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년 전 여행 갔던 베르사유를 이제야 이해했다는 책 리뷰 - 예술의 정원 [도서]

내가 다녀온 곳은 한 권력자의 시기질투로 시작된 곳이었다.
글 입력 2022.03.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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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de Versailles, Pierre Patel, 1668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가본 적이 있다. 내 평생 이곳에 올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럼에도 나의 관람태도는 그닥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저 인파에 휩쓸려 웅장한 방들을 돌아다니며 우와, 번쩍번쩍, 우와- 정도의 감탄사만 내뱉었다.


궁전을 나가자 광활히 펼쳐진 베르사유 정원이 나왔다. 지평선까지 닿을 것 같은 넓은 평야, 가지런히 가지치기 당한 수백 그루의 나무들, 곳곳이 세워져있는 하얀 상아조각상들. 정원에서의 내 태도는 어땠느냐. 별 다를 것도, 별 다를 수도 없었다. 역시 또 우와, 엄청 넓다, 우와-! 했을 뿐. 자전거를 빌려 공원 구석구석을 쌩쌩 달렸다. 크고, 푸르고, 시원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유럽여행 3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알게 됐다. 권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루이 14세의 애욕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그 산물로 피어난 베르사유 정원이 얼마나 세심한 디테일과 기막힌 비하인드를 갖고 있는지 말이다.


오늘은 평범한 산책길이 아닌 명예와 예술로서의 정원을 알려준 책, 『예술의 정원』을 읽어봤다.

 

 

[표지 평면] 예술의 정원.jpg

 

 

『예술의 정원』은 그간 다소 등한시 되었던, 하지만 미술과 언제나 함께 발전해 온 ‘정원garden’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정원은 한 시대를 표현하는 예술이자 권력자의 역사를 반영하며, 예술가의 글이나 그림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도상학 전문가인 저자 루시아 임펠루소는 300가지가 넘는 서양 미술 회화를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정원의 의미를 해석한다. 정원이 인간 사회와 예술사에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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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비콩트 성 공식 홈페이지



앞머리에 나왔던 베르사유 정원부터 살펴보자. 놀랍게도 이 정원은 시기와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1656년, 루이 14세의 재무상이었던 니콜라스 푸케는 광대한 정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투시 조망 효과를 중점에 둔 최초의 정원이었던 ‘보르비콩트’는 궁전에서 정원을 바라볼 때의 길고 넓은 대지를 강조했다.

 

널찍한 땅 면적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심지어 푸케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세운다. 넘치는 힘을 상징하는 이 신화 속 영웅은 그의 위대한 권력과 정치적 성취, 문화·예술 후원자로서의 위엄까지 나타내려 한 것이었다.


루이 14세는 이를 왕의 막강한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 받아들인다. 1661년, 정원을 완성한 기념으로 왕을 초대해 사치스런 연회를 부린 바람에 결국 그의 질투를 유발한다. 왕은 그를 위해 준비된 호사스런 침실을 마다하고 바로 본인의 성으로 돌아간 뒤, 다음날 바로 푸케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다.

 

결국 푸케는 18일 만에 체포되었고 전 재산을 몰수당한 뒤 남은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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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 공식 홈페이지

 

 

그 후 탄생한 정원이 바로 베르사유다. 보르비콩트의 설계사 앙드레 르 노트르를 그대로 불러 공사를 맡겼다. 때문에 베르사유는 투시 조망 효과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르비콩트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궁전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루이 14세의 엠블럼인 태양 심벌이 펼쳐지며 웅장함을 선사한다. 푸케의 헤라클레스를 비꼬는 듯 그보다 더 막강한 태양의 신 아폴로 상이 중앙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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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eremy Bezanger on Unsplash


 

한편 ‘나름’ 베르사유 정원을 갔다와본 사람으로서 떠올려보자면, 압도적인 면적 외에도 인상 깊었던 건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나무들과 조각상들이었다. 현대미술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것이 묘하게 섞인 풍경이었다.


책은 마침 이 궁금증을 잘 풀어준다. 『예술의 정원』 6장에선 정원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동굴, 화분, 식물 울타리 등 정원에 배치된 것들이 각각 무엇을 내포하는지 말해준다.


책에 따르면 내가 본 나무들은 ‘토피어리topiary’였다. 수목을 예술적으로 다듬는 양식이며, 베르사유 정원이 지어졌던 바로크 시대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길들이고 변형을 가한 것’이란 뜻처럼 자연, 그리고 세상을 ‘길들이고 다스리겠다는’ 왕의 포부와 잘 맞아 떨어지는 구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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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 공식 홈페이지

 


‘조각물statues’는 이미 역사가 깊은 정원 조형물이었다.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으로서 은유와 상징을 가득 내포한 매개체였다.

 

베르사유 정원에 있는 많은 신화적 조각들은 모두 태양을 암시한다. 정원 중앙에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분수 속 우뚝 선 태양의 신 아폴로, 그리고 주변에 널린 태양을 뜻하는 조각물들.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던 그것들이 모두 루이 14세의 태양에 대한 열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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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janeb13 from Pixabay


 

베르사유 정원엔 유달리 햇빛을 피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두 눈을 감은 채 잔뜩 찡그리거나, 그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냅다 양산을 뒤집어쓴 한국인의 사진만 남았다. 나와 달리 루이 14세는 그 태양빛을 온몸으로 만끽했을 것이다. 햇볕이 가득 내리쬈던 정원은 모두 태양광신도(?)였던 어떤 왕의 다분한 의도가 담긴 작품이었다. 세상을 길들이고 말겠다는 막강한 권력욕과 함께 말이다.


서양 회화 속 정원의 매력은 그것이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머물고자 했는지를 살펴보면 당시의 다양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는 조용히 휴식하고자 했고, 누군가는 성대한 연회를 벌려 인맥을 구축했으며, 누군가는 힘을 과시하는 도구로 쓰고자 했다.


또 오랜 역사를 가진 정원들 몇 군데는 지금도 직접 여행할 수 있다. 마치 내가 베르사유 잠시 갔다 온 걸로 이렇게 우려먹는 것처럼. 책으로 접했던 정원을 직접 가서 둘러볼 때 얼마나 풍족한 관광이 될지,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덕분에, 난 이제야 베르사유 정원을 제대로 다녀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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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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