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 다니엘 블레이크 : 효율과 맞바꾼 인간적인 대우 [영화]

현대 복지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다
글 입력 2022.03.07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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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6년도에 개봉한 영화다. 그만큼 비교적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잘 정비된 현대 복지 제도 내부의 모순과 오류를 짚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라기엔 어떤 극적 요소도, 희망적인 레퍼토리도 없다.


영화의 제목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지만 이 영화에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심장병을 앓아 직업을 구할 수 없는 목수 다니엘과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 케이티이다. 40년 경력의 목수인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복지부에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지급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반려된다.

 

어쩔 수 없이 실업수당을 신청하고 일자리를 구했지만, 역시나 건강 때문에 일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연필과 톱질이 익숙한 다니엘에게 복지부는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증명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확인하기를 요구한다. 결국 다니엘은 실업수당마저도 끊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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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역시 심사에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조금이 끊기고 제재 대상으로 전락한다. 복지 제도는 그들에게는 당장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빼앗아 버린다. 억울한 상황에 대해 항의해도 규정을 내세울 뿐이며 정식으로 항고하기 위한 절차도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행정 체계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포용하는 데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피폐한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한다. 다니엘은 손수 모빌을 만들고 책장을 만들어 케이티와 딸 데이지에게 선물한다. 집중력 장애가 있는 딜런과는 진정 어린 대화로 새로운 모습을 찾아 준다.

 

다니엘은 살아온 경험으로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된다. 그의 재주는 손보다 컴퓨터 마우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 시대에서 눈에 띄지 않는 능력일 수 있지만 그 어떤 복지 체계도 해결해 줄 수 없었던 부분을 채워 준다.

 

케이티는 다니엘의 질병수당 자격심사 항고일에도 그와 동행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심의위원 면담을 앞두고 대기하던 중 화장실에 갔다가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허무하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영화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못한 채 끝을 맺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케이티는 그의 항고 입장문을 마치 유언처럼 장례식에서 낭독한다.

 

그의 글은 단순히 항고만을 위한 글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의 말년에서 항고란 남은 일생을 건 최후의 희망이었다. 동시에 항고 심사장을 넘어선,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며 그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효율이 과연 인간다운 대우와 맞바꿀 만한 가치를 지니는 걸까.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지나친 효율을 추구한 결과 그 이면을 보아야 한다. 모두를 배려하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복지의 본목적이 모두의 인간다운 삶임을 떠올린다면 그렇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에 더이상 공감할 수 없는 날이 머지 않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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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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