치, 또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오로지 가장 먼저 스스로의 긍정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누군가의 손길과 위로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타인에게 기대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본 사람은 다름아닌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마음챙김 미술관>에서는 시대와 사상을 막론하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의 애환과 경험을 통해, 치열한 삶의 흔적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차와 함께 <마음챙김 미술관>을 음미할 수 있기를. 당신의 지친 마음에 닿아 위로가 되는 시간이 빚어지기를 잔잔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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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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