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혹성 충돌 전, 남은 한 달 일기 -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글 입력 2022.01.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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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jpg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소혹성이 우주에서 날라와 지구로 충돌하기까지 한 달간의 시간을 두려운 감정으로 맞이해야 하는 4명의 인물을 그려낸다. 각 장의 주인공들은 고등학생, 깡패, 미혼모, 가수의 역할로 공동체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무시당하고 스스로에게 큰 결핍을 느끼는 인생의 실패자들로 칭해진다. 그러나 ‘이상향’을 뜻하는 단어 ‘샹그릴라’는 멸망이라는 소재와 상대적으로 확연히 다른 언어의 빛을 내며 소설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1장 주인공인 고등학생 유키는 각종 SNS와 뉴스에서 보도하는 소혹성 충돌 뉴스를 듣고선 서글프지만 안도의 감정을 느낀다. 넉넉지 못한 형편, 표준 몸무게에 들어오지 않는 투박한 몸매, 눈뜨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운동 신경 등 또래 친구들에 비해 표준 범위에 들어오지 못하는 그는 학교 폭력 피해자다.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궁지에 몰려 소심하게 살아왔기에, 가해자들과 한 달 후 똑같은 세상이 내린 조건인 멸망 아래 계급이 동등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2장 주인공 깡패 신지도 유키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유년 시절 술주정 아버지와 그저 옆에서 체념하며 영혼 없는 눈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살았고, 40이라는 나이까지 자신을 쓰레기라고 칭하며 살았다. 이번 인생은 별 볼일 없음으로 친한 형이 부탁한 살인 청부를 큰 고민 없이 승낙하며, 곧 뒤에 들은 지구 멸망이라는 선언은 어이없게고 허탈하게만 들린다.

 

3장은 18년 전 만난 남편을 너무 사랑했지만, 그의 폭력 때문에 임신하고 있는 아이를 위해 뛰쳐 도망간 미혼모가 등장한다. 그녀도 온 세상에 울리는 지구 멸망 발표를 듣고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본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났다고 합리화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저 자신이 나약해서 탈피한 결과로 남편에게는 아이를 뺏기게 했고, 아이에게는 아빠를 뺏기게 한 젊은 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마지막 4장은 거식증에 걸린 LOCO라는 젊은 여가수가 등장한다. 다사다난한 이면이 깔린 연예계 생활을 전전긍긍했지만 스폰을 가한 관계자인 프로듀서를 만나 대박을 친다. 그러나 인기가 솟아오를수록 인기에 대한 강박증과 더불어 가장 가까웠던 사이와 멀어지는 옛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공허함만이 쌓이고 외로워하며 내면이 허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세상과 절대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사연을 가진 4명의 주인공들이지만, 이들이 딱히 만날 접점이라곤 없어 보인다. 나이와 성별도 다르며 사는 곳도, 직업도 교점이 없다. 그러나 망한 인생의 표본 같은 네 사람은 꽤나 가까운 혈육으로부터 연결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혈육이 아니더라도 연결점이 선을 이으며 교류하게 된다. 이들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고민하고 결정하게 된다.

 

정부에서 소혹성 충돌을 공식 발표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멸망을 기도한 1장 주인공 유키는 점점 강인한 10대 남자로 성장하게 된다. 즉,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들어내는 공식적인 주인공이 된다. 인간은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를 맞이하고, 그 하루가 큰 인생을 관통한다는 직감을 맞이할 때면 누구나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서 다 같이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말 이 기도를 들어줄 신이 없다는 걸 인지하기에, 숨 쉬는 공간에서 찾고 찾다 보면 구석에라도 나올 소중함을 외면한 채 이 소원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신이 이 기도에 응답한다면 어떻게 될까? 준비하지 않은 채 남은 기간은 고작 한 달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면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유키는 세상이 멸망된다고 사방팔방 들려도 충격을 받아 성격이 돌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책임감이라는 능률이 올라가며 한 달이라는 긴급한 상황에서 그는 재빨리 성장됐다.  이 침착함과 책임감이라는 역할 단어는 그가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던 소녀(후지모리) 덕분에 키워진다. 여태까지 유키는 소심함이라는,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성향이 바뀌지 않아 후지모리에게 큰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개인 사정으로 도쿄에 가보고 싶어 하는 후지모리를 지켜주고자 그녀를 몰래 따라나간다.

 

유키는 처음으로 엄마 곁에서 떨어져 독립된 사람으로 진화한다. 우두머리에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하루살이처럼 맥없이 살았던 생활들을 청산하고, 사랑이라는 별빛 같은 감정 안에서 마음이 하라는 소리를 듣고 계산 없이 행동한다. 드디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용기를 낸 것이다.

   

 

“10대의 젊은 아이들은 분명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미래를 보고나 앞을 향하거나 할 거예요. 억지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그 또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싫든 좋든 솟아오르는 것이 있고요.” - 나기라 유

 

 

멸망과 행복의 대비 차이는 검정과 하양처럼 극과 극이지만, 이들은 멸망 안에서 행복을 찾은 적응력 빠른 유키 외 3명이었다. 네 주인공들은 결코 미래를 낙관론으로 볼 수조차 없었던 삭막한 길을 걸었었다. 외부에 의해 자기혐오로 도배되었고 절망이라는 비가 내려, 도배조차 아깝다는 감정을 세상으로부터 들으며 자신을 무너뜨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밝은 미래를 당연히 여긴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과 다르게, 소혹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한 달 전 긴박함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며 오히려 그 순간을 즐겼다.

 

세상이 끝난다는 가정이 아니라, 진짜 한 달 뒤면 끝날 세상이니깐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과 하루와 일주일을 공포와 분노 속에 동요되지 않게 된다. 끼니도 최후의 만찬처럼 생각하지 않고, 공기에 가득 담긴 밥과 따끈한 국물 그리고 계란말이까지 차려 먹으며 겸허히 멸망의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사람 구실을 지켜낸다.

 

멸망보단 분명 강도는 약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닥뜨린 코로나 바이러스 세상을 빗대보게 되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나기라 유가 그린 멸망을 고지 앞에 둔 사회의 복잡스러운 모습과 코로나 팬데믹을 2년이 넘게 겪는 전 세계의 모습은 분명 겹치는 면이 존재한다. 급속도로 변해버린 사회의 모습은 아직도 적응하기 싫고, 미래는 어둠 낀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전염병의 확산보다 더 무섭고 강렬한 지구 멸망이라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으며, 서로를 지켜주기 바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준 수많은 선택들은 지쳐버린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메시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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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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