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글 입력 2021.12.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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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와 함께 팝아트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명으로 불리는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국내 최초 전시회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가 2021년 12월 3일부터 2022년 4월 3일까지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최근 개최된 2021 키아프에서도 그의 작품 <랜드스케이프 위드 레드 스카이>는 최고가로 판매되며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한 바 있다.


전시는 스페인 아트콜렉터 Jose Luiz Ruperez의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유명작인 <절망 Hopeless>,을 비롯하여 당대 예술계에 독특한 방식으로 혁신을 일으켰던 ‘벤데이 점’ 기법을 활용한 작품과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협업, 공예품, 유명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이 모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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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8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만화의 한 컷에서 형식과 기법을 차용하여 사랑과 전쟁을 표현해낸 ‘Love&War; Climax Of Cliche’, 붓자국 회화 연작 ‘Brushstroke, Gestural Mark’, 피카소, 몬드리안, 반 고흐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Magnificent Presences’, 일상 속의 예술과 사회를 주제로 한 ‘Everyday Art And Everyday Society’, 콜라쥬 방식으로 작업한 누드 시리즈 ‘Blondes And Nudes’, 거울 등의 주변의 사물들을 매개체로 삼은 ‘Looking Out Into The World’, 앤디워홀 등 6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아티스트들이 협업한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 ‘Spotlighted’, 음악과 영화, 문학 전반에 걸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World Of Exploding Mass Culture’.

 

각 세션들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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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표현주의가 주력이었던 당대 미술계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 광고 등 대중적인 소재를 차용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해냈다. 그는 당시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인 전쟁과 사랑에 대해 주로 다뤘으며, 만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검은 윤곽선, 과감한 색감, 의성어가 쓰여 진 말풍선, 그리고 금발의 백인 여성이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특히 벤데이 점 방식으로 대규모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이 벤데이 점은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던 동판화 인쇄기법으로, 금속판에 레이버로 직접 선을 새겨 너어 제판하고 분리된 이미지들의 내부를 작고 규칙적인 기하학적 망점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기계적 균일성을 가지길 희망하며 벤데이 점의 크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이용해 공간에 깊이를 주고 생동감을 표현했다.

 

 


이것 좀 봐, 미키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품들은 입체주의나 추상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일상적인 현실에 더욱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의 유행을 따르지 않았고, 따라서 1950년대부터 발표했던 작품들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키마우스 만화를 좋아하던 그의 아들의 한 마디로 인해 어린 아들에게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만화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는 처음으로 아들을 위해 <이것 좀 봐, 미키>라는 만화를 차용한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게 된다.

 

 

 

Love&War; Climax Of Cliche



첫 번째 섹션인 사랑과 전쟁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컷에서 형식과 기법을 차용하며 망점, 선과 면을 세심하게 재배치하며 통속적인 주제들을 남다른 스케일로 표현한다. 그가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정지 상태의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재생하다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을 때 그 순간을 캡쳐한듯 한 동적인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는 극단적인 만화 속 한 장면의 클라이막스를 제시하고 우리로부터 하여금 그 작품 속 주인공이나 상황의 내러티브에 이입시킨다. 밝은 원색으로 제작된 작품들과 대비되는 전쟁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어두운 소재부터 그럼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치인 인간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끊어진 맥락 속에서 사람들의 원초적 감정을 건들이며 다양한 의식의 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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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리와 촉감과 같은 감각을 기호와 글자로 표현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 As I Opened Fire >에서는 무기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며 러프하고 중량감 있게 전달한다. 화약 냄새와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 소리가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연기와 소음, 빛과 냄새가 가득히 퍼지는 찰나의 순간을 뚜렷한 윤곽선으로 묘사한 방식은 이후로도 벤데이 점과 함께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이후로도 널리 사용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이 그림을 인류의 진보를 위해 평화주의적 메시지를 의도하여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고 밝힌 것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에 그는 그저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 사회문제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는 자신이 즐겨 먹던 캠벨 수프 캔을 작품화하면서도 작품에는 어떠한 사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개입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하는 자세만을 고수했던 앤디워홀의 팝아트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리히텐슈타인과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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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 Kiss A >

 

 

눈을 감고 키스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의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금발머리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 황금빛, 화려한 색채, 여성과 남성, 키스. 무언가 연상되지 않는가? 필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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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클림트의 작품에서는 찬란한 황금빛과 더불어 정교한 장식성, 성과 사랑의 에로티시즘과 상징적인 요소들이 느껴진다. 특히 여성의 얼굴에 맞닿아있는 남성의 손과 그 위에 살며시 포개진 여성의 손에서는 애틋함과 에로스적인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의 < Kiss A >는 클림트의 작품보다는 즉물적이고 직접적이다. 무언가 심오하고 격조있던 것만이 예술로 평가되던 시절, 리히텐슈타인은 당시 대중적이었지만 하위문화로 분류되던 만화를 예술에 도입함으로써 고귀한 미술과 저급한 대중문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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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는 사연 있어 보이는 비련의 금발머리 여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왜 그는 금발의 여성만을 고수하며 여성이 유혹적인 모습으로 기다리거나 우는 모습들을 주로 그렸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미지 위주로 여성을 표현한 것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진부한 설정이라고 느끼긴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클리셰적인 설정이기에 우리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달리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대중매체 속에서 여주인공은 항상 무언가 비극적인 사연이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객체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의 삶을 주관해나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대중적인 만화에서 일부를 가져오는 방법을 통해, 통상적으로 소비되어왔던 여성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행태를 표현해냄으로써 대중매체의 클리셰적인 설정의 진부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전통 회화에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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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1965년에서 1966년 사이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제작한다. 이는 당시 뉴욕 미술계에서 흥행했던 추상 표현주의의 표현 과잉에 대한 희화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물감을 묻힌 붓으로 아세테이트 필름 위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이 마르면 필름을 캔버스에 올려서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붓자국을 캔버스에 따라 스케치하고 색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그는 실제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베껴 붓자국 형태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는 장황한 붓 자국을 영화 속 스틸컷처럼 순간적으로 멈춘 형태로 표현했고 이는 ‘행위’로 전락한 전통 회화에 대해 선언하는 표식이 되었다.

 

 


작품을 재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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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파카소, 몬드리안, 반 고흐, 세잔, 마티스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또한 아르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 등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건축물들은 그의 손길로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요소로 재탄생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작품을 변형한 이유를 말할 때 자신의 작품과 그들의 작품 양식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뚜렷한 색채와 검은 윤곽선은 마티스와 피카소, 몬드리안의 작품 중 한 시기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이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화풍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공산품들을 그려내다



1960년대는 종전 이후 공산품들에 대해 극적인 마케팅 전략이 발달하는 시기였다. 수많은 공산품들은 이상적인 삶의 상징이 되었고 그동안 익숙했던 사물들이 진실성이 파괴된 광고들로 새롭게 개선되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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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우편 주문 카탈로그나 신문 광고 등에서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흰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단순히 소비문화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패러디했다. 그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 밖에도 전시장은 당시 사회의 정치적 사건들과 여러 단체 및 매체를 위한 포스터 작업 및 회화작업, 콜라쥬 방식으로 작업한 누드 시리즈, 60년대 중반 뉴욕에서 열린 ‘The Great American’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은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항상 고민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그는 음악과 영화, 문학 전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뢰를 받았고 그는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며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사람들의 취향을 이끌어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팝아트’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영향력 있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마 그의 유명한 작품인 <행복의 눈물> 말고도 이미 수많은 패러디들이 우리를 지나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비비드한 팝아트의 세계로 잠시 들어와 보는 것이 어떨까.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 속에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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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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