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홍빛이 어루만지는 쓸쓸함, 그 아름다움 - 신모래 작가 [전시]

우리 곁에는 각자의 '우'가 존재한다
글 입력 2022.02.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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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일도, 상대방의 눈을 바로볼 일도 없어졌다. 얼굴의 반을 뒤덮는 마스크로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숨기며 사는 우리. 유일하게 드러나는 눈만이 언어를 품고 있다. 서로가 바라보는 눈동자 그사이에 많은 것이 존재한다. 미처 볼 수 없던 마음은 눈동자를 통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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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신모래 All Rights Reserved


 

마스크를 쓴 개개인이 눈을 맞춰 감정을 나누는 반면에, 신모래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의 눈동자를 공백으로 표현해 감정을 철저히 감춘다. 괄호 모양의 눈은 시선이 없기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무덤덤한 표정과 상반된 핑크와 보랏빛이 섞인 화려한 네온컬러가 인물의 감정과 생각을 대신할 뿐이다.

 

신모래는 2013년부터 활동을 이어온 1세대 일러스트 작가다. 몽환적인 핑크톤의 색감과 네온 조명의 그림은 SNS에서 큰 인기를 끌며 확고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드러나는 시각적 이미지와 상반되는 쓸쓸하고 공허한 분위기,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이미지에 관객들은 인물의 감정을 각자의 감상대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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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회화, 영상까지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 신모래 작가가 JN갤러리에서 이번 달 28일까지 8번째 개인전 '우의 버릇'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사전 모집한 400명에게 메일링 한 글을 바탕으로 풀어낸 그림을 선보인다. 소식지는 작가가 설정한 ‘우’라는 인물에 대한 조각 글로 작품의 에스키스 과정을 공유한 셈이다. 글은 텍스트 속 화자가 ‘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세 달에 걸쳐 60페이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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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신모래 작가 인스타그램 @shinmorae_

 

 

작년, 이맘때 우의 버릇 소식지가 마무리되었다. 호기심에 신청했지만, 매일 받던 안부가 사라지니 그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메일은 우의 소식지와 함께 독자들에게 안녕을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말이 전달됐다. 하루의 끝에서 우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각자의 시간이 우를 통해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허전함은 시간에 따라 점점 무뎌지고 기억 속의 ‘우’도 희미해질 때쯤 전시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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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부제이자 세컨 포스터인 ‘우의 버릇0페이지’로 시작된다. 입구에 들어서자 벽을 가득 채운 편지글이 눈에 띈다. 온라인으로 발송했던 ‘우의 버릇’ 소식지를 트레이싱지와 분홍색 용지에 인쇄해 나란히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60장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각자가 상상한 우를 만나게 된다. 페이지의 일부는 자유롭게 소장할 수 있다. 꼼꼼히 읽으며 우의 다정한 말이 적힌 종이를 몇 장 골랐다. 우에 대한 기억 한 조각을 선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우가 없이도 우를 추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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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프린트와 더불어 8점의 그림과 3점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위 4점의 그림은 우를 상징하는 사물과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제목은 시계방향으로 '이제 없는 것', '말하지 않은 것', '이상한 세 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우가 떠난 후 그의 흔적을 떠올리며 그린 것일까. 줄 이어폰과 도도도 앨범집과 가사지, 녹아서 개미가 잔뜩 모인 오렌지색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문 토스트, 시집과 익을 대로 익어버린 바나나가 우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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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모래는 작품 곳곳에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배치한다. 특유의 감성으로 빛과 그림자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곳의 바다를 영상으로 담았다. 오렌지빛 바다는 떠오르는 태양을 담은 것 같기도, 지는 노을을 담은 것 같기도 하다.

 

햇빛은 푸르른 수면에서 부서져 잔물결을 일으킨다. 빛의 정도에 따라 위치와 모양을 바꾸며 눈부시게 빛난다. 소식지에서 화자는 울고 싶을 때마다 바다를 그렸다. 그래서인지, 아름답지만 고요한 바다의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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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몇 번이고 상상했던 ‘우‘를 만나자 나도 모르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봤지만, 그대로인 옛 친구 같았다.

 

글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그림과 공간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푸른색 조명이 우의 보랏빛 머리카락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 속의 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울고 있는지 그림 속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의 감정을 마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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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메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상 '겨울의 우'다.

 

입체적으로 표현된 그림은 평면에 존재할 때보다 느껴지는 감정이 생생하다. 얼굴을 가릴 만큼 무수히 흩날리는 눈발이 우의 쓸쓸함을 더한다. 영상은 관람하는 위치에 따라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든 각각의 우를 감상할 수 있다. 모호한 표정 때문에 조명에 따라 작품의 이야기를 다르게 상상할 수 있다.

 


“제 그림은 일기장 같아요. 어디서 영감을 얻기보다 저와 가까운 것들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죠. 모호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정서는 분명하길 바라고요.”

 

- 신모래

 

 

작가는 분명하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스케치의 우울함은 다른 색을 썼을 때 더욱 도드라졌기에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몽환적인 분홍색을 작품에 전개했다고 한다.

 

시선의 끝을 알 수 없는 괄호 눈을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소식지에서 우에 대한 글을 쓰는 화자도 괄호()로 등장한다.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공백 안에 자신을 대입할 수도, 어떤 사람이 보냈을지 맘껏 상상이 가능하다.

 

*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특유의 색감이 자아내던 몽환적인 분위기에 곧장 매료됐다. 어쩐지 지쳐 보이는 인물에게서 묘한 친근감마저 느꼈다. 이후, 줄곧 내 모든 배경화면을 차지했을 만큼 쓸쓸한 분홍빛 그림을 아꼈다. 요동치는 감정에 휘둘리던 시절, 무덤덤한 표정은 차갑기보다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왔다.


우의 잔잔함이 고요한 겨울과 어울리는 전시였다. 몇 안 되는 작품이었지만, 작가의 세계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우의 그림은 메일이 마무리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작가는 우를 어느 때보다 좋은 곳에 세워놓고 싶어서 여러 가지로 공간과 시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기 때문에 그동안 우를 잘 그릴 수 없었다며 이전에 진행한 ‘SUFER’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용감한 서퍼의 등장으로 씩씩하게 우를 위한 전시를 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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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신모래 작가의 페르소나 중 하나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가진, 자신의 세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우'를 탄생시켰다.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불안한 상황이 닥쳐도 의연하게 행동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눈물을 훔치고 두려운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이 분명한 사람.

 

작가는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상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당신을 위로하는 존재가 있음을,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고 기쁨을 주는 것들을 기억하라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가 있으며 서로의 '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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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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