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의 여행자이자 사진가 - 살바도르 달리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글 입력 2022.01.0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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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궂은 빨강‘


 

유년기에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꾼 적이 있다. 커다란 검은 실타래가 나오는 꿈이었는데,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가 거의 풀릴 즈음에 다시 꼬여버리는 아주 기묘한 꿈이었다. 그런 꿈을 밤새 꾸고 나면 머리카락이 젖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꾸지 않지만, 종종 불안을 마주할 때 그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트루먼 카포트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소설 속 주인공 홀리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심술궂은 빨강’이라고 표현한다. 시야가 점점 지나치게 밝은 빨강으로 가득 차는 걸 상상만 해도 갑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심술궂은 빨강은 다양한 양상으로 각 개인에게 존재할 수 있다. 내게는 꿈에서 본 검은 실타래들이 그 심술궂은 빨강이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은 이처럼 ‘심술궂은 빨강’을 담아내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풀어낸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전이 개최되고 있다. 전시는 달리의 어린 시절, 그림을 시작한 순간부터 타 영역으로 자신의 재능을 확장하기까지의 흐름을 망라하고 있다.

 

 

[포스터] 살바도르 달리전 ver.1.jpg

 

 

어릴 때부터 달리는 고집이 센 꼬마였고, 세계 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좋게 말해 독창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광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본인의 천재성을 굳게 믿었는데, 심지어 “벨라스케스와 비교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시대 화가들과 비교하면 나는 현대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임이 분명하다.”라고 남길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서 전시에서 달리가 자신을 포함한 유명한 화가들에게 점수를 준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점수표를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마 달리의 기록을 상대 화가들이 보면 분을 내고 남을 만큼, 다소 낮은 점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뻔뻔함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자신의 천재성을 갈고 닦는 여러 시도와 도전, 오묘한 그의 그림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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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슈거 스핑크스>, 1933

 

 

<슈거 스핑크스>라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모래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사막이 배경이다. 그리고 한 여성이 등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작은 나무와 밀레의 <만종> 속 기도하는 이들이 서 있다.


이 작품 속 거대한 모래 구름은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며 무서운 퀴즈를 내는 존재 자체에서 신비감이 느껴진다. 또 밀레의 <만종>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던 만큼, 달리에게 <만종>은 상당한 영감의 원천인 듯하다.


한편 뒤로 돌아앉은 여성은 달리의 동반자였던 ‘갈라’이다. 그는 갈라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과 불안함을 더했다. 사막에 연인 갈라가 있어서 설탕 같은 달콤한 느낌이 들지만,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과한 단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양한 감상이 생길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작품은 더 기묘한 매력을 갖는다.

 

사족을 붙이자면 마크 로스코의 작품처럼 크기가 더 컸거나, 작품 속 갈라처럼 관객도 앉아서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방식이었다면 더 몰입감을 더해줄 수 있을 듯하다.

 

*

 

이번에는 황색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 같은 느낌을 주는 <시간의 속도>를 보자. 계속 들여다볼수록 마치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디가 땅이고 하늘인지 구분이 어렵고 시간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나무와 시계의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생기나,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것처럼 동이 트고 있어서 빛의 방향이 모순된다.


시공간이 뒤틀린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은 기시감을 느끼거나 어린아이가 어른의 감정을 느낄 때처럼 작품 앞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명백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러한 예술 작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시각화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하루에 2시간만 활동하고 나머지 22시간은 꿈속에서 보내겠다.”


달리는 위와 같은 말을 남겼는데, 초현실주의 영향으로 꿈과 무의식을 강조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심술궂은 빨강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짓궂게 굴거나, 더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달리답다. 또 초현실주의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그림에서도 공포 없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키리코의 <거리의 우수와 신비> 속 굴렁쇠를 굴리는 여자아이는 달리의 <무제 (맑은 날씨의 지속)>에서도 원을 들고 춤추는 한 여성으로 변화하여 나온다.


키리코와 달리의 작품에는 무서움을 주는 직접적인 요소는 없지만,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마음이 괴로운데, 날은 지나치게 화창할 때 느껴지는 마음의 심상이 이러할 것이다. 아니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다른 세계를 경험한 앨리스의 심상도 이러한 분위기일 수 있다. 또 시간은 흐르지만, 당시의 고통은 정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위 느낌이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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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개미의 존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개미는 시간을 먹는 존재이며, 부패나 양심의 가책을 의미할 때 작품에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개미가 손에 올라타면 간지럽듯이, 실제로는 신체 기관에 없는 양심이 껄끄러운 느낌처럼, 달리는 개미의 존재를 통해 작품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불편하게 간지럽힌다.

 

그는 기존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피에타>와 같은 작품도 재해석해보면서 독보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평균 이상의 내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다.” -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끝이 없는 불안감, 양심의 간지러움처럼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시각화하였다. 또 앞에서 살펴본 트루먼 카포트의 표현처럼 ‘심술궂은 빨강’과 아예 ‘맞장’을 떴다. 그래서 관객은 그의 작품세계 속에서 자신의 불안이나 기묘한 감정의 근원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

 

전시의 제목처럼 현재 달리는 꿈과 현실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꿈의 여행자였고,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남기는 사진가였다. 당신은 달리의 그림 앞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달리가 만든 사유의 바다에 잠시 들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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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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