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NFP의 고백 [사람]

MBTI로 알아본 나의 특성
글 입력 2022.02.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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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옛날엔 혈액형이었던가, 요즘은 자기소개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이 MBTI다. 나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MBTI가 매우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묻기 전에 대강 추측해 본다. 고작 8개의 알파벳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머리를 열심히 굴려본다. 결국 조심스레 던진 질문에 예상했던 MBTI가 답으로 돌아오면 '역시!'하며 오만함을 내세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사람을 고작 16가지 성향으로 나눈다고? 이런 테스트에 나를 정의 내리지 않겠다는 각오와 달리 누구보다 신중하게, 열심히 테스트 항목을 체크한 나는 ‘ENFP-A’다. ‘재기발랄한 활동가’라는 한 줄의 문구와 함께, 웃으며 어딘가로 떠나는 모양새를 취한 캐릭터를 보자마자 이마를 탁 쳤다.

‘이럴수가.. 완전 나잖아.'

 

 

 

F가 100인 사람


  

나는 가끔씩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나곤 하는데,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이 남들보다 낮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렇다고 눈물만 나는 건 아니고, 같은 것을 봐도 남들보다 조금 더 오버스럽게 감탄사를 외치는 것도 포인트로 꼽아볼 수 있겠다. 이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MBTI의 'F'를 내세웠고,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러니까, MBTI 덕분에 내 감정 표현은 이해받을 수 있었다.

 

속눈썹에 물방울이 송골 송골 맺혔다. 그만큼 추운 겨울날, 대중교통 이용보다 걷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얼어버린 손을 주머니 안에서 열심히 꼼지락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이 정도 날씨면 그냥 지하철 타지, 스스로의 똥고집에 박수를 보내려던 찰나, 차가운 감촉이 볼에 닿았다. 10m 남짓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에만 닿아있던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눈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얼음 결정 같은 것들이 찬찬히 얼굴에 내려앉았다.

 

눈을 좀 더 감상하려고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는데, 하필 횟집 앞이었고, 이런 낭만적인 순간에 물 비린내 같은 것이 코를 찔렀다. 횟집 간판의 쨍한 불빛이 천천히 떨어지는 눈을 밝혔다. 너무 미세해서 잘 안 보이던 눈의 움직임이 명확하게 보였다. 나는 빛을 타고 흩날리는 눈발이 아름다워 눈물이 찔끔 났다. 귀에서는 좋아하는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나오고 있었고, 코 부근에는 생선 비린내가 머물렀다.

 

횟집 앞에서 눈을 보며 약간 울었다는 소식은 친구들에게 놀림거리로 남았다. 친구는 '나는 원래 그런 순간엔 눈물이 나'라는 구구절절한 낭만을 '짰다'라는 말로 퉁쳤고, 머쓱해하는 나에게 정말 너답다,라며 신기한 눈빛을 던졌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쭉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런 걸 감정이라 표현해야 할지 감성이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헷갈릴 때가 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라는 마음으로 일렁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이따금씩, 나는 곳곳에 숨어있는 낭만을 들춰보며 이성으로 구별되는 딱딱한 순간들도 물렁함의 빈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 존재하는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모르는데 우리는 꽤나 자주 눈을 가린 채 살아간다.

 

 


'보통'의 매력


 

나의 친한 친구 S는 나와 같은 ENFP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슷한 구석이 참 많았다. 내가 행복해할 때 S도 함께 행복해했고, 내가 슬퍼할 때 S도 함께 슬픔을 느꼈다. 서로에게 공감해 준다기보다는, 그냥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구간이 같았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S와 내가 동시에 같은 말을 뱉기도 해서 (나 혼자) 신기해할 때도 많았다.

 

같은 MBTI가 나오면서, 너랑 나랑은 마치 동기화를 한 듯 똑같다며 호들갑 떠는 나를 하찮게 바라보던 S에게 드디어 의기양양해질 수 있었다. 이건 증명된 거라며.

언젠가 S와 통화할 때였다.

 

“근데 나는 ENFP 말고 다른 MBTI가 되고 싶어.”
“왜?”
“ENFP는 너무 흔한 것 같아. 여기서 알파벳 하나만 바뀌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근데 그거 알아? 자기 MBTI가 흔해서 싫다는 유형도 ENFP밖에 없대.”

 

나와 S는 깔깔 웃어 젖혔다. 그러면서 MBTI는 과학이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은연중에 평범해지는 것을 거부하며 지내왔다. 어렸을 때부터 어딜 가나 튀고 싶어 했고,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크면서 그런 사람을 '관종'이라 칭했는데, 현재의 나는 '관종' 앞에 '조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얼추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만큼 그렇게 남의 관심을 즐기지는 않으니 말이다.

 

언젠가 살아오며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른이 될수록 평범한 것을 추구한다고. 그렇게 못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잘나기엔 부담스럽고, 어느 정도 무난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 있다. 무언가에 치여 벅차다고 허덕거릴 때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삭막한 위로에 약간의 위안을 얻다가도,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을 거라 여전히 스스로에게 희망을 거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 굳이 한 가지만 택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무난함이 가진 매력을 어루만져 본다. 사실 이 모든 게 '보통'의 대열에 들어서는 일련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계획도 계획이다


 

3년 전 개봉했던 영화 '기생충'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엔 살짝 모자라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 한 장면을 꼽자면, 배우 송강호가 아들 역할을 맡았던 최우식 배우에게 명대사를 날리는 장면이다.

 

"무계획도 계획이다"

 

아, 이거다. 오랫동안 즉흥적으로 살아온 나의 계획 없는 성격이 '있어 보이는 한 마디'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ENFP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즉흥'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부분의 ENFP들을 대변하자면, 나름의 계획은 있으나 J성향의 사람들에 비하면 이건 계획도 아니게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 핑계를 대자면 계획이 없진 않으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동해도 상관없다는 거다.

 

앞에서 얘기한 내 친구 S를 만날 때면, 그날 하루 우리의 모든 일정은 즉흥 그 자체다. 만나기 직전까지 무엇을 먹고 어느 카페를 갈지 정확하게 결정 내리지 않는 우리는 일단 만나서 정해,라는 말로 또 한 번 선택을 미룬다. J 성향의 사람들은 답답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입장을 취한다.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어떻게 계획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어릴 적 나는 지금은 다이어리라는 것에 그나마 계획을 끄적여본다. 삶이 어떻게 흘러 갈진 모르지만 큰 물줄기는 잡아보겠다는 나름의 의지를 돋보인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마음대로 희망하고,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바라며, 긍정을 추켜세운다. 그러면서 약간의 '무계획'도 계획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빈칸을 둔다. 이 빈칸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찾아와 채워지길 바라며, 즉흥과 계획 사이를 뛰어넘을 태세를 갖춘다. 늘 그래왔듯.

 

 

  

최유정.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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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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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글이 너무 좋아요 비유도 너무 좋고 한마디 한마디가 먼가 울렁울렁하게 하네욤.. 오늘도 잘봤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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