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살아온 땅에 대한 이야기, '나는 제주 건축가다' [도서]

글 입력 2022.01.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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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 자랐던 땅, 거쳐온 땅, 지금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내 고향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40-50년 전에는 간척을 하지 않아 읍내까지 물이 흐르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위해 본래 갯벌이었던 곳이 논이나 밭이 되면서 삶과 땅의 모습 모두가 많이 바뀌었다고.

 

나는 그때 태어나 경험한 바가 없지만,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대로도 꽤 운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농업보다 어업의 수익이 더 좋은 편인데 조금 더 멀리 보았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고향의 과거 모습을 떠올려 보곤 한다.

 

고향에 대해 말할 때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꽤 재밌다. 집에 간다고 하면 흔히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배를 타고 집에 가냐는 질문을 하는데, 나도 그럴 땐 집에 가려면 1박 2일은 잡고 가야 한다며 종종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리고 요즘에 다리 없는 곳이 어딨냐며 차로 갈 수 있다고 덧붙이면 놀라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정말 없고 나 자신도 그렇겠구나 하며 서로의 서글픈 무지를 조금 깨닫는다.

 

그러나 다리가 육지로의 왕복을 편리하게 해준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교통량이 늘어나 오염도가 높아지고 인구 감소의 폭도 늘어났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 계속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더 편리한 주거를 위해 이제 논과 밭을 주차장과 아파트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시원하게 산이 보였던 곳에 유채꽃밭과 놀이터가 사라지고 주차장이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한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아마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리 빠른 속도로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둘러싼 가까운 곳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곧 나의 이야기가 되므로 정도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어 나의 이야기를 길게 하게 되었는데, 부디 지루하지 않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며 계속 집이 떠오르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바도 자신들의 경험이 녹아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이며, 섬이라는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건축가이기에 더 깊은 시선으로 땅의 맥락을 읽고 건물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역시 전문가들의 문답이구나 싶었다. 제주도라는 땅도 커다란 하나가 아닌 제각각 별난 땅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다음엔 더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를 이곳저곳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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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이란 무엇이며, 건축가로서 제주에서 끌리는 공간은?

제주 풍토를 잘 이해한 건축물은 무엇인가?

지역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미디어제주’의 건축 전문 기자가 제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19명의 젊은 건축가를 인터뷰했다. 건축가 대부분은 1970년대생으로 제주에서 성장하여 지역에 대한 자긍심이 큰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20년 이상 건축 활동을 해오면서 고민했던 제주의 땅과 건축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풀어냈다.

 

독특한 자연만큼이나 제주는 독특한 공간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옥도, 초가집도, ‘옴팡진(움푹한)’ 마당도, 바다와 뭍의 경계면인 바당도, 올레라는 골목길이 있는 마을도 육지와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제주의 독특한 지역성은 하나의 ‘붐’으로 연결되었다. 제주 붐 중에는 부동산 붐도 있고, 건축 붐이 있고, 제주살이 붐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제주라는 땅을 딛고 사는 사람과 제주를 자신의 터로 삼기 위해 새로 들어온 사람, 도시개발의 확장으로 달라지는 농촌의 풍경, 거대자본이 밀려오는 현장, 제주의 본모습과 상치되는 건축 행위 등 이런 현상은 제주 건축계에 지역성에 관한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제주다움’은 무엇인가, ‘제주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어떻게 건축 속에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는 디자인이 잘 된 건축을 기술적으로 소개하거나 설계 노하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제주 건축가들의 생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현대 건축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나 제주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 제주에서 건축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줄 만한 내용들이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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