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을 잃어가는 사람들 [사람]

정을 붙여 공간을 만들자
글 입력 2022.01.1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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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취를 준비 중이다. 혼자 살기는 처음이다. 기숙사는 애당초 ‘공용’ 시설이고 방조차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반만 붙이고 사는 기분이었다. 내가 머무르고는 있으나 나의 공간은 아니었다.

 

공간에 대한 생각을 늘 해왔다. 한 번 지나쳐 왔는데 평생을 추억하게 되는 길거리가 있고 평생을 살았는데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방구석도 있다. 공간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어느 장소에 우리가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곳이 곧 공간이 된다.

 

정붙이지 못하면 장소, 정붙이면 공간. 개략적으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I’m not a homeless.

I’m just houseless.”

 

 

이 말처럼 공간의 정의를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영화 ‘노매드랜드’ 속 주인공 펀의 대사다. 펀은 차에서 살면서 이곳저곳 거처를 옮기며 살아가는 ‘노마드’다, 그리고 그녀는 본인을 홈리스보단 하우스리스라 정의한다. 번역하면 ‘집’이란 단어로 치환되는 두 단어 새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 홈은 있고 하우스는 없다고 말한 걸까.

 

종종 언어 중에는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것들이 있어서 번역으로는 살려지지 않는, 그 자체로만 온전한 단어들이 있다. 그리고 하우스와 홈도 그중 하나였다. 설명은 이어서 해야겠지만 홈은 집, 이고 하우스는 주, 다. 전자는 우리가 쉬고 안정을 주길 바라는 공간이고, 후자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장소다.

 

집과 주.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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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펀은 노마드랬다. 노마드. 그니까 유목민이란 얘기다. 정해진 장소 없이 차를 끌고 다니며 일자리를 그때그때 얻고 일하고 다시 옮기고를 반복한다. 그런 노마드들이 수없이 많다.

 

펀은 노마드들이 모이는 일종의 크루에 끼기도 하는데, 그 크루의 대장 격인 남자는 자식의 죽음으로 노마드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펀은 남편의 죽음 이후 원래의 집을 떠나왔다. 마음 둘 곳을 잃은 사람이 선택한 것은 머물기보단 떠돌기였다. 그들에겐 머물면 머물수록 부재가 선명해져서 집이 더 이상 집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노마드들이 꼭 그런 감상적인 이유로 유랑의 삶을 택한 건 아니다. 보험료, 세금, 치료비 등등 한푼도 쉽게 낼 수 없고, 차가 여차 고장 나면 빠듯한 생활비를 더 깎아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사람들. 제철 과일이라도 되는 양, 택배 물류가 많은 시즌엔 아마존에서, 관광객이 많은 시즌엔 공룡 박물관에서, 온갖 곳에서 노마드들은 철이 되면 나타나고 그게 끝나면 흩어진다.

 

그러나 차에 살림을 얹어 생활하면서 차는 곧 집이 되고, 불안정은 유동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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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이 삶의 구호인 우리나라에서 유목민은 낯설기만 하다. 고정된 거처가 없는 사람들. 의식주에서 주를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정의해도 될 듯하다.

 

다만 집이 없냐는 조금 다른 문제다. 펀은 홈과 하우스의 차이를 공간성에 뒀다. 밖은 춥고 삶은 고장 난 거 같아도 차에선 몸 뉘고 쉴 수 있다. 비록 주차요원이 와서 여기엔 차 대고 주무시면 안돼요 한마디 하면 자릴 옮겨야 할 만큼 불안정하고, 다른 노마드와의 만남을 기약할 땐 운명에 맡겨야 하고, 또 헤어질 때는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나라고 영영의 이별을 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 천지다. 좁은 방에 꾸역꾸역 몸만 들이밀고 살아가기도 하고 대궐같이 넓은 집이어도 마음을 못 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내 집 마련을 삶의 목표로 걸어야 한다. 무작정 차에 타 나가 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홈리스는 벗어나보자는 얘기다.

 

가뜩이나 추운 날씬데 마음 데울 곳도 없으면 영 서러울 테니 집이 될 만한 곳을 찾으면 좋겠다. 나름 애정과 이름과 기억을 집어넣은 공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노매드에게 주는 없어도 집은 있고, 길은 험해도 방향은 있을 테니 말이다.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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