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아무거나 만들어보자, 뭐든 상관없으니!" - 지역 문화콘텐츠 창작팀 화수분제작소

글 입력 2022.02.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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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 직원분이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펀딩 사이트에서 펀딩도 한다고 했다. 어디서 뭘 하시는 거냐고 여쭤보니, ‘화수분제작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게 화수분제작소와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보드게임을 만드는 팀인가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집이 펀딩 사이트에 올라왔다.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독서모임도, 시 쓰는 모임도 진행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는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데 익숙했던 나는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진짜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팀명인 ‘화수분제작소’는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나온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화수분제작소는 2018년에 시작된 이후 보드게임 ‘모던인천’ 제작을 비롯해 여러 모임과 인터뷰 등 꾸준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화수분제작소를 한두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정해진 경계선 없이 뭐든 한번 시도해보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맞게 유연하게 변하는 것이야말로 화수분제작소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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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방' 운영 회의 중인 화수분제작소(사진: 윤자형)

 


2022년을 맞아 화수분제작소는 또 어떤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지난 2월 14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화수분제작소 사무실에서 화수분제작소 팀의 윤자형, 김현우님을 만났다.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곳, 화수분제작소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윤자형(이하 ‘윤’): 안녕하세요, 저는 화수분제작소의 윤자형입니다.

 

김현우(이하 ‘김’): 저는 김현우입니다.


윤: 저희 둘 말고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있지만 오늘은 주 기획자 두 명만 인터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화수분제작소 홈페이지 소개글에 따르면 ‘지역 문화콘텐츠 창작팀’이라고 나와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보면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보드게임도 만들고, 모임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화수분제작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김: ‘화수분제작소의 주력 아이템은 이거다’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 우리가 해보고 싶은 걸 하는 방식으로 굴러가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얘기가 나오면 “해보자!” 하는 식이죠. 이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지만 앞으로는 더 뚜렷한 정체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럼 화수분제작소의 시작은 어땠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윤: 2018년 어느 날 세 사람(김현우, 전민지, 윤자형)이 모여서 “아무거나 만들어보자, 뭐든지 상관없으니!”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다가 보드게임을 만들자는 결정을 했어요. 그게 화수분제작소의 시작이었죠.


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때, 우연히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기획단체에게 공간과 약간의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사업 공고를 발견했어요. 그걸 보고 자형과 민지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인천 근대사를 테마로 하는 보드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하고 거의 즉흥적으로 기획안을 냈죠.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진짜로 보드게임을 만들게 되었고, 그게 화수분제작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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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제작소의 첫 프로젝트인 보드게임 '모던인천'

 


왜 하필 보드게임이었나요?


윤: 저희 셋 다 책이 가장 익숙한 매체이다 보니 처음에는 책을 만들까 했어요. 인천 소상공인 인터뷰집 같은 거요. 그런데 책 말고 다른 걸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그렇게 보드게임을 만들게 되었죠.


화수분제작소의 첫 프로젝트인 보드게임도 인천 근대사를 테마로 하고 있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사무실도 인천에 있습니다. 특별히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유가 있나요?


김: 일단 당시 제가 인천 시민이었던 데다가, 우연히 인천문화재단 지원사업 공고를 발견했던 게 컸어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얻은 작업실도 처음에는 구월동, 나중에는 동인천에 있었어요. 그렇게 한번 인천문화재단과 연을 맺고 나니 계속 인천과 관련된 걸 하게 되더라고요. 2020년에 자형님이 아예 동인천으로 이사했고, 2021년에는 서구 석남동에 오프라인 화수분제작소를 열면서 지금은 이곳에 정착했어요.


보드게임을 만들면서, 또 인천에 사무실을 얻고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인천의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윤: 동인천에는 청나라, 일본, 그 외 각국 조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근대 인천이 얼마나 복잡하고 활기찬 곳이었을지 상상해보면 참 재미있더라고요. 동인천은 지금도 근처에  산업시설이나 항구가 많아서 근대 느낌이 확 나요. 그게 저에게는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김: 보드게임 이름이 ‘모던인천’인데 왜 굳이 게임 이름에 ‘인천’을 붙였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모던 경성’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졌을 것 같다고...(웃음) ‘마계인천’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인천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미지나 선입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 여기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인천은 매력적인 도시예요. 젊은 예술가나 기획자들이 인천에서 재미있는 것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남는 건 인연이에요": 화수분 제작소가 일하는 방식



‘모던인천’에서 시작해 지난 3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오셨는데,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를 몇 가지를 소개해주세요.


윤: 작년에는 ‘아포칼립스 도서관’, ‘일상화방’, ‘시작다방’ 등을 기획했습니다. 모두 인천문화재단이나 지역문화진흥원 등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돈 걱정 없이 진행할 수 있었어요.


‘아포칼립스 도서관’은 2019년에 진행했던 ‘비블리오 배틀: 당신의 서재를 들려주세요’의 후속편이에요. 일종의 독서모임인데, 책을 다 읽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 아니라 자기가 가져온 책을 청중에게 소개해주고, 그날 주제에 맞는 인디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도 감상하는 모임이에요. 줌(Zoom)으로 모여서 ‘질병’, ‘양극화’, ‘기후변화’, ‘전쟁’, ‘아노미’를 주제로 한 책을 이야기했고, 마지막에는 오프라인으로 ‘어떤 미래’라는 번외편 모임도 가졌어요.


‘일상화방’은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어요. 이왕 그리는 거 공간도 있겠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려보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습니다. 모임을 이끌어줄 작가들(전민지, 임민정)을 섭외하고, 사람들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프로젝트의 참여한 분들의 그림을 모아 엽서책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김: ‘시작다방’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20, 30대 참여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를 쓰는 프로젝트였어요.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는 모임을 떠올렸지만 짧은 시간에 자기 경험을 응축해서 드러내기에 시가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립출판인이자 니들펠트 공예가인 김가지 작가가 매회 시작다방을 편안하게 이끌어주셨고, 참여자들의 시를 모아서 시집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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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제작소에서 만든 책들: 왼쪽부터 30대 여성 프리랜서 인터뷰집 『티끌 모아 티끌처럼 살기』, '시작다방'의 『결국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아름답기를』, '일상화방'의 엽서책

 

 


그럼 지금까지 진행해오셨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도요.


윤: 화수분제작소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항상 사람들과의 인연이 생기는데, ‘시작다방’은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기억에 남아요. 젊은 사람이 적은 지역이다 보니 가끔 귀촌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시작다방을 하는 날에는 20대, 30대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좋았어요. 그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신 시간이 뜻깊었어요.


김: 여성 프리랜서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펴낸 책, 『티끌 모아 티끌처럼 살기』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제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때였는데 혼자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정말 힘들던 시기에 인터뷰를 하러 다니며 많이 배웠고 용기도 얻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른 인터뷰 일을 얻기도 했고요.


말씀해주신 프로젝트들을 보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진행하게 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기획서를 쓰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윤: 저희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기획이 아니면 선정되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좀 부족해 보여도 ‘우리에게 이런 게 필요하다!’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한 기획이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평상시 어떤 루틴으로 일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김: 지금까지 말씀드린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공공기관의 지원사업 일정에 따라 이루어졌어요. 연초에 지원사업 공고를 살펴보며 우리가 할 만한 걸 찾고, 기획서를 써서 내요. 기획서가 선정되면 그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진행하고, 연말에 정산을 하죠. 그밖에도 저희가 지금까지 해온 프로젝트를 보고 어떤 프로그램을 같이 기획하자, 진행하자며 연락을 해오는 분들이 계시면 함께하기도 해요.


윤: 주 수입원은 번역이나 편집, 인터뷰 등 외주 작업입니다. 이런 일들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니까, 일거리가 생기면 열심히 하고 없으면 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상상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놀아요.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하시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윤: 작업실이 생기면 아주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싶었는데 지인이신 목수 선생님이 3.6미터가 넘는 이 긴 테이블을 만들어주셨어요. 여기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차도 마실 수 있으니 ‘시작다방’, ‘일상화방’ 같은 것을 기획하게 됐죠. 홍보할 땐 인스타그램도 사용하지만 당근마켓이나 네이버 동네모임을 통해서도 알리고, 지나가는 주민들이 볼 수 있게 포스터도 붙여둬요. 당근마켓과 네이버 홍보는 주민들을 모으는 데는 효과가 은근히 좋습니다.

 

 

 

“여기서만큼은 시키지 않는 일을 하고 싶어요”


 

화수분제작소의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씀해주시는 내용을 듣다 보니 어쩌면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자체가 화수분제작소의 방향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요.


윤: 저는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잘 견디지 못해요. 심지어 어젯밤에는 세상이 멸망하는 꿈을 꿨는데요, 누군가 와서 신에게 무슨 제사를 지내야만 한다고 계속 권고했는데 그것조차 시키는 일이라서 안 했어요. (웃음)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여기서만큼은 누가 나한테 시키지 않는 일, 좋아하는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게 지향점입니다.


김: 저도 비슷한 성향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화수분제작소를 해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화수분제작소처럼 문화예술 분야에서 무언가를 기획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팁을 준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윤: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니까, 누구나 할 수 있다? (웃음) 저희는 예술가도 아니고 문화기획자라고 명함을 내밀 만한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저 문화예술 분야의 주변에 머물면서, 창작자들의 작업이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즉 협업을 잘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 일을 이 사람이 맡아주면 좋겠다는 게 딱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김: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을 잘 만난 거 같아요. 자형님이나 민지님을 못 만났으면 화수분제작소도 없었겠죠.


마지막으로, 올해 화수분제작소에서 진행될 프로젝트 또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 일단 작년에 이어 시작다방을 열까 해요. 당장 생각하는 건 그 정도입니다. 저는 평소에 특별히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해의 계획도 달라지는 거 같아요.


윤: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프로젝트를 몇 가지 해봤으니 이제 골방에 틀어박혀서 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웃음) 올해는 새로운 보드게임도 하나 만들고 싶고,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고 싶고, 화수분제작소의 사업 모델도 구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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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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