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란 무대 위에선 누구나 주인공이겠지만 : 연극 '언더스터디'

글 입력 2022.01.3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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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연극 <언더스터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무대 위에선 누구나 주인공이겠지만


 

각자 삶의 무대 위에선 자신이 주인공인 작품을 공연하고 있겠지만, 당연히도 이야기에서는 실제 무대에서는, 또 현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만화 세계관 안에서는 주인공 남녀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엑스트라는 주인공 커플의 오작교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연극 <마우스피스>의 데클란은 제 삶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연극을 보러 극장으로 향했지만,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인정받고서야 겨우 말단의 좌석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참으로 불공평한, 하지만 바꾸기 힘든 세계의 질서다.

 

그리고 여기 카프카의 미발표 작품(가상)이 공연되는 브로드웨이 무대 위,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이 있다. 연극의 제목처럼 급작스럽게 배우가 대체되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존재하는 직업적 역할, 언더스터디가 그들이다. 등장인물은 할리우드의 탑 배우(브루스)의 언더스터디인 라이징 스타 '제이크'와 그런 제이크의 언더스터디인 무명 배우 '해리', 그리고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무대 감독으로 일하며 연출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록산느'. 이 세 '언더독'은 유명세와 티켓 파워로 이 공연을 좌지우지하는 쇼비즈니스 세계의 '탑독' 브루스 없이 공연의 리허설을 해야만 한다. 브루스가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직업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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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런(run)은 갈등과 반복의 연속이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프란츠 카프카의 텍스트, 캐릭터들의 개인사 등의 대화 주제를 오가며 세 인물의 리허설 진행은 여러 번의 브레이크를 밟는다. 해리는 상업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트럭에 타"만 연발하던 주인공 제이크의 연기가 못마땅하고, 제이크는 무명 배우가 자신의 언더스터디인 것이 불만이며, 록산느는 이 두 사람을 이끌고 리허설을 무사히 마쳐야 하는 상황과 전 약혼자인 해리와의 관계 속에서 난감하고 짜증이 난다.

 

그 와중에 콘솔을 맡은, (무대 위에는 이름으로서만 등장하는 인물인) 바비는 약에 취해(?) 종종 록산느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고 필요하지 않은 세트를 등장시킨다거나 조명을 켠다거나 하며 실수 연발이다(마치 이들에게 순탄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 절대자 혹은 운명처럼!). 제대로 준비된 것이라곤 해리와 제이크가 목놓아 예찬하는 위대한 카프카의 대본뿐. 이대로 무대에 올라갈 일도 희박한 언더스터디와 그의 언더스터디와 무대 감독의 리허설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서로의 연기와 이야기에 화를 내고 반박하면서, 또 여느 공연이 그러하듯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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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침묵하지 않길


 

그러나 해리, 제이크, 록산느가 서로에게 처음에 가졌던 적개심과 무시, 원망과 애증 등은 리허설을 거치며 조금씩 변해간다. 셋이서 함께 혹은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서 독백을 하며 '언더스터디'인 이들이 세상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차차 털어놓는 각자의 사정에 관객은 물론 서로 역시 단순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관객은 살며시 기대하게 된다. 제이크와 해리, 록산느가 함께 무대 위에 오를 장면, 어쩌면 이들에게 기적처럼 찾아올 기회를 말이다.

 

하지만 결국 연극은 이들의 리허설을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엔딩으로 안착한다.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연극 속 '슈퍼 갑'인 브루스의 사정으로 인해 연극이 조기 폐막될 예정이라는 것. 이런 상황에 대비해 그의 언더스터디인 제이크가 있는 것이고, 제이크의 언더스터디인 해리가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록산느가 불편함과 짜증을 감수해 나가며 리허설을 하는 것이지만, 브루스 하차 후의 티켓 판매량과 어마어마한 위약금 사이를 잰 자본의 저울질 앞에 이것들은 모두 무용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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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리허설이 그저 무용했을까? 리허설 동안 각자의 처지를 알게 되고 리허설을 최선을 다해 끝내 보려 하지만, 결국 조기 폐막을 통보받은 세 사람. 끝내 이들은 리허설의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던 춤을 춘다. 내가 꿈꾸던 주인공으로서의 삶, 아니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내가 주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은 아직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고 몸을 움직인다. 더는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자본의 논리가 누르는 압력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되, 패배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며 말이다.

 

실수 연발이던 바비가 마지막 순간 아주 적절하게 조명과 음악을 보내 준 모습에서는 이들을 향한 운명의, 더 넓게는 이야기 바깥의 언더독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세상은, 쇼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고, 이들 역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움직임을 세상에 보여 주겠다는 것. 그리하여 이야기 속 인물들은 '언더스터디'의 위치에 있지만, 결국 이 연극 <언더스터디> 속에서는 주인공이라는 것. 그 간절하지만 따스한 시선이 여기에 있다.

 

 


 

 

연극 <언더스터디>

 

 

일시 : 2021년 12월 21일 (화) ~ 2022년 2월 27일 (일)


시간

화, 목 19시 30분 / 수, 금 15시 30분, 19시 30분 

토 15시, 19시 / 일 14시 30분 / 공휴일 14시, 18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티켓가격

R(무대)석 66,000원 / R석 66,000원 

S석 44,000원 / A석 20,000원


관람시간 : 11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등급 : 14세이상 관람 가능


제작 : ㈜레드앤블루

주최 : 예술의전당, ㈜레드앤블루

 

 


 

*원작 : Theresa Rebeck


*프로듀서_손형민, 각색/연출_김태형

무대디자인_김미경, 조명디자인_원유섭

음악_배미령, 의상디자인_홍문기 

소품디자인_유태희, 음향디자인_권지휘

분장디자인_김영아, 안무_이현정 

제작감독_임현중, 무대감독_이재은


*출연 : 해리 / 김주헌, 박훈, 이동하

제이크 / 홍우진, 김다흰, 강기둥

록산느 / 정연, 이윤지, 정가희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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