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붉은 낙엽' - 누가 악인인가 [공연]

글 입력 2022.01.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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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은 2020년 9월, 우란문화재단의 공연예술개발프로그램을 통해 ‘비공개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첫선을 보였던 극단 배다의 연극이다. 지난 제42회 서울연극제에서의 초연을 거쳐, 올 겨울 국립극단의 초청을 받아 재연으로 돌아왔다.

 

이 극은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무대예술상’을 받았고, 2021 월간 한국연극 선정 ‘올해의 공연 베스트7’에도 오르며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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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붉은 낙엽>은 미국의 추리 문학 작가 ‘토머스 H. 쿡’이 집필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김도영 작가의 각색을 거쳐 극단 배다의 이준우 대표가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소설의 이야기를, 그것도 미국 정서가 짙은 번역극을 현지화하여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창작진들은 이 어려운 과제를 훌륭히 해냈고, 이러한 수고로움 덕에 상당히 훌륭한 짜임새를 갖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붉은 낙엽>에서는 모든 인물이 큰 사건을 계기로 충돌하고, 결국에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주요 인물을 움직이는 모티브는 하나의 감정, 바로 ‘의심’이다. 이 극은 사랑하는 부부와 자녀, 형제지간에 움트는 조그마한 의심이 어떻게 가정의 근간을 뒤흔드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에릭은 바네사의 남편이자, 지미의 아버지다. 연극은 에릭의 첫 대사로 시작되는데, 그는 “처음 내가 이 집을 살 때 간절히 원했던 건 단단한 집, 절대로 금이 가지 않는 단단하고 튼튼한 집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통해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견고한 집은 결국 무너질 것이며, 관객은 작은 실금이 단란했던 가정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목도할 것이라는 예측. <붉은 낙엽>은 비극의 화근을 배태한 집이 처참히 쓰러지는 순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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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리의 작은 마을. 8살 난 에이미를 혼자 키우는 카렌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싱글맘이다. 그녀가 에이미와 떨어져 있는 야간에는 옆집에 사는 16세 소년 지미가 베이비시터로 일하며 에이미를 돌본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미가 실종된다. 전날 밤까지 아이와 함께 있었던 지미는 용의자가 되고,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의심받는 아들의 부모가 된 에릭과 바네사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에이미의 실종사건에 있어 여러 증거와 정황은 지미를 범인으로 가리키지만, 관객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외치는 지미의 아우성과 울부짖음을 통해 그를 범인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심증만 있을 뿐, 에이미의 실종에 지미가 관여했다는 절대적 물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들의 결백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이때부터 에릭의 마음에 싹트는 의심은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진실’을 외치지만, 역설적으로 진실과는 점차 멀어지는 듯한 모양새다.

 

연극은 두 개의 서사를 동시에 다룬다. 에릭과 바네사, 지미가 이룬 가정과 에릭 개인의 가정사다. 에릭과 에릭의 형 워렌, 그리고 그 둘을 키운 아버지와의 어긋난 가족관계에서도 의심에서 촉발한 갈등의 불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실과 허구, 양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충돌은 배우들의 빛나는 호연으로 표현된다.

 

극 중에서 지미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은 결국 인생의 동반자까지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른다. 섣부른 판단으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지 못하는 인물들은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가는 관객이 계속 집중할 수 있게끔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진심을 숨기고 자신의 의도를 돌려 말하는 인물들의 화법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더라면 서로에게 불필요한 의심이 쌓이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두려워 침묵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과 상대방이 숨기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직시할 용기가 없는 것이었을지도. 무엇인가 옳다고 확신하는 믿음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사실과 거짓으로, 흑과 백으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조차도 ‘모 아니면 도’를 바라보며 흐릿한 판단을 맹신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가족에게 찾아온 비극적 사건의 진상을 파악함과 동시에, 부모님과 형과 보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잊고 지냈던 시간을 마주하는 에릭은 혼란에 빠진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는 분절된 기억과 왜소한 진실은 관객의 판단도 유보하게 만들며, 진정한 악인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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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딸을 돌봐왔던 지미를 의심하며 그에게 총구를 겨눈 카렌이 악인인가. 남의 자식이 사라진 슬픔보다, 나의 자식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진실을 찾지 못했던 에릭과 바네사가 악인인가. 어린아이에게 병적인 사랑을 품었던 워렌이 악인인가. 사실은 누구도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삶을 관통했던 진정한 악(惡)의 근원은 어디였는가.

 

아무도 죄의 씨앗을 찾지 못했기에, 이 극은 비극이다. 믿음의 벨트를 파괴하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우연성이 아닌, 나 자신의 인간성일지도 모른다.

 

붉게 물든 낙엽을 떨쳐내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나무처럼, 진실의 참모습이 생각보다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나무는 건재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떨어진 잎사귀만 바라보는 이들은 의심의 늪에 빠지기 마련이다. <붉은 낙엽>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무고한 아들의 죽음 이후, 에릭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의 집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붉은 낙엽만이 널브러져 있지 않았을까. 늙음을 맞이한 에릭은 예상대로 외로움으로 가득 찬 집에서 홀로 남아있다. 에릭에게 남겨진 두 개의 가족사진을 담은 액자는 두 참혹한 비극의 증거품이 되었고, 그는 모든 것을 떠나보낸 채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 장성한 에이미가 에릭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기 위해 등장한다. 과거의 사건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책임을 미룰 수 없는 죄에서 비롯한 죄책감이 짐처럼 자리한다. 그때 에릭은 에이미에게 꽃을 주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야 해, 나도 다시 시작할 테니까”

 

에릭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 오로지 그뿐이다. 비극의 결말을 알기에, 다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은 비극으로 향하지 않기를 소망하는 기도. 남겨진 이들이 쓸어 담은 낙엽. 그 희생 위에 새롭게 피어날 역사. 에릭이 에이미에게 바라는 행복은 되풀이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연극 <붉은 낙엽>의 모든 배우는 자신의 역할에 걸맞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국적인 문화에서 비롯한 각 인물의 정체성을 한국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들의 부족함 없는 연기가 한몫했다고 본다. 에릭을 연기한 박완규 배우는 역시 전체적인 흐름과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으며, 지미를 연기한 장석환 배우가 보여준 불꽃처럼 빛나는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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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논하며 무대 및 조명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우선, 신승렬 디자이너는 무대 위에 정원의 외부 구조와 집의 내부 구조를 동시에 배치하여, 나무 및 낙엽이라는 오브제의 물성을 극의 흐름에 적절히 녹여내었다. 서로 다른 공간을 일치시키되, 배경을 나누어 보여주어야 할 때는 적절히 공간을 나누어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최보윤 디자이너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알 앤 제이> 등에서도 보여주었던 조명의 명암을 잘 구조화하여 인물의 심리 상태와 일치시켰고, 무대와 어색함 없이 동화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극의 막이 내린 뒤, 커튼콜에서 이들에게도 기립박수를 함께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붉은 낙엽>의 아쉬운 점은 공연 기간이다. 탄탄한 원작에 좋은 연출과 연기가 더해진 작품이라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으면 했는데, 공연 기간이 짧아 아쉽다. 그래도 지난 서울연극제에서의 짧은 상연 동안 표를 구하기 힘들어 보지 못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무쪼록 좋은 작품이 빛을 잃지 않고 계속 무대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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