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하지 않은 게 어때서? [음악]

글 입력 2022.02.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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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 앞에 쉽게 솔직해지기란 어렵다. 특히 타인의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슬픔을 나누면 그저 슬픈 사람이 둘이 될 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느 순간부터 우울하고 슬픈 감정으로 물든 내면을 타인 앞에서 드러내는 것은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된 민폐와도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사회적 공감을 표하는 데 가장 야박한 감정 상태는 바로 우울함이다.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중 하나는 힘내라는 말이라고 한다. 가장 쉽고 흔한 위로인 만큼 상대의 정서에 대한 깊은 공감이 부재하는 '영혼 없는'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저냥 괜찮게 살아가는 사람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의 인생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탐구한 뒤에 툭 하고 뱉어낸, 아주 성의 없는 한 줄 감상평과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울한 이들에게 진정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은 '힘내'가 아닌 '함께 힘내자'일 것이다. 깊은 절망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연대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울함을 더 이상 사적이고 비정상적인 정서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인 이도이의 음악이 그러하다. 이도이는 멜로딕 힙합 장르의 음악적 스타일을 통해 우울, 무기력, 불안, 분노, 그리고 삶의 끝에서 보게 된 희망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뻗는다. 마치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이들에게 당장이라도 '나도 그래!'라고 외칠 것처럼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가사들은 그녀를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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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바이브

 

 

엉뚱하면서도 쾌활한 성격의 유튜버로도 알려져 있는 그녀는 음악 앞에서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내지도, 혹은 억지스러운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밝은 모습의 외면, 그리고 수많은 고민과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찬 내면 모두 이도이 그녀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도이의 곡들은 주로 그녀가 우울증을 겪으며 느꼈던 혼란과 방황의 과정을 주제로 삼는다. 리드미컬한 비트 위에 풀어낸 날 것의 정서들을 들여다보면 그녀가 자신의 우울함 앞에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기분이 안좋아서 미안해



 

 

'요즘 기분이 안좋아서 미안해'는 음악인으로서 이도이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곡으로 우울증을 겪으며 연애를 했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두 가지 종류의 비트를 통해 기분이 안 좋아서 연락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이, 그리고 그런 연인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이 각자의 입장을 표현하며 둘 사이의 권태기를 그려낸다.

 

한편으로는 연애뿐 아니라 우울증으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관계 문제를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끝없는 자책과 회의감에 휩싸이게 되며, 결국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인간관계에도 지장이 생기게 된다. '요즘 기분이 안좋아서 미안해' 또한 우울감에 압도되어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이어가기 힘든 화자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우울증 환자들이 받기 쉬운 오해에 대한 진심 어린 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수많은 편견을 묵묵히 견뎌내며, 기분이 안 좋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거쳐야만 했는지를.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


 

 

 

일상생활을 구속하고, 생각에 중독시키고, 여지없이 무력하게 만드는 병. 누구나 걸리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질환. 오직 나만이 나를 이해하고, 그조차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 이해받는다고 우울증이 갑자기 치료되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알아줄 거란 소망,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희망을 심으며 나는 한 발짝씩 병을 직시한다.

 

-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 앨범 소개 중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는 이도이의 곡들 중 가장 우울의 민낯을 잘 드러내는 곡이 아닐까 싶다. 이도이는 곡에서 우울증을 '내가 아닌 나'를 만드는 '병이 아닌 병'으로 표현하고 있다. 말로 쉽게 형용될 수 없는 고통 속에 매일같이 시달리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그저 유난스럽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타인 그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못한 채 지쳐가는 마음.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는 우울증을 겪어서 외롭다고 했다. 지인들은 물론 가족까지도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신은 어딜 가든지 그저 쉽게 분위기를 망치고 타인에게 우울한 감정을 전파시키는,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악당이 되어버린 것 같다면서.

 

최근 인터넷을 통해 우울증 환자를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해 우울한 감정을 과시하는 사람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우울증 환자를 향한 멸시와 혐오의 시선, 그 보이지 않는 칼날의 끝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오늘도 그렇게 이름 모를 칼날들에 무참히 찔리고 베이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다시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을 찾아 끝없이 헤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 누구보다 세상이 따뜻하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nice 2 u


 

 

 

'nice 2 u'는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회의와 불안, 그리고 분노를 담고 있다. 발랄한 분위기의 비트와 함께 점점 고조되는 감정은 이도이만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해낸다. 개인적으로는 이도이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곡의 전반적인 주제인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 혹은 욕심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자신과의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추측하면서까지 서운함 혹은 그 이상의 묘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의 감정적 교류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잘해주고 싶었던 마음마저 불편해지게 만드는 관계 속에서의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듯 쏟아내는 'nice 2 u'를 들으며, 문득 이도이가 정말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악순환의 끝에서 관계의 끝을 다짐하며 분노하는 그녀에게서 오히려 사랑을 향한 진심과 갈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악을 쓰며 뒤돌아섰지만, 메말라가는 관계 속에서도 돋아날 것만 같았던 자그마한 마음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되돌아올 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선명하다. 마치 내가 그랬고, 당신이 그랬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

 

누구에게나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며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가 언제나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의무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도이의 음악은 이러한 엇나간 의무감을 뿌리친다. 완벽한 모습뿐 아니라 불완전한 모습 또한 온전하게 받아들일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서투른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울적하고, 화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앞에 당당해지기. 그것이 이도이만의 위로 방식일 것이다.

 

 

 

정예은.jpg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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