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을 사랑한 화가 : 샤갈 특별전

생채와 사랑과 인간을 노래하다
글 입력 2021.12.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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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서양 문학사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지식은 바로 성서, 성경의 내용이다. 서양사는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조차 몰라 머뭇거리는 내게 서양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걸까? 읽는다면 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읽어야 하지? 이런 의미로 서양사에 성서가 큰 의미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관 2주년을 맞이해 열린 <샤갈 특별전>은 이러한 ‘성알못’에게 가장 기초적인 성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알 기회를 마련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던 마르크 샤갈의 생애와 예술관도 같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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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저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이 역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샤갈의 그림을 하나하나 분해해 보면 종교와 무관한 그림에도 성서의 이야기가 내포된 경우가 많다. 이는 그가 말했듯 성서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크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도시였던 비테스크에서 모이셰 샤갈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모이셰란 성서에 나오는 모세에서 따온 것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유대인 가정이었고 자연스럽게 샤갈도 성서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샤갈은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 중 유대인을 향한 탄압을 고스란히 겪었다. 나치의 탄압을 못 이겨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그의 그림에는 이러한 모든 생애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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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성서는 “인간 창조”라는 작품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계의 시작을 만물의 탄생, 신의 시작점에서 본 적이 아니라 인간의 시작점에서 본 것이다. 샤갈의 신앙은 이러한 인본주의에서 시작한다. 인간을 가장 사랑한 화가가 인간이 가장 잔인하던 시대를 살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1933년 독일, 히틀러 정권 아래 샤갈은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혔다. 독일 미술관에 걸린 작품이 내려갔고, 마르세유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국제 구조위원회 덕분에 미국으로 망명가게 된 샤갈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가 세계 대전으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으면서 그림이 급격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색상을 세분화해 사용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부각한다. 가령 파란색을 사용하면 그림 대부분이 파란색이지만 더 어둡거나 밝은색을 섞어 사용하는 식이다. 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사람을 사랑했고, 이를 그림에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유대인의 희생과 결부 지었고, 모세를 위주로 이집트의 탄압에서 해방되는 이스라엘 민족 이야기를 다룬 탈출기를 나치의 탄압에서 해방된 유대인으로 재해석하여 담아냈다. 각자 다른 국가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를 겹쳐 표현하면서 비 인류적인 탄압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희망을 표현한다.

 

 

01. 에펠탑의 연인들, 최종본.jpg

 

 

그림 대부분에 그려진 부둥켜안은 연인의 모습은 샤갈의 인류애를 드러낸다. 그림 속 많은 사람 사이에도 서로만을 바라보는 모습은 애틋하고 다정하다. 그가 평생 사랑한 부인 벨라와 본인을 표현하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 냉소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메타포인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람은 유대인을 표현한다. 어떤 시기에도 자기 민족을 잃지 않은 샤갈은 유대인이 즐겨 사용하는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그들의 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모세”라는 작품은 그의 인류애를 더욱 드러낸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 등 그가 평상시에 넣는 메타포가 많이 들어가 있는 이 그림은 모세 이야기 중 인간의 유희를 재해석한 것이다.

 

서커스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있고 환호하는 공간으로 가장 즐겁고 밝은 공간이다. 그 때문일까, 화려하지 않은 색감의 그림에도 사람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모세의 한쪽 팔엔 집이 있어 사람 사는 냄새도 난다.

 


샤갈 특별전 모세.jpg

 


샤갈은 한평생 하나의 미술 도구에 정착하지 않고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언젠가 자신에게 딱 맞는 더 좋은 도구가 있을 거라 믿었다고. 신이 주신 역경을 감수하는 성서의 많은 사람 이야기처럼 샤갈 자신도 고난과 역경을 만들어 헤쳐 나간 것이다.

 

앞서 말한 “모세”라는 작품은 테피스트리 작품으로 샤갈 본인이 석판화로 만든 것을 장인이 양모와 면사로 제작했고, 성서의 105가지 장면을 그린 연작은 석판화로 만들어졌다. 후기에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몰두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도구를 다루어보고 거쳐 갔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의 이러한 성향 덕에 비슷한 오브제가 나오는 그림이라도 도구가 다르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곤 한다. 105종의 성서 석판화의 경우 그의 장점인 색채를 모두 배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역량을 시험한 셈이다. 덕분에 관객은 색에 가려진 그림 속 이야기와 구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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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작인 “또 다른 빛을 향해”의 경우 석판화이면서 색을 넣어 딱딱하고 차가운 석판화의 분위기보다 어딘지 몽글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가 마지막 순간 남긴 작품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점이 그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만든다. 내려오는 천사는 생의 모든 고통과 고민을 덜어가는 듯 다정해서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된다.

 

거대한 테피스트리 작품은 앞에 서는 순간 관람객을 압도하면서도 면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인류애를 표현하고자 한 샤갈이 의도가 천을 통해 좀 더 명확히 드러나는 기분이다. 유화의 화려함과 명확한 색채를 볼 때의 강렬함은 다른 도구를 사용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특히 후기의 음울함을 표현할 땐 강렬한 색채와 선명한 물감으로 그의 고통이 선연히 느껴진다.


샤갈의 도구는 비단 물건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이야기, 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러시아어를 할 수 있을 때부터 시를 썼다고 말할 정도로 글에도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이번 <샤갈 특별전>의 마지막 세션은 이러한 그의 시와 시를 표현한 그림을 같이 전시한다. 글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여 그림 속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샤갈은 화가이면서 언제나 이야기꾼이었던 셈이다.



06. 강기슭에서의 부활.jpg

 

 

이번 <샤갈 특별전>은 바이블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성서와 그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샤갈 본인에 집중한 기색이 역력하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신을 사랑한 그는 석판화 작품에서도 인간 위주의 이야기를 담아냈고, 이외의 작품에서도 인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서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과 달리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작품 속에서도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가 하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고 방대한, 종교적인 성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적인 성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샤갈의 인류애와 고난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면서 역사의 참혹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색채의 마술사. 강렬한 색의 아름다운 조합이 아니라 샤갈의 생애와 인생관 자체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보다 만족스러운 전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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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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