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굳이 진부하자면 [음악]

사실 특별해서 주저한 걸지도.
글 입력 2022.03.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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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진부하자면.jpg


 

‘사랑’. 가장 보편적인 감정인만큼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이 거리마다 널려있다.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느와르 영화에도,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고딕으로 새겨진 응원 시에도 사랑이 있다.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속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는 몇 곡인가. 혹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노래는 얼마나 되는가.

 

아마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닿는 곳마다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 보편적이라 진부해졌다. 나는그렇게 느꼈다.

 

나는 사랑할 때도 사랑한다고 말했고, 미지근한 온도일 때도 곧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못내 좋아서 감추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새어 나오기도 했고, 때론 꾸며낸 마음이었지만, 어쨌거나 무릎반사 같이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다 문득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언어가 힘을 잃었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넘실거리던 마음의 파도가 집채만 한 모습이 되어 그대로 <사랑>에 흠뻑 적셔졌는데, ‘사랑한다’는 말로는 이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사랑을 표현하던 ‘사랑 사용자’가 뒤늦은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자주 쓴 탓에 너무 진부해져버린 게 문제였다.

 

또 이런 마음도 있었다.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해’라는 말보다 다른 말이 하고 싶었다. 고르고 골라 빛나고 고운 입자만, 특별하고 로맨틱한 말만 해주고싶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입을 달싹이다 멈추길 여러 번, 타자를 치다가도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러대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배회하기 일쑤였다.


 

 

사실 특별해서 주저한 걸지도, 벌써 진부하다




 

친구들이 그래

네 가사는 너무 어려워

그건 나도 알아

진부한 말들을

굳이 하기는 싫었어

그냥 그랬어

뭔가 특별하게 말 하고 싶었어

편지 한 장도 종일 쓰는 걸

사실 특별해서 주저한 걸지도

벌써 진부하다

 

 

알라리깡숑의 <굳이 진부하자면> 가사 중 일부다. 나는 이 노래를 듣고 무척 놀랐다. 기시감 때문이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특별한 말을 하고 싶어 편지 한 장도 종일 쓰는 화자는 어떤 말을 건넬까.

 

사실 제목이 <굳이 진부하자면>이기에 화자는 결국, 진부하지만 가장 또렷한 말로 마음을 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벌써 진부하다’ 뒤에 나오는 가사는‘사랑해 널’. 화자는 사랑을 잘개 쪼개어 발음하고 있었다.

 

이렇게 1절이 끝났을 때, 이전까지의 생각이 완벽히 뒤집혔다. 특별한 마음을 특별한 언어로 담고 싶다던 화자는 결국 어느 때보다 진부한 말을 한다. 그러나 난 이 말이 진부하다기보단, 담백하게 와 닿았다. 가장 내밀한 부분을 기꺼이 드러내는 화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굳이 진부하자면, 사랑해 널



 

눈을 감아봐

여긴 그때 그 다리야

넌 어딘지 알겠지

눈을 한번 떠봐

여긴 우리의 거리야

자주 커피를 사 마시던

뭔가 특별하던 일들만 우리의

 

눈을 감아봐 

눈을 감아봐사진첩 속에 둘 순 없는 걸

 

 

특별함을 찾아 헤매던 화자는 지금 특별하던 일만 간직할 순 없다고 말한다. 언젠가 걷던 거리와 자주 커피를 사 마시던 거리. 색다를 건 없다. 눈을감고 뜰 때마다 순식간에 뒤바뀌는 장소와 추억 속에서 바뀌지 않는 건 함께하고 있는 ‘너’다.

 

사실 특별한 건, 이것뿐이다.


 

사실 특별한 건 아 글쎄 그거 있잖아

굳이 진부하자면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을 몇 번이나 되뇌는 화자. 진부함을 꺼리던 화자가 ‘굳이’ 진부해진 순간이다. 동시에 진부한 말은 가장 특별해진다.

 

혹여 나와 같은 이유로 사랑을 발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은 굳이 진부해보기를.


 


에디터 태그_권수현.jpg

 


[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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