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감과 글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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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기한은 글을 쓰고 싶지 않게 하는 척력이면서도 끝끝내 써내고야 말게 만드는 인력이다.
어디선가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기적적으로 능률이 올라서 기한을 맞춰 쓸 수 있는 기량을 우리 몸이 갖게 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게 과학적 사실인지 유사과학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 말을 제법 신빙성 있다고 생각해왔다.
늘어짐의 미랄까. 뭐 하나 제대로 써야 할 글이 생기면 마음속엔 돌이 하나 얹혀서 신경 안 쓰는 체하면서도 계속 콩닥콩닥 뛰는 심장으로 그 돌을 느끼는 늘어짐과 긴장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막상 쓸려고 들어도 빈 문서 안에서 파편적인 단어 몇 개들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저장 안 함을 누르고 글을 닫을 뿐이다.
그러다 정말 마감이 다가오면, 부랴부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어떻게 또 쓰긴 써진다. 미리 써 둔 초고가 있어도 마감 직전에 갈아엎어 다시 쓴 것만 못해서, 언제나 늘 초고이자 완고인 것을 써낸다.
얼마 전엔 교내 문예지에 들어갈 짤막한 소설을 써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바쁘고 썩 글이 내키지 않아 제쳐두었었다.
에이포 열 쪽은 채워야 할 텐데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하면서 수정 없이 써 내려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정말 순간적으로 다 뱉어지는 것인지 머릿속에 원래 응어리졌던 것을 풀어내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언제는 뭘 쓸지 고민도 하지 못한 채 마감을 맞이한 적이 있다. 쓸 말이 없어서 정보값이 없는 무의미한 문장들을 반복하고, 또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 초고지만 완고라기엔 부족한 무언가를 써냈다. 그니까 이미 내가 중얼중얼 머릿속에 입력해둔 글들을 타자로 쳐내게 만드는 것이 오직 마감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마감과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마음속 돌이 온갖 곳을 굴러다니며 내 머릿속까지 헤집어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글자와 말을 어떻게 조합해야 그걸 써낼까 하는 고민으로 마감 직전까지 머릿속은 팽팽하게 움직인다. 마감 직전엔 그 머릿속 글들을 풀어낼 타자 치기 기량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서 글을 제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연출했던 단편영화에서 타자기를 소품으로 썼었는데, 낡고 옛스런 타자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 안에 얹힌 말을 정리하는 게 글의 역할이라면 그 정리된 얹힘을 빠르게 토해내게 하는 것이 데드라인의 역할이라고.
그니까 데드라인을 넘기면, 우린 체한 기운을 빼내질 못해서 또 불안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김가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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