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글’에 대한 아주 사적인 고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2.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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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에 대한 아주 사적인 고찰



1.


예전, 삶이 폭풍 같던 나날을 보낼 때 나는 한 SNS에 시를 써서 올렸었다. 감정이 버거웠고, 그 감정을 토해낼 곳이 필요했다. 꾸준히 올린 덕분인지 그리 큰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글을 깊이 좋아해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글을 올리면 자신의 SNS에 공유하고 감상을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이따금 시를 써주어 감사하다는 팬레터를 써서 보내주기도 하던 그 다정한 분들의 감상을 양분 삼아 글 쓰는 날들을 한동안 지속해왔다.

 

어느 날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입에 머물던 감정을 내뱉고 싶은데 적절히 토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글이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쓴 시 중 가장 별로였다고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시를 버려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폐기하지 않고 ‘좋지 못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올립니다.’라는 변명과 함께 게시했다.

 

내 글을 꾸준히 좋아해 주던 분 중 한 명이 시를 올린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댓글을 달았다.


- 작가님의 글에 좋지 못한 글은 없습니다. 이번 시도 다른 글들처럼 아름답고 좋습니다.


애초에 제정신이었으면 인터넷 SNS에 시를 써서 올리지도 않았겠지만, 그때는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욱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화를 내듯 답글을 적었다.


- 제 글의 가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정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올리는 순간까지 불만족스러웠고, 이 글은 제가 평소 쓰던 글의 평균 이하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글을 저의 다른 글들과 동일하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모욕과도 같으니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의 끔찍한 성질에 진절머리가 나지만 어릴 적의 내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별로라고 느껴지는 나의 글과 내가 좋아하는 나의 글이 동급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름 글에 자부심도 느끼고 살던 때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나의 글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글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의 내 글의 가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래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한참 뒤 대댓글이 달렸다.


- 작가님께서 그렇게 느끼고, 제 말에 화가 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번 시를 포함해 작가님의 글은 전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그때 처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 글은 그저 ‘나오는 대로 쓰는 것’에 불과했다. 고민해봤자 그저 무언가를 더 아름답게 은유할 방안에 대해 고민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끔찍한 글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글의 의미와 가치는 어쩌면 내가 그저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로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수 있겠다고.

 

 

2.


한창 ‘감성’이 유행했을 때가 내 생애 트렌드를 가장 싫어했던 때였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했다. TV나 유튜브를 볼 때면 항상 어떤 화자가 자신의 고단함을 이야기했고, 잔잔한 발라드가 배경으로 깔렸으며, 흔한 위로 문구로 광고가 마무리되었고, 그런 광고는 유튜브에서 ‘나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광고’라는 무난한 제목으로 다른 비슷비슷한 광고들과 함께 소개되었다.

 

서점은 더 지긋지긋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놓여있는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이 책 표지에 ‘괜찮아’, ‘위로’, ‘토닥토닥’, ‘감성’ 등을 하나씩 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런 책들이 서점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너무 끔찍해서 울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은사님들을 뵈러 갔을 때, 도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국어 선생님의 책상에 감성 에세이가 올려진 것을 보고는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운을 떼었다.


“쌤, 저 책 읽어보셨어요? 어때요?”

“저거? 내가 너희들과 비슷한 나이였으면 와닿는 게 있었을 것 같아. 지금은 그냥저냥이네.”

“쌤 전 저 책 끔찍하게 싫어해요. 유행하길래 샀다가 반 읽고 남 줬어요. 이해가 안 돼요.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무조건 안심하라고 하는 글이 어째서 인기 있는 거죠? 그런 건 자기 계발이 아닌 자위 아니에요? 그런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안도감밖에 없잖아요.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거나,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지도 않아요. 책한 바닥에 적힌 것이라고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등등의 근거 없는 사탕발림뿐이잖아요. 이게 좋은 글이 맞아요? 게으른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계획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가끔 추임새를 넣으시며 내 말을 흥미롭게 들으시다가, 어느새 격양되어 혼자 씩씩거리고 있던 나를 보고는 ‘진정해’라고 짤막하게 말씀하시며 웃음을 터트리셨다.


“그만큼 세상에 굳이 깊이 있는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뜻이겠지. 세상살이가 힘드니까 그런 글에서 위로를 얻는 것을 독서의 목적으로 두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런 글은 더없이 좋은 글일걸? 머리 쓰지 않아도 되고, 의미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니까. 그리고 일상 속에서 감동 거리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의미 부여는 얼마나 쉬운데요. 선생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그럴듯한 문구 한두 개 넣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어제 벌레를 한 마리 잡았다고 쳐요. 죽을 둥 살 둥 도망치는 벌레를 보며 아, 세상은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아, 나도 벌레처럼 살아야겠다. 세상일이 다 그런 거 아닐까? 나보다 큰 존재가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나는 도망칠 수 있다고 믿으며 앞을 향해 달리는, 그런 것이 삶 아닐까? 이런 글도 즉석에서 하나 뽑아낼 수 있어요.”


선생님은 잠깐 어떻게 해야 이 고집불통 제자의 좁은 시야를 넓혀줄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듯 보였다. 사실 그냥 내가 인생을 벌레에 비유하며 뭐든 쉽다는 듯이 오만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약간 불쾌감을 드러내셨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말뜻은 무조건 어렵고 문학적이어야 좋은 글이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근거 없는 위로로만 책 한 권을 가득 채우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래 좋다는 것은 상대적인 거야. 너도 나중에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언젠가는 이런 심플하고 자위적인 글이 좋게 느껴지는 점이 생길지도 모른다?”



3.


어느 날 나는 독서를 즐기는 남성과 연락이 닿아 한동안 SNS에서 책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남성이라는 것 이외에는 나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음주를 즐기는 것을 보아 성인이었고, 유독 고전 소설을 즐겨 읽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주 대화 주제는 일본의 고전 소설들과 작가들의 생애였다. 그 사람은 다자이 오사무의 책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개를 키우는 이야기」나 「유다의 고백」은 좋아하지만, 『사양』은 그렇다 쳐도 『인간 실격』은 불태워버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나 그 사람이나 일본 작가들의 생애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은 싫어하는 내가 어째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에는 심취해 있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내가 직설적으로 책의 호불호를 이야기하면 그쪽이 들어주는 편이기는 했다.


-감성 에세이 좋아하세요?

-아니 싫어하는데. 왜?

-저도 싫어해서요. 내용도 부실하고 유려한 문장이 없는 것도 싫어요. 뉴스를 봤는데, 요즘 사람들은 독해력이 낮대요. 은유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대요. 분명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가끔 읽어도 그런 에세이만 읽어서 그런 거로 생각해요.

-확실히 요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긴 해.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읽기 싫어서 안 읽는 건지는 아무도 몰라. 너야 직접 시를 쓰고 어릴 적부터 다독해왔으니까 읽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걸 읽을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잖아?

-독서하는 방법은 초등학교에서도 배워요. 책 읽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래요? 자기 경험을 토대로 떠올리며 글쓴이의 묘사를 상상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게 어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뭐든 해봤던 사람들이 더 잘하는 거고 안 해본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거야. 그런 사람들한테는 그냥 가볍고 잘 읽히는 글들이 최고야.


며칠 뒤, 책을 검색하다가 어떤 사람이 블로그에 쓴 글을 찾았다.

 

‘예전에는 화려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있어 보이니까. 요즘엔 치장하듯이 꾸며놓기만 하는 글보다는 간결한 문장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이 정말 잘 쓴 글 같아.’라고 일기처럼 적혀 있었다.

 

나는 화려한 글을 읽으면 행복했다. 무엇 하나 묘사할 때, 최대한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할수록 실감이 났다. 책 속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나 대상이 내 머릿속에서 점차 구현되는 그 과정을,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공간이 시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읽는 것을 사랑했다.

 

그렇다고 묘사 많은 글만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국 소설이 아닌 외국 소설들은 주로 묘사가 절제된 편이었으나,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그런 글과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감성 에세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취향의 차이일까? ‘좋은 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4.


나는 어떤 글을 읽고 쓸 때 그 글이 좋은 글, 최소한 괜찮은 글이라고 느낄지 하나씩 나열해보기로 했다.


1) 묘사하는 것이 오감에 느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때.

2)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새로운 사실을 전달해주거나 그 글이 다른 사람(나)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줄 때.

3) 한참 동안 여운에 잠겨 벗어나지 못할 때.

4) 흡입력이 좋을 때. 스토리가 재미있을 때.

5) 욕구를 자극할 때. 읽는 이가 글을 읽고 무언가 직접 하고 싶어질 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나열된 사항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김 모 군이 한밤중에 갑자기 생각해낸, 아주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사항들이다. 또한 그 사항들 안에서도 기준이 모호한 것들이 너무 많다.

 

결국 나는 감성 에세이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글이며, 좋은 글이란 굉장히 사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모두 취향의 차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은 항상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락성 짙은 영화도 누군가에게는 예술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진 만화’여도 누군가는 그 만화의 주인공에게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찝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5.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거나, 나에게 생각을 공유해줄 분이 계시다면 기꺼이 연락해주세요.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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