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주의 문학 이야기 - 노멀 피플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1.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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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 샐리 루니(Sally Rooney)의 『노멀 피플』이다. 우리가 국내소설을 읽을 때는 오늘날 문단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들,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해외 소설을 읽을 때는 그렇게 하기가 비교적 어려운 것 같다. 우리가 해외 소설을 접할 때는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소위 고전작품들 위주로 만나게 되고, 설혹 오늘날의 작품들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거장들의 검증된 작품―하루키나 게이고, 기욤 뮈소 등―을 접하지 해외 신인의 동시대 소설을 시중에서 만나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안타깝게 느껴지는데, 당장 오늘날 존재하는 폭력이나 미묘한 분위기, 인간관계의 섬세한 감각 같은 것은 원로 작가들의 작품에서보다 떠오르는 신인들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국내 문단에서 접하는 폭력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감수성에 대한 가장 최신의 지표이지만, 이러한 작품만 읽어서는 다른 나라에 다른 종류의 감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단적인 예시를 한유주 작가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출처 : 한국문학번역원 유튜브). 한유주 작가의 『불가능한 동화』에서는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 안팎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는데, 해외 독자들은 이를 보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나라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의 가정에서 아이를 훈육하는 장면들이라든가, 학교에서 일기를 일괄적으로 걷어서 빨간 펜으로 코멘트를 쓴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들에게 엄청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한유주 작가는 이러한 해외의 평가에 대해서 “당신들의 나라에도 일상적인 폭력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한유주 작가의 말이 중요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언론과 매체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각자의 고유한 문화가 보존되어 있고 폭력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상대성을 가지는 것이다. 해외의 문학을 통해서 타국의 문화나 가치관을 확인하고, 우리의 문화 혹은 나의 생활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2


 

소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샐리 루니와 아일랜드 문학의 특징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샐리 루니는 1991년생 작가로, 『친구들과의 대화』, 『노멀 피플』, 『Beautiful World, Where Are You(2021, 아직 번역본 없음)』, 총 세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특유의 흡인력있는 표현력과 관계에 대한 섬세한 통찰을 통해 젊은 나이에 여러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냅챗 시대의 샐린저’, ‘더블린의 사강’ 등 강력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작가인데, 직접 읽어보면 그러한 별칭들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녀의 작품을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노멀 피플』에서 나타나는 남녀 간의 미묘한 관계는 내용과 기법 모두 훌륭해서 뒤라스나 사강을 연상케 한다. 겉보기상의 위계와 내면의 사랑, 그리고 거대한 사회 구조, 이 3항의 상호작용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한편 『노멀 피플』을 읽으며 샐리 루니가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라는 점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였더면 탄생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문학에 있어서 아일랜드 문학은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주로 선진국적, 문화 선구자적, 문화 우월주의적 입장에서 전개되어 온 영국의 영문학과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제임스 조이스, W. B. 예이츠 등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통적으로 권력과 위계에 대한 설정이라든가 시스템의 압력에 대한 감수성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히려 일제강점 상황의 우리나라 문학과 유사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역사적, 정치적 시대성을 다소간 저 멀리 소멸시키면서 한 쌍의 남녀의 사랑을 그려왔다면, 샐리 루니의 작품에서는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하여 사회와 경제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전면화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전개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사회의 시선이나 경제적 차이이며, 이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관계에 위협을 가한다. 특히 동시대의 작가의 소설답게 SNS 환경이나 디지털화된 성 모티프의 방식으로 이러한 위협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보와 매체, 기술 등의 이슈로 뒤덮인 현대 사회 속에서 진행되는 사랑과 갈등에 대해 『노멀 피플』은 말하고 있는 것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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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멀 피플』은 함께 중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진학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한 쌍의 남녀, 코넬과 메리앤의 이야기이다.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동네(Sligo)에서 둘은 함께 중등학교를 다니며 지낸다. 코넬은 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며 인간관계와 학교성적도 우수해서 항상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다. 반면에 메리앤은 성적은 좋지만 조용한 성격이라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생활하게 되고, 항상 주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코넬의 어머니가 메리앤의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코넬과 메리앤은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게 되는데, 이런 시간들 속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발전해나가게 된다.


코넬은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졸업무도회를 앞두고 메리앤을 저버린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여 메리앤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녀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활발한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대도시 더블린의 대학교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코넬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서 둘은 서로 완전히 뒤바뀐 모습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고, 내면의 불안과 주변인들의 시선을 극복하며 서로에게 다가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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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피플』은 우리나라 문단에서 탄생할 수 없는 종류의 소설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소설에서 보면 부모에게 연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문화인 것으로 보인다―라든가 대학교 파티 문화라든가 하는 것들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들은 정치나 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타나는 부분들이다.

 

특정 사회이념이나 정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타나는 부분들을 보면 개인의 삶이 정치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고 개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환유적으로) 비교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학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국 문단에서는 구현되기 힘든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서는 이장욱 작가의 소설에서 정치적인 소재들이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정치성에 의한 거부감을 다소간 무화시키는 이장욱 작가의 글쓰기는 샐루 루니의 글쓰기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성과 관련된 장면들―예를 들어 연인끼리 나체 사진을 주고받는다는 언급이나, 마조히시즘적 성적 성향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에는 민감한 면이 있다. 그러나 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오직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인간과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내밀한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은유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의 장애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 성일 것이다. 코넬과 메리앤의 관계에 교착이 발생하는 것은 생활해오면서 굳어져온 인간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관련될 것이다.

 

『노멀 피플』에서 (구체적인 성관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감각적인 접촉의 수준에서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것들은 인물의 심리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묘사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한국 문단에서 이러한 형태의 서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논란들과 우리 사회가 도달한 합의점과 관련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에서만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중요한 지점 역시 존재하고, 이를 읽는 데 있어서 해외의 동시대 문학이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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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루니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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