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명히 가리켜야 하는 미래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인간 미래》 展
글 입력 2022.02.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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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면, 예술은 그 방법이 될 것이다. 예술은 진리를 끊임없이 말하고 표현하여 어느 한 굴레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를 바깥으로 꺼내어준다. 자유에 한계를 둔다면 그것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누군가를 꺼내지 못한 채 바닥날 것이기에 우리는 항상 최대의 자유를 추구한다. 예술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명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예술은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은 꺼내지 못하는 무언가를 예술은 꺼낼 수 있다. 자유의 의미가 훼손되고 감시가 늘어날 뿐인 세상에서도 기필코 자유를 진리와 이으려는 예술이 있어 우리는 결국 자유를 찾아가고 진리를 추구한다.

 

표현의 자유가 극심하게 억압되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검열이 거침없는 중국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얼굴, 아이웨이웨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도적 권리의 의미를 넘어선 개체의 생명 그 자체라고 본다. 그의 반경을 좁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예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봉쇄이며, 메시지로 채워지는 삶에 대한 훼방이다. 중국 사회를 향한 그의 일갈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며 그로 인해 짓밟히는 개체의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처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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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아이웨이웨이의 국내 최초 개인전 《아이웨이웨이: 인간 미래》가 개최되었다. 앙상해진 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외와 배제의 현실과 더불어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담론이 어느 때보다 크게 대두되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생명과 자유에 대해 논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예술은 존재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전방위로 다루며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그의 작품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미술관 곳곳에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그의 넓은 예술 세계를 한층 더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가로지르게 한다.

 

설치미술가이자 건축가, 영화감독이자 작가이기도 한 아이웨이웨이는 사진, 설치, 영상, 퍼포먼스, SNS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실의 한쪽 벽면에는 백악관, 에펠탑 등 세계의 저명한 장소를 향해 손가락 욕을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가 걸려 있다. 손가락 하나에 고고한 권위는 사라지고 우스꽝스러운 배경이 된 수많은 장소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천안문 광장이다. 30여 년 전 자유를 외치는 군중의 목소리가 무력 앞에 처참히 무너진 장소는 작가가 사활을 걸면서도 욕을 하는 이유를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사고의 진상을 은폐하는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그는 경찰에게 구타를 당한 후 연행되었고 그 현장을 셀피(selfie)로 남겼다. 강요되는 침묵에 균열을 내고 여럿의 목소리가 드나들 수 있도록 틈새를 만드는 그의 저항은 그를 소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록이자, 현대 미술이 끝내 지녀야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예술 세계는 시끌시끌하다. 전시장 한구석을 타고 올라가는 모형 게의 형상은 작가의 스튜디오가 강제로 철거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민물 게》로, 중국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화해’와 ‘민물 게’의 중국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화해를 명목 삼아 자유를 탄압하는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권력에 의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잃은 작가는 역으로 말할 수 없는 공간을 무너뜨린다. 붕괴된 경계로 인해 공간의 내부는 여실히 드러나고 더 많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개인에게 닥친 사건이지만 결코 개인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포착한 작가는 당사자이자 대변인으로서 선명한 고발의 언어로 담론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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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통념을 깨뜨리는 그의 시선에서 금기란 없다. 아이웨이웨이가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고대 도자기를 이용한 작업을 하면서부터다. 오래된 역사와 그만큼 단단한 전통을 상징하는 도자기를 그는 가차 없이 깨뜨리고 색칠한다. 대표적인 작업 《한대 도자기 떨어트리기》는 고가의 도자기를 떨어트려 깨트린 퍼포먼스를 연속적으로 찍은 사진으로, 해당 전시에서는 레고 블록을 활용한 모자이크의 형태로 전시된다. 중국의 문화에 대한 억압을 표현한 해당 작업은 새로움이라는 구실로 옛것을 파괴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깨진 도자기와 더불어 깨어지는 과정을 주목하게 하며 우리가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것을 잃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관객을 압도하는 대규모 조형물 《옥의》는 한나라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 수의를 표현한 설치 작업이다. 옥으로 만든 수의를 입으면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믿음 하에 만들어져 왕과 함께 묻힌 수의는, 그러나 왕의 시신을 지키지 못하고 홀로 남아 인간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과 허무하게 사라진 세속적 욕망만을 상징한다. 작가는 현대의 관점에서 유물을 파괴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어 과거의 흔적을 뚜렷이 남긴다. 작가의 새로움은 이러한 지점에서 탄생한다. 과거를 잊고 눈부신 현재를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기억 위에 자신의 시점만이 새길 수 있는 분명한 흔적을 덧그린다. 그리하여 작가의 메시지는 과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재를 기록한다.

 

《옥의》가 전시된 곳의 벽엔 온통 황금색 수갑과 CCTV가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다.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이라는 가변 설치 작업으로,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반짝이는 형상이나 가까이서 그 감시와 억압의 실체를 확인할 때 모골이 송연해진다. 지하에 위치한 전시실은 위층에 난 창을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는데, 마치 모서리에 있는 CCTV를 통해 시선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 공포가 한결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중국 사회의 부귀와 번영 이면에 있는 거대한 감시를 본다. 그것은 황금색으로 도색되어 개인을 둘러싼 채 일상을 파고들지만, 당연한 규칙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이상함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 전시실의 벽면 자체를 이용한 이 작업은 관람객을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그 상황 속 자신을 대면하게 하여 어떤 현실에 대한 상상을 구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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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현실들은 작가의 시야 안에 모여 구조적 문제의 증거가 된다. 전시는 그가 사회를 보는 시선을 관찰과 기록의 형태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들을 한데 배치했다. 《코로네이션》은 코로나가 시작된 중국 우한 시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당국의 부조리한 처리를 고발하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영상 작업으로, 진상 규명을 회피하는 당국과 위로금과 장례 할인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고 하는 기관의 실태를 드러낸다. 《바퀴벌레》를 통해 홍콩 시위의 잔혹한 상황을 고발하고, 《유랑하는 사람들》과 《칼레》를 통해서는 난민 문제를 이야기한다.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잘 알려지지 않는 진실의 현장을 찾아가는 작가는, 뉴스로는 잘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얼굴을 조명하여 진입조차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전시실에 갖다 놓음으로써 침묵을 깨뜨린다.

 

세계 난민 위기에 대한 작가의 유구한 관심은 미술관 곳곳에 있는 설치 작업으로도 나타난다. 복도 천장을 22.5m의 길이로 가로지르는 《구명조끼 뱀》은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를 연결해서 만든 작품이고, 공간 전체를 점유하는 《빨래방》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수집한 의류를 옷걸이에 걸어 놓아 실제 빨래방과 같은 장소를 연출한 작품이다. 작가는 난민들의 삶을 매우 사적인 생필품인 옷이라는 재료를 활용하여 재현한다. 개인의 생활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옷들을 모아 뱀처럼 생동하며 연결하는 형태로 재탄생시키고, 빨래처럼 일상적인 행위로 일으켜 세운다.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난민 개인의 인간성을 잊지 않고 상기하는 작가의 세밀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의 환경으로서 관람객에게 다가오는 작품은 난민 이슈를 뉴스 속 이야깃거리가 아닌 실재하는 역사로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Expressing oneself is a part of being human. To be deprived of a voice is to be told you are not a participant in society; ultimately it is a denial of humanity.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일부입니다. 목소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당신이 사회의 참여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부정입니다.)

 

- 아이웨이웨이

 

 

표현의 자유를 생명 그 자체로 보는 아이웨이웨이가 폭력과 위협 속에서도 목소리를 외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목소리를 빼앗기는 것을 곧 죽음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주제와 형식이 교차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예술은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된다. 침묵을 뚫고 최선을 다해 요란해지는 그의 미술 세계에서는 생명을 위한 자유, 생명을 위한 해방의 가치가 단호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잃은 모든 이에게 제공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어떤 메시지이든 강제로 침묵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일 수 있는 시대를 호명해야 한다. 그것이 전례 없는 고요를 지나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명하게 가리켜야 하는 인간의 미래다.

 

 

참고 기사


노형석, ‘뒤샹·백남준의 ‘적자’ 아이웨이웨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한겨레, 2022. 01. 20.

안진국, ‘난민 구명조끼를 보면서 ‘세월호’가 떠오른다‘, 중기이코노미, 2017. 03. 20.

오현주, ‘中 반체제예술가는 왜 모국 대신 한국에 '게'를 보냈나’, 이데일리, 2021. 12. 14.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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